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100년 만의 폭설이었다. 강원도 산간지역에선 1주일 동안 고립되었다. 퇴근시간의 서울교통은 온통 마비되었다. 겨울은 끈질기게 인간을 농락하며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새 입춘인가 했는데 이제는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본다. 반팔 티셔츠가 어색하지 않다. 지난 계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코로나가 2년째 지구촌을 괴롭히며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찾아오고 이제는 여름을 그리워한다. 사는 것이 이런 건가.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 삶이고 생이다.
생강나무에 꽃이 맺히는가 싶었는데 이내 세상은 꽃밭이 되어간다. 아파트 담벼락을 둘러싼 벚꽃이며 태봉산 그늘 아래 외롭게 서 있던 목련 한그루에도 큰 꽃봉오리가 맺힌다. 분홍의 진달래며 사과나무의 하얀 꽃이며 생강나무의 노랑꽃, 현호색의 우아한 연보랏빛이 저마다의 꽃 향기를 세상을 향해 내뿜는다.
산과 들녘에 한껏 물오른 꽃잔치에 태봉산도 신이 났다. 복자기나무, 떡갈나무, 밤나무, 단풍나무, 신갈나무... 숲 속은 푸른 기운으로 힘이 넘친다. 마스크로 입을 가린 세상을 푸르름과 꽃향기로 정화시키고 있다.
우리 아파트를 빙 둘러 안은 4차선 대로를 가로질러 건너면 빌라가 밀집한 동네다. 이곳을 끼고 형성된 음식점과 주점은 포천에서 소문난 먹자골목이다. 하루 동안 삶의 터전에서 지친 이들이 해가 어스름해지면 하나둘 모여들어 왁작지껄 생기가 넘친다.
해그름 해진 시간, 오랜만에 길 건너 태봉산 둘레길을 산책하기 위해 먹자골목을 지나는 길이었다. 소방도로 가장자리에서 주차 시비로 옥신각신하는 두 남자가 있었다. 허리선이 날씬하게 빠진 슬림 슈트를 입은 중년에게선 벤츠 향수의 진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먼발치서 보기에는 중후한 멋스러움이 있었는데 가까이서 만난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먹자골목 찌개 집 음식쓰레기가 한여름 2주째 썩은 냄새보다 더 고약하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향기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갓 구워낸 달콤하고 고소한 소보르 빵 냄새도 나고, 또 어떤 이에게서는 프리지어 꽃향기도 나고, 잘 익은 묵은 김치 향도 나고, 달콤한 애플파이 냄새도 난다.
나에게는 무슨 냄새가 날까?
그냥 똥냄새만 풍기고 있진 않을까? 똥도 묵히면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데. 꽃도 피고 건강한 야채도 키우며 자연에 이로운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똥은 썩지도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삶에 지나치게 치우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풀잎 같은 존재로만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무엇을 남겨 보려고 아등바등 애만 써다 귀한 것들 놓쳐버리고 손안에 움켜쥔 공기 한 줌만 쥐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사는 이 순간들. 안으로 내면을 가꾸고 밖으로는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알아가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향기로움을 풍기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악취는 풍기지 말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