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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06. 2020

한국인이지만 한국어가 쉽지 않다

교사가 수업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배를 타고 산으로 간다

  "여러분, 다음 어휘는 ‘목숨을 바치다’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내가 죽을 수 있어요. ‘목숨을 바치다’ 예요."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 강의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본의 아니게 듣게 된 어휘 수업 내용이다. 이 수업은 중급 수준의 한국어 학습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으로 해당 어휘는 교재 본문에 나오는 주요 어휘로 교사가 수업 전에 미리 의미 설명을 준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 어휘이다. 

  우선, 가장 큰 오류는 ‘목숨을 바치다’의 사전적 의미이다. 한국어 사전에서  ‘목숨을 바치다’는 ‘다른 사람이나 일을 위해 생명을 내놓다.’로 되어 있다. 이 수업을 진행한 선생님은  ‘목숨을 바치다’라는 어휘를 생각하면서 ‘순국(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을 떠올렸던 것이다. 

  사람은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휘에 대한 연관성도 교사마다 제각기일 수밖에 없다. 이 선생님은  ‘목숨을 바치다 = 순국’이라는 강한 연관성으로 이러한 실수를 한 것이다. 이 선생님의 실수로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앞으로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목숨을 바치다’를  ‘순국’의 의미로만 사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어 수업에서 어휘는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영역 어디에서든 접하기 때문에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 어휘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가끔 수업 준비에 시간이 부족할 때 어휘 설명을 그림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무시하고 수업 준비 과정을 간과하면 안 되는 이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어휘 수업에서 사전적 의미에 대한 설명을 배제하면 안 되는 이유의 예,  

  ‘재다’(예: 몸무게를 재다. 체온을 재다 등)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무게나 온도를 알아보다’ 정도로 어휘를 지도할 것이다. 하지만  ‘재다’를 지도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사용해서’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재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한국어 사전에서 ‘재다’는 ‘자, 저울 따위의 계기를 이용해서 길이, 너비, 높이, 깊이, 무게, 온도, 속도 따위의 정도를 알아보다’로 되어 있다.   

  다음은 이 수업을 들을 학습자의 한국어 수준에 맞추어 의미를 줄이거나 용어를 쉽게 바꾸는 것이다. 학습자 수준이 중급이라고 가정할 때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볼 수 있다.


  ‘자, 저울 따위의 계기를 이용해서’  →  ‘어떤 물건을 사용해서’

  ‘길이, 너비, 높이, 깊이, 무게, 온도, 속도 따위의 정도를 알아보다’  →  ‘길이, 온도, 무게를 알아보다’


  따라서 중급 수준 학습자를 대상으로 ‘재다’를 지도할 때는  ‘어떤 물건을 사용해서 길이, 온도, 무게를 알아보다’ 정도로 의미를 설명한다. 이어서 PPT를 통해  ‘어떤 물건’에 체온계나 체중계, 자 등을 보여줄 수 있고 그것을 사용해서 온도나 무게, 길이를 알아본다는 의미를 사진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간혹 어휘 지도를 할 때 학습자 수준에 맞는 사전적 의미 전달을 무시하고 사진을 통해 시각적 전달만 하고 끝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방법은 학습자가 어휘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혼동하고 제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사진: 체중계 위에 있는 사람)

1. 여러분, 그림을 보세요. ‘재다’입니다. 

2. 여러분,  ‘재다’는  ‘어떤 물건을 사용해서 길이, 온도, 무게를 알아보다’입니다. 그림을 보세요. 이 사람이 지금 이 물건을 사용해서 무게를 알아보고 있어요. 이 사람은 지금 무게를 재고 있어요.


  1과 같이 사진만 보여주고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학습자는 체중계를 보고 무게를 알아볼 때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재다’를 오해할 수 있다.


  나에게 어휘 수업 준비는 늘 시행착오의 연속이며 부담스러운 숙제이다. 학습자 수준에 맞는 사전적 의미 설명의 단어장 정리를 시작으로 관련 사진 찾기, 어휘 연습 방법, 어휘 기억 방법, 문장과의 연계, 숙제 등 준비할 것이 참 많은 어휘이다. 

  이렇게 준비를 다 한 들, 실제 한국어 수업에서는 또 다른 좌절에 늘 부딪힌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공부 안 하고 나를 늘 바쁘게 공부시키는 발랄한 학습자들... ㅎㅎㅎ)


  어휘 지도를 할 때 의미 전달이 정말 어려운 경우, 최후의 수단은 역시 영어로 전달해서 학습자들에게  등 고향 말(자국의 언어)로 사전을 찾아보게 하는 것이다. 


  나에게 너무 쉬운 한국어 어휘지만 수업에서 학습자에게 전달할 때는 과정을 통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잘못 알려준 어휘를 열 번 써가며 그 의미를 외우고 있을 학습자를 생각하면 어쩌다 한 번 있는 작은 실수라고 하기에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게 될 수 있기에. 



생각 나눔!


  매 학기 수업 시간에 다루는 어휘를 학습자 수준에 맞게 사전적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한 권, 두 권 늘어가는 노트가 학습자들에게 도움되는 어휘 사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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