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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미 Jul 18. 2022

철밥통 걷어차기

아직은 일할 나이에 퇴직을 왜 해?


2020년 8월 31일 초등교사 생활 30년 6개월을 마무리했다. 내 나이 54세, 정년을 9년 남긴, 다른 선생님들보다 조금 이른 퇴직이다.

"왜? 무슨 일 있어?"

"그만두면 뭐 하려고?"

"철밥통을 왜 걷어차? 그렇게 편한 직업이 어디 있다고?"

"요즘 애들도 학교에 안 나와서 더 편한 거 아니야?"


모두들 교사는 철밥통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타의로 교직에서 나가는 선생님은 거의 없으니까. 남들이 보기에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어 보이겠지. 말귀 못 알아듣는 유치원생도 아니고 가르치는 내용이 어렵지도 않으니까.


교사는 가르치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부가적으로 주어지는 업무가 많다.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한다. 수업을 잠깐 미루고라도 급하게 해내야 할 일들이 싫었다. 교원 업무 경감을 한다고 하지만 그 공문이 더해져서 일은 늘어난다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교육보다 실적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수업이나 수업 준비로 일을 미루면 다른 선생님들께 피해가 가기 때문에 수업 준비는 잠시 미루게 되는 일들 자주 생긴다.


학교에서 부장 교사는 보직이다. 부장 수당은 말도 안 되게 적고 일은 너무나 많아져서 승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피하게 된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 마냥 피하기만 할 수는 없기에 하는 수 없이 학년 부장을 몇 년 했다. 그 몇 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소홀했을 테니까.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아닌 업무가 우선인 내 모습을 발견했고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이지 사무원이 아닌데 내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내 기준에는 잡무였다.


퇴직을 했던 2020년, 그 해도 나는 6학년 담임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 3월 2일에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난생처음이었다. 아이들이 오지 못한 학교는 고요했고 불안했다. 교육 당국과 학교는 처음 당하는 일에 모두 우왕좌왕했고 사용 가능한 여러 툴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콘텐츠를 제작해서 아이들이 접속하게 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제게 의미 없는 공간이 이었다. 언젠가부터 생각만 하고 있던 퇴직을 드디어 결심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교실에서 혼자 앉아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내 모습은 내가 꿈꾸고 바라던 교사는 아니었으니까. 이른 퇴직을 결심한 이유가 아이들 없는 학교만은 아니었다. 폐쇄적인 교직 문화가 갈수록 힘들어졌고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수직적인 문화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반 아이들이 더 예쁘고 소중해졌다. 첫 아이 출산 휴가가 끝나고 출근하던 날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집에서 얼마나 귀한 아이들인데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둘째 아들이 크면서 남자아이들이 말썽을 부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담임을 만나 곤란해하는 아들 엄마들에게 "괜찮아요. 5분 이상 가만히 있는 아이는 아픈 거예요. 힘들긴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 가르치라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해줄 정도로 넉넉한 선생님이었다.


교직생활 동안 주로 고학년 담임을 했고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을 즐겼다. 다른 선생님들은 힘들다는 고학년이 나는 좋았다.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큰 틀 안에서 자율을 주면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교직의 보람을 느꼈다. 아침 독서, 책 읽어주는 선생님, 종이접기, 책 만들기, 자서전 쓰기….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년 다른 프로젝트 진행했고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나 스스로 즐거워서 한 일이었다.


나는 54에 아이들이 오지 않는 학교는 싫어서, 답답하고 일방적인 교직 문화를 견디기 어려워서, 수업보다, 아이들보다 우선되는 잡무가 나를 짓눌러서 퇴직을 결심했고 늘 그렇듯 아주 빠르게 실행에 옮겼다. 철들고 학생으로 선생으로 46년을 학교만 다녔던 내가 준비 없이 세상으로 나왔다. 처음 몇 달은 너무나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후회하지 않았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생각에 마음은 분주했고 정해진 길로만 살아왔던 나는 궤도에서 벗어난 것이 두렵기는커녕 흥분되기 까기 했다.


그리고 2022년 나는 다시 6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 학교에는 늘 기간제 교사가 필요한데 코로나로 교사 수급의 문제는 더 불안정해졌다. 준비 중인 일을 지금 시작하기는 애매해진 상황에 주어진 1년이다. 안정적인 철밥통 정교사를 그만두고 기간제 교사라니... 인생은 늘 알 수 없는 모험의 연속이다. 지금 나는 6학년 우리 반 아이들로 인해 어느 해보다 행복한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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