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53
오랜만에 수어로 통화하고 있는 이를 보았다. 전철 안이었는데 그 활발한 손동작과 생기 넘치는 표정에 절로 매료되어 실례인 건 알지만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너무 빨라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으나 표정이 밝았고 종종 웃음을 보이며 상대를 놀리기도 했으니 기분 좋은 대화임이 분명했다. 입가가 실룩이며 미소가 지어졌다. 딱 맞춘 퇴근 시간의 북새통 직전이라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이 있었다.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영상통화를 하면서 자유로운 다른 손은 열심히 움직였고 표정도 다양하게 짓는 이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분명한 영상통화였지만 양쪽에서 간간이 나오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목에서 울리며 나오는 소리. 주변인들의 얼굴은 다소 불편해 보이기도 했고, 난감해하거나 애써 모른척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몇몇은 짜증을 내는 듯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나의 감각이 둔해지면 다른 어떤 감각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한밤중에 불을 다 끄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방에서는 어떤 작은 소리가 들려도 흠칫 놀라게 되지 않던가. 잘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에 더 잘 들으려고 하게 된다. 잘 들리지 않는다면 있는 힘껏 더 잘 보려고 하지 않을까.
오래전에 수어 초급 과정을 들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말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언젠가 수어 통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어에 첫발을 들였었다. 선생님은 수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농인을 이해하고 이 사회에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농인들과 가까이서 생활하시는 선생님 덕분에 가톨릭 농아 선교회에도 가보고,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에서도 처음 사제품을 받으신 청각장애인 박민서 신부님의 수어 미사도 봉헌할 수 있었다. 근무와 시간이 겹치면서 계속 맞지 않아 더 이상 깊게 배울 수는 없었으나 마음으로는 늘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도 언어다 보니 연습을 하지 않아 조금씩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 언젠가는 다시 해야지 생각만 하고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국립 국어원의 수어 소개는 아래와 같다.
[한국수어의 의미]
- 청각장애인들은 소리로 말을 배울 수 없어서 ‘보이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 ‘보이는 언어’가 바로 ‘수어 (手語, Sign language)’다. 이처럼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농인’이라고 한다. ‘한국수화언어법’에 따르면 ‘한국수어’는 ‘한국수화언어’를 줄인 말로, 한국어나 영어와 같은 독립된 언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수어는 한국어와는 문법 체계가 다른, 대한민국 농인의 고유한 언어이다.
[한국수어, 농인, 농문화의 의미] _「한국수화언어법」 (법률 13978호) 제3조 정의 참조_
- 한국수어 : 우리나라 농인들이 사용하는, 보이는 언어 (한국어와는 다른 고유한 형식이 있음)
- 농인 : 청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로써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
- 농문화 : 농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형성된 모든 생활양식
사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수어를 나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조금밖에 알지 못하면서 낯선 이들이 말을 걸어올 때라든지 아무하고도 교류하고 싶지 않을 때라든지 자신에게만 함몰되고 싶을 때, 모든 걸 피하고 도망가고 싶을 때, 종종 아니 자주 안 들리는 척, 말을 하지 못하는 척했다. 간단한 수어만으로도 사람들은 당황했고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으며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바로 뒤돌아서 가버렸다. 안심되고 다행스럽게 생각되면서도 조금은 외로워졌던 경험. 그러고 나면 무엇보다 죄책감이 들고 미안했는데 다음에도 또 나는 나를 보호하고 숨기는 걸 우선시하며 미약한 실력의 수어를 무기로 사용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뻔뻔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가끔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속이며 살고 싶지만, 비장애인으로의 삶을 조금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지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수어는 연습해야지 생각만 하면서 지화로 이름만 몇 번 써보고 율동 찬양에서 나오는 수어 동작 몇 개를 하면서 혼자 포근해하고 있다.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님이 초대 주임 신부님이셨고 수어 미사를 봉헌하는 에파타 성당이 마장동에 준공되었다. “에파타!”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열려라!”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르 7,35)
에파타 성당을 후원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미사를 봉헌한다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한번 가 봐야 할 텐데, 이 또한 생각만 하고 5년이 지나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흘리며 이렇게 지내다가 문득 이번처럼 수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마주칠 때면 속으로 혼자서 반가워한다. 손과 표정은 언제나처럼 아름답다.
덧+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님은 지난 5월에 시카고 가톨릭 연합신학대학원(Catholic Theological Union in Chicago)에서 실천신학 박사학위를 받으셨다. 전 세계에서 가톨릭 청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가톨릭 실천신학(가톨릭 농인 교회) 박사학위 취득이라고 한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에파타! 시노달리타스에 관한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인데 여기도 “에파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