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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13. 2024

3부 안쓰러운 엄마

3-3 엄마, 지금 새벽 한시야!

엄마는 점점 나에게서 떼려야 땔 수 없는 거추장스러운 혹이 되어가고 있었다. 잡아떼고 없애버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남들이 알게 될까 봐 두려웠고, 치매 엄마라는 사실보다는 변해가는 엄마를 숨기고 싶었다. 갑자기 고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에게 숨기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함께 자취했던 언니와 오빠는 대학생이 되어 모두 서울로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혼자서 자취하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고모 댁에서 잠시 기거하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부잣집 가정교사로 입주해서 그 집 아이들 셋을 가르치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집에서 거의 3년을 가족처럼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내가 가르치던 부잣집 가족들이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졸업식장에 왔다. 다른 사람들보다 예쁘게 차려입은 눈에 띄게 귀티 흐르는 아이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사모님이 예쁜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에 나타났다.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난 친구들 보란 듯이 더 의기양양하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그 가족들과 함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잠시! 부잣집 사모님에 비하면 눈에 띄게 남루한 옷차림의 엄마가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옷이 초라한 건 둘째 치고, 그날 엄마의 모습은 나의 화려한 축하 팡파레를 완전히 망쳐놓고 말았다. 엄마는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에 새벽 첫차를 타야만 했다. 차를 놓칠세라 어둠 속에서 서둘러 내디딘 발이 그만 미끄러져 물속에 한쪽 발이 빠졌던 모양이다. 엄마의 바지는 다 젖어 있었다. 게다가 영하의 추운 날씨에 물에 젖은 바지가 얼어붙어 걸을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모습이 얼마나 창피하던지!     


난 학우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군대는 것 같아 부랴부랴 엄마 손을 이끌고 교문 바깥으로 탈출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 한편에서는 엄마의 남루한 모습에 대한 창피한 생각이 다른 한편에서는 엄마를 외면하고 싶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리고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세상에, 발이 얼어붙어 얼마나 추우셨을까? 동상은 걸리지 않았을까?     


그날의 복잡한 감정이 성인이 되어서도 앙금처럼 늘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있다. 죄인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 죄책감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치매에 걸린 엄마를, 나를 힘들게 하고 창피하게 만드는 혹이라고 생각하며 엄마를 또다시 멀리하고 싶고 숨기고 싶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엄마는 밤이나 낮이나 눈만 뜨면 나만 찾는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녀오면 오후 4시 40분. 그때부터 나는 엄마 집에서 함께 지내며 엄마 시중을 들다가 저녁밥을 먹고 나면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옆집인 내 집으로 오는 일과였다.    

 

제발 밤에라도 나를 찾지 말고 잘 주무시기를 바라지만 새벽이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를 찾아오는 엄마. 혹시 남편이 깨서 알기라도 할까 봐 문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 엄마를 얼른 맞이했다. 그러니 깊은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처음엔 지금이 새벽 1시인데 안자고 돌아다니냐며 핀잔을 주곤 했지만, 계속되는 야밤의 불청객에게 질책을 추가해 더 소란스럽게 만들어 다른 가족까지 잠을 설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엄마의 인기척이 들리면 빠르고 낮은 소리로 ”엄마, 이리 와! 나랑 같이 자고 싶어 왔어?“ 하며 따뜻한 말로 엄마를 꼭 껴안고 소파로 안내한다. 그리고 좁은 소파에 나란히 모로 눕는다. “엄마, 나랑 이렇게 자자~. 나랑 자니까 좋지? 이제 일어나지 마~.”     


밤인지 낮인지 구별도 못 하고 이런 야심한 밤에 와서 모두의 잠을 방해하는 엄마를 남편에게서도 숨겨주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느꼈던 창피함과 달리 죽는 순간까지 고상한 엄마로 남았으면 하는 나의 마지막 바람이기도 했다. 어슴푸레 바깥 가로등이 거실까지 들어와 비춰주는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창백했다. 그리고 한없이 안쓰러웠다. 포개진 엄마의 근육 빠진 다리와 발을 보니 그 겨울에 발이 얼마나 시렸을지 모를 생각에 한번 더 이불 매무새를 고쳐 덮어드렸다.     


‘엄마, 미안해! 오늘은 따뜻하게 자~.’


 눈의 그렁그렁했던 눈물이 뚝하고 손등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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