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
은우는 말이 유난히 느린 아이였다. 36개월, 한국 나이로 4살이 될 때까지도 ‘엄마’와 ‘맘마’의 중간인 ‘왐마’ 정도 내뱉었을까. ‘아빠’를 부른 적이 있긴 있었을까. 한 문장으로 서술하기에는 아까운 길고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말이 조금 느릴 뿐 인지능력은 괜찮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던 의사 선생님께서도 세 돌을 앞둔 영유아 검사에서 말씀하셨다.
“음... 36개월까지만 기다려보고 그때까지도 말이 트이지 않으면 소견서를 써드릴게요. 좀 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그 말씀을 들었을 때의 나의 심정은 ‘올 것이 왔구나’였다. 외면하고 싶던 순간이기도 했다. 내 아이는 말만 트이지 않았을 뿐이라고, 아이만의 속도대로 크고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믿으며 기다렸던 시간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의 기한도 두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하다.
“엄마가 수다쟁이어야 아이가 말이 트이지.”
아이를 볼 때마다 이 말을 조언이라고 해주신 옆집 할머니는 아실까? 내가 얼마나 미친년처럼 아이에게 말을 거는지 말이다. 아마 우리 집 천장에 CCTV가 달려있다면 눈물이 나서 못 볼 지경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 눈물겨운 노력을 알지도 못할 거면 제발 함부로 조언을 전하지 마시길 바랐다.
“은우야, 오늘 간식은 싱싱한 딸기야. 딸기는 새빨간 색이지. 오동통한 몸통을 깨물면 새콤달콤한 과즙이 나올 거야. 한번 깨물어 볼래? 아이코, 우리 은우 찡그린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럽네.”
“우리 귀염둥이야, 하늘 좀 봐봐! 마치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이 새파랗다. 뭉게뭉게 구름은 폭신한 양탄자 같아. 저 양탄자 구름을 타면 어떤 기분일까?”
소귀에 경을 읽는 게 낫겠다. 아무런 반응도 없는 아이 앞에서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나. 해 줄 말이 더 이상 없을 때엔 동요를 부르고, 동요 레퍼토리까지 떨어지면 가요를 불렀다. 그마저도 지칠 땐 불경을 외우듯 구구단을 외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순간은 쉬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말이 트이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의사 선생님과 약속한 36개월이 되기 며칠 전, 손톱만큼 가지고 있던 기대를 단념하며 발달센터에 예약전화를 걸었다. 발달 장애 바우처도 알아보았다. ‘장애’라는 단어를 보고 괜스레 마음이 서글퍼진다. 오래 알아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약간의 서글픔, 그냥 그 정도였다.
그런데 예약 전화를 마치고 업무를 보던 내게 은우가 다가왔다.
“엄마, 으누 목 말나효. 무울 듀세효.”
“응? 뭐라고 은우야?”
“아이 참, 목 마르댜고효. 무울 듀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엄마 아빠라는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가 또박또박 문장을 내뱉고 있었다. 약속의 36개월, 은우는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우리 아이의 말이 드디어 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