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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07. 2020

프랑스에서 다시 학생이 되다

한국어 교사가 바라본 프랑스 교사의 불어 수업

프랑스 니스에 도착해서 처음 산 과일들

  우리는 겨울이지만 너무 두꺼운 옷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프랑스 남부 지방을 선택하기로 했다. 겨울에 봄 날씨 정도를 기대할 수 있고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는 프랑스 니스를 목적지로 결정했다.


  앞서 말했듯이 불어를 배우는 학생의 입장보다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언어 교사로서 프랑스 현지의 어학원을 경험하고픈 맘이 더 컸기에 뭔가 배우고 올 수 있는 큰 어학원을 선택했다. 여러 어학원을 알아본 끝에 마침내 나는 전 세계에 지점을 두고 불어를 가르치고 있는 A 어학원에 2주간의 단기 어학연수를 예약했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이 학생의 입장보다는 교사 입장에서 보겠다는 의지가 많다고 했지만 그래도 역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프랑스까지 왔는데 불어를 잘 배우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여러 고민 끝에 내가 어학연수를 받는 동안에는 학교 근처 프랑스 현지인의 가정에서 지내는 홈스테이를 하기도 했다.

  2주 어학연수가 포함된 한 달 프랑스 여행에서 불어를 유창하게 배울 거라는 기대보다는 그저 불어를 좀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뭔가를 찾을 수 있기를 원했고 그것을 프랑스 어학원의 수업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드디어 한국을 떠나 토요일 밤 10시쯤 프랑스 니스에 도착해서 홈스테이에 짐을 풀었다. 일요일에는 근교를 가볍게 산책하며 하루를 보내고 월요일 아침 8시가 넘어 어학원으로 향했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첫날, 어학원의 정문을 들어서자 신입생들을 맞이할 교사들과 행정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여럿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프랑스에 왔음을 실감했다.

  첫날 레벨 테스트 결과, 이탈리아에서 단체로 온 12명 정도의 학생들은 한 반으로 만들어졌고 우리 반에는 나와 독일, 우크라이나, 그리스, 브라질에서 온 사람 등 6명 정도가 있었다. 오전에 레벨 테스트를 마치고 각자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첫 수업이 시작됐다.


  “여러분, 수업 시간에 무조건 말을 많이 하세요.

    말을 많이 해야 불어를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오전에 레벨 테스트를 마치고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어학원의 수업을 총괄 지도하는 코디네이터 선생님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한 말이다. 평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당하신 말씀을 해 주셔서 나는 안심이 되었고 이제 나는 이 어학원에서 불어를 잘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나는 오리엔테이션을 함께 들어준 남편 덕분에 어학원 측의 공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너무 완벽했다. 하지만 실제 1교시, 2교시... 수업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실망이 가득했다. 학생인 우리가 말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우리 반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할 틈은 주지 않고 화이트보드에 판서만 써 내려갔다. 첫날, 수업 후기를 피드백하자면 다음과 같다.


숫자, 여러 나라 이름 등은 부교재를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선생님이 말도 없이 판서를 하는 동안 우리는 그저 선생님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로마자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는 아시아인인 내가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면 판서에 필기체를 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로마자를 사용하는 학생들만 있더라도 언어 교사는 판서에 필기체(cursive)가 아닌 정자(block letter)를 써야 한다.  


  교사는 판서를 할 때마다 필기체를 썼고 나는 그 필기체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알파벳이 맞는 건지 의심하느라 교사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집중할 것에 집중하게 하라”


  이 말이 맴도는 수업 시간이었다. 중요한 문법을 가르치면서 실수로 흘려 쓴 필기체 때문에 그것에 집중하느라 문법을 놓친 학습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실패한 수업이다.

  나는 그동안 나의 판서는 어떠했는지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수업 시간에 갑자기 급하게 쓰는 단어나 문장을 정자(block letter)로 또박또박 쓰지는 않았다. 이 정도는 다 알겠지. 하는 마음으로 썼다가 다시 지울 때는 ‘왜 이렇게 썼지?’ 하고 내가 놀랄 때도 있었다.   


  학생의 책상에 앉아 바라본 첫 수업, 한국어 교사로서 나는 여러 가지를 반성하고 생각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은 교사의 수업을 따라갈 뿐이다. 준비되지 않은 교사의 수업은 학생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명심할 것이다.


가끔 나를 혼자 배를 타고 산으로 가게 한... 우리 반 선생님의 필기체(cursive) 판서



생각 나눔!


  판서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 그 시간, 학습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판서는 더욱 계획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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