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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현기 May 06. 2021

이름을 불러주다

   출근길에 나서며 현관문을 밀고 나온다. 가지런히 줄지어 놓인 신발들은 이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문패 같다. 밤새 갇혀 있던 텁텁한 실내공기는 내가 떠난 이 집을 지킬 것이다. LED벽시계의 깜빡이는 불빛, 어둠을 딛고 푸르게 일어서는 오늘의 햇새벽, 하나하나의 이름을 눈으로 호명하며 집을 나선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경기도의 어느 사찰을 찾은 적이 있다. 사람이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철창을 설치해서 귀하게 모시는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기억이 가물거려 누구의 이름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유명한 대사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는 것이다. 먼 산길을 오르던 중에 우연히 주워 든 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꽂아두었더니 시간이 지나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 났다는 얘기다. 지리산 어느 절 앞의 아름드리 푸조나무도 신라시대 최치원이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 두었더니 이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전한다.

  식물학적으로 추측해 보건대 그리 허무맹랑한 얘기도 아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지나는 길에 들고 온 지팡이를 땅에 쿡 꽂아 두었는데 그곳에서 뿌리가 내리고 새싹이 돋았다고 해서 이 나무를 "채현기 나무"라 부르지는 않는다.
즉, 유명세를 타고 있던 어떤 사람과 어떤 대상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낸 보편적 공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삼성 일가에서 소장하던 이중섭 화백의 "해변의 가족"을 비롯한 몇몇 작품이 제주도에 기증된다는 소식에 세간이 떠들썩하다. 이중섭이 제주도에 머문 시간은 1951년 피난 시절 1년 남짓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주도는 이중섭의 이름으로 박물관을 짓고 그의 작품을 전시-개관 초기 원본은 한 점도 소장하지 못하였다-하며 그의 모든 것을 가져와 제주도화 했다. 이것은 이중섭의 삶에 제주도를 녹여내어 그의 작품과 함께 잘 버물여 낸 기획된 결과물인 셈이다.


  어느 순간, 나는 글 쓰는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작가의 역할을 고심하던 중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작가는 다자의 대상들에게 의미와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소임은 맡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본질과 근원의 탐구보다는 다양한 세계를 살찌우고 풍성하게 꽃 피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류의 화려함보다는 소외된,
겨우 숨만 붙어 헐떡이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숨죽이고 웅크린 하나하나의 이름을 호명하며 그들에게 생명의 빛을 밝혀주는 일이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그 안에 이야기가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다.
일상의 평범한 일로 의미 없이 버려진 수많은 시간들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작업을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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