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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기 Apr 07. 2021

나의 인생 영화              <히든 피겨스>


영화에서 연출하는 화려한 영상미는 시각을 장악하고 웅장한 음악은 청각을 지배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매우 직관적이라 말할 수 있다. 액션신으로 통쾌하고 소름 돋는 즐거움과 우주의 신비를 보여주는 몽환적 영상은 관중으로 하여금 영화 속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간혹 좋은 영화를 만나면 직관적인 즐거움을 넘어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관중에게 생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다. 나에게 인생 영화는 없었을까? 지난 시간 밤을 새우며 가슴 졸고 울며 웃으며 보았던 수많은 영화의 장면들을 거꾸로 돌리 듯 머릿속 영사기를 작동한다.

국민학교 시절 전교생이 함께 관람했던 문화교실 영화가 처음 접한 영화일 것이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며 눈물을 쏟아내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교육이 썩었다고들 한다. 그렇다. 많이 변해야 한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가 어떤 이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비록 의무적이긴 하지만 문화교실 관람 교육프로그램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단연 기억에 남고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친 영화는 "히든 피겨스"다. 이 영화는 흑인 여성의 인종 차별 이야기다.
NASA 내에서의 인종차별을 세밀한 심리묘사와 사회적 문제로 관통하는 시각에서 그려낸 점은 이 영화 높게 평가되는 이유이다.

당시 나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고, 외국근로자도 고용하고 있었다.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똑같은 대우를 한다고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과 동남아(?) 사람들과는 무의식에서 차별을 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중에 이 영화를 보았다. 나는 가슴 한편이 뜨끔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를 옹호하던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불평등의 잔재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이다 경재개발 5개년 계획이다 해서 한창 경제 재건에 온 나라가 노력하는 시절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독일로 가서 남자는 광부로 여자는 간호사로 외화를 벌었다. 그 덕분으로 오늘날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생활은 다소의 차별 대우가 있었다. 그리고 영화 미나리의 배경이 되었던 미국 이민 생활서도 인종차별을 견뎌내어야 했었다.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간 이민 2세대는 유색인종으로 백인에게 차별을 받았다. 그런 역사가 있었음을 알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폭력이고, 인격을 무시하는 일인지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차별 의식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인종차별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차별을 양산한다. 남녀의 차별, 빈부의 차별, 배운자와 못 배운자의 차별, in 서울과 in 서울이 아닌 모든 곳의 차별,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차별, 고가 아파트와 임대아파트의 차별,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의 차별, 벤츠와 모닝의 차별... 셀 수 없는 차별들이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차별의식은 이분법적인 교육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옳고 그름,○아니면 X, 흑과 백, 사장과 직원, 남과 여, 경상도 아니면 전라도, 우리나라 아니면 외국, 이런 분류에 익숙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1과 2 사이에는 0.1, 0.2,0.3..... 심지어 0.00004도 존재한다. 흑색과 백색에 사이에는 그레이 그린, 레드, 퍼플... 수많은 색상이 존재한다. 상 모든 것의 다양함을 인정하는 연습을 지속하여야 한다.  


비록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 불과하지만 사회를 서서히 바꾸어 가는 의식변화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여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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