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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Mar 27. 2024

4부 엄마 미안해!

4-2 엄마, 나 찾지 마!

친정집에 다녀오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는 방에서 주저앉다 살짝 엉덩방아를 찧게 되었다. 별일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후 엄마는 일어날 때마다 끙끙대고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니 요추 10, 11, 12번 세 군데나 골절이 되었단다. 의사는 노인들은 뼈가 약해져 일상의 사소한 움직임도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요추 골절 진단을 받은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골절된 부분을 시술받게 되었다.  

   

치매 환자이기에 병원에서의 생활은 도전 중의 도전이었다. 엄마의 병실은 6인실이었는데, 엄마는 그 병실을 당신의 집으로 착각하고 다른 모든 환자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왜 우리집에 당신들이 있소?, 왜 이렇게 시끄럽게 허요?”라고 묻는가 하면, 누가 가래라도 뱉는 소리라도 내면 “오메, 더러워 죽것네!” “내 집서 나가씨요!”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온갖 인상을 쓰고 사람들에게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낯선 사람이 옆에 나타나면 극도로 불안해지면서 자기방어를 위해서인지 날카롭게 변하고 사나운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방문요양보호사마다 못살게 굴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이해가 갔다.     


병원에서는 계속 한숨도 못 자고 집에 빨리 가자고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골절 부분의 시술이 끝나자 엄마의 난동을 더 감당할 수 없게 된 나는 예정보다 빨리 엄마를 퇴원시키고 대신 집에서 재활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 하고 엄마에게 24시간 꼼짝없이 매달려야만 했다. 기껏 수술해 놓고 도로아미타불이 되면 안 되니까! 그러나 퇴원하고 일주일이 지나도 엄마의 상태는 더 악화되는 것 같았다.     


작은오빠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의 응급실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시술을 이미 했기 때문에 재활의 목적으로는 입원이 곤란하다며 협력병원을 소개해 주었다. 입원이 거절되고 다시 들것에 실려 나오는 엄마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몰래 훔치느라 바빴다.    

 

당장 동생이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기자고 오빠는 제안했다. 그 소리를 들은 엄마는 내가 왜 그 병원엘 가냐며 경미만 있으면 나는 혼자 생활할 수 있다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부모 세대들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을 죽으러 가는 것쯤으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지금 경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봐! 경미 삶이 얼마나 힘든지 보라고!”

“걱정하지 마라!”  

   

엄마는 목소리 높여 강경하게 말하는 오빠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에 오빠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엄마는 왜 그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야! 엄마, 둘째 딸을 봐. 엄마 때문에 당신 딸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병원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오빠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계속해서 엄마를 다그치기만 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오빠에게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오빠는 우리 6남매 중 최고의 효자이며 자상하기로는 오빠를 이길 사람이 없지만 화가 나면 무서웠다. 이성을 잃은 듯한 오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무서웠다. 나도 겁이 나는데 엄마는 자식에게 버림받을까 봐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잠시 동안 우리는 오빠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는 앰뷸런스를 불러서 동생이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으로 바로 이송하라고 단호하게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향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가득 차서 오빠 말을 따를 수 없었다. 오빠에게 오늘 딱 하루만 내가 더 엄마를 보살핀 뒤 내일 요양병원으로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내 말에 오빠는 다소 누그러지더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를 집으로 모셔 왔는데,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차마 엄마를 보낼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도 요양병원으로 엄마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자 큰오빠가 직접 찾아왔다. 큰오빠가 온 김에 나는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일을 위해 외출을 했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를 돌본 큰오빠는 엄마가 이렇게까지 움직임이 힘든데 그동안 어떻게 엄마를 간호했냐며 혀를 끌끌 찼다.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오빠는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 엄마를 보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다음날, 큰오빠와 나는 엄마를 모시고 목포의 요양병원을 향해 떠났다. 초겨울이라도 날씨는 화창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엄마는 계속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어디를 가냐고 몇 번씩이나 물었다. 뭔가 낌새를 느낀 엄마는 ”나는 아무데도 안간다!“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못 들은 척했고, 5시간의 장거리를 달려 결국 병원에 도착했다.     


이미 엄마는 이곳에 본인을 두고 가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며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기 위해 엄마 앞에 옷을 놓으니 엄마는 기겁하며 왜 이런 옷을 입게 하냐고 소리쳤다. 수간호사인 동생과 여러 명의 간호사가 엄마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를 썼다.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간식도 갖다 드려 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엄마가 저항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점점 강경하게 나오는 엄마의 태도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매월 실시하는 정기검진 때의 병원 대기실에서도, 주말마다 찻집에 가서 분위기를 즐기려는 딸들과의 시간도 참지 못하고 늘 집에 가자고 조르는 엄마답게 빨리 집에 가자고 계속 보채기만 했다.     


오빠와 나는 엄마의 시야에서 모습을 빨리 숨겨야 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수간호사인 동생이 엄마의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사이, 간호사들의 신호에 따라 몰래 엄마의 시야에서 재빨리 도망쳤다. 이제는 나도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엄마가 나를 쫓아 다시 나서겠다고 하기 전에 모습을 감추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도 힘들게 했던 지긋지긋했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었다. 마지막 잠시 문틈으로 보이는 엄마를 향해 '엄마, 이제 더 이상 날 찾지 마!‘라고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나는 엄마에게 내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잽싸게 문을 닫고 돌아섰다. 내가 생각해도 참 냉정했다. 엄마에게 묶여있는 생활이 아무리 지긋지긋했어도 그렇지 내 안에 이런 차가운 면이 있었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 엄마와 함께 지지고 볶았던 일들이 떠오르며 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이렇게 엄마와는 이생에서의 생활이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니 더욱 그랬다. 큰오빠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싶었는데, 한번 시작된 눈물은 집에 간다며 난동을 피우던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오르면서 폭포수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마음 약한 큰오빠도 틀림없이 운전하는 내내 울고 있었으리라.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엄마를 보낸 무거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니 까맣게 잊혀 갔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친구도 만나고, 엄마 돌보느라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행도 다니며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잠도 잘 잤고 일도 열심히 했다. 가끔 엄마 생각이 났지만, 동생이 보내준 영상으로 안심할 수 있었다. 동생이 엄마의 상태를 영상으로 찍어 가족 단톡 대화창에 공유해 주었기에 걱정은 줄어들고 안정을 찾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식 중 한 명이 날마다 엄마를 볼 수 있는 환경에 있기에 우린 모두 엄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동생아, 미안하고 고맙다!  

   

가족들이 부모를 시설에 모시는 결정은 쉽지 않다. 우리 가족은 동생이 요양병원에서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으니 다른 가족들이 갖는 고민과는 비교도 안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서 온 가족들의 의견 갈등부터 시작하여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더구나 가끔 들려오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의 관리 소홀로 인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의 뉴스를 듣게 되면 더욱 시설에 맡기기를 꺼리게 되는 건 당연하다.     


환자들의 욕창이나 세균 감염 등이 발생할 우려와, 돌봄 인력의 부족으로 약을 먹여 재운다든지 행동이 난폭해진 환자를 침대에 결박하여 관리하는 곳도 있다는 사실은 가족들을 더욱 고민하게 만든다. 부모님이 시설에 가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계속 누워만 있어 욕창이 생기고 금방 못 걷게 되어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지는 건 아닌가 하는 수많은 걱정으로 온 가족이 괴로움을 겪게 된다. 어떤 시설이 괜찮은 곳인지 수소문하고 발품을 팔다 보면 좋은 시설을 만날 수도 있다. 병원의 마인드가 환자를 마치 내 가족처럼 모시는 곳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그런 곳이라면 걱정 없이 맡길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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