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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울한 로보트 Oct 21. 2023

0. 신인류 - 나를 괴롭히는 너 누구냐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 너는 인간도 아니고 신인류다

굳은 다짐과 달리 무려 지난 3주의 긴 시간 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몸이 다시 안 좋아진 것도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 회사에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 게 컸다. 복귀과정을 준비하느라 부산스럽게 괜히 바빴다. 아파서 나왔고 여전히 아픈데 다시 돌아가고 싶다. 노예를 벗어났는데 기어코 다시 노예가 되지 못해 슬퍼하는 나를 보며 새삼 내가 낯설면서 어리석고 또 불쌍하고 미련하게 느껴진다. 이런 모자란 나를 내가 아니면 누가 사랑하겠냐는 마음으로 다 받아주기로 결심했다. 


회사 생활의 고통은 여러 곳에서 기인하지만 개인적으로 나의 경우는 새로운 종류의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법을 처음으로 배우는 성장통이 제일 힘들었다. 특히나 나를 괴롭히는 상사가 있을 때는 정말 회사가 죽기보다 가기 싫었다. 지난 2-3일간 나의 옛(이고 싶지만 자꾸 현으로 돌아오는) 상사의 원격 괴롭힘에 시달리며 그가 인간이 맞는걸까라는 질문이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마치 그는 인간이 아닌 신인류같달까? 황당하게도 이런 신인류가 어느 회사에도 존재한다. 또한 그런 신인류와 어떻게 교류하는 지를 회사 생활에서 처음으로 배운다. 성장이라는 말이 무색한 30대 후반의 나에게도 이런 신인류를 만나며 겪는 성장통은 여전히 참 아프다. 


도저히 이해할래도 이해가 안 되는 신인류, 나의 상사
그는 오늘도 나를 아프게 한다.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내가 싫은 사람은 그냥 안 만나면 그만 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싫어도 만나고 이야기도 하고 심지어 협력도 하고 한편도 하고 때로는 죽기보다 싫지만 아부까지 해야 한다. 더군다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내 상사라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부딪힐 때가 놀랍도록 잦다. 내 상사가 선을 넘을 때마다 나는 마치 한 마리의 새처럼 리듬체조를 하듯 우아하고 현명하게 조금씩 경련을 보여주며 튕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와 나의 관계의 본질이 바뀌는 경우는 많지 않다. 


나의 상사는 자신이 나의 영원한 "갑"이고 계속 내 위에서 군림하며 나를 "을"로 부릴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의 상사는 내 앞에서 리듬체조 따위는 안 한다. 입으로 체조를 하며 나의 마음을 체조시킨달까. 그런 그에게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경련을 일으키고 너 그러지 마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자체도 하나하나 엄청난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쓰면서도 뭔가 나쁜 말이 입으로 자꾸 끓어 올라오는 기분이다. 


남의 의견을 통해 자신을 바꿀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그 자리에 너 (=내 상사)는 없겠지? 나도 나를 못 바꾸는 부족한 사람이니 그를 원망하진 않는다.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받아들이자고 의미 없는 주문을 반복한다. 


회사의 특성상 더욱 힘든 점 중 하나는 이 싫은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구축하며 철저히 상업적인 관계를 영원히 (?)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원은 아니지만 그가 나가거나 내가 나가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악연이기에 본질적으로 영원으로 느껴진다. 


회사에서의 악연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회사를 나가야) 끝나는
극단적 인연이다

더욱 큰 문제는 천성적으로 남을 못 해하는 나 같은 바보들에게 일어난다. 나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을 보면 꼬리가 자동으로 흔들리듯 원수도 사랑하고 싶다. 예수 같은 아가페적 성격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누구와 충돌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피하는 태도에서 우러난 특성이다. 사회생활 초반의 나를 되돌아보면 당시 나는 상사가 미웠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나를 좋아해 주길 미치도록 간절히 원했다. 친해지고 싶었다. 그가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길 바랐다. 답도 안 오는 벽을 향해 사랑고백을 하듯 그에게 계속 다가갔다. 그럴수록 실망만 더 커질 뿐. 그걸 언젠가 깨닫고 사랑고백을 멈춘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어딘지 모르게 나를 계속 실망시키는 나의 상사를 볼 때면 그냥 인간이 이렇게 싫어질 수가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상사를 볼 때면
너의 바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계속 떠오른다.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맵게 당하면서 깨달은 소소한 내용들을 아래에 공유한다. 사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니 기대 없이 읽어주시길 바란다. 


1. 최소한의 도리만 하기 

친해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열심히 해줄 필요도 없다. 이런 사람들은 강약 약강이라 잘해주면 내가 약자라 생각하고 더 부린다. 또 내가 미운 마음에 조금만 밀어내면 또 나를 개념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꼬투리 잡히지 않게 적당히만 해주자. 딱 내 도리만 하자. 뒤에서 욕하지도 말자. 내가 그의 레벨로 내려와 흙탕물 싸움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2. 애초에 미친놈이라고 기대하기 

기대치를 아예 오히려 반대로 세팅해 보자. 그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그가 당연히 그렇게 행동할 거라고 기대하면 오히려 꽤 많은 상황에서 기대치보다"는" 나은 행동을 보여준다. 그의 행동이 여전히 사회적 잣대에서 보기엔 그릇된 행동이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당하는 내 입장에서는 최악을 기대하면 차악이 온다. 


3. 한 번 배우면 조금은 덜 아프다  

대처기제에 대해 다른 글에서 말했듯,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처기제가 만들어지고 있어서 그래서 더욱 아픈 것이다. 성장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1&2를 마음에 두고 기대를 내려놓은 상태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처럼 이런 인간들과의 관계를 꾸리다 보면 조금은 덜 아프게 되는 것 같다. 아플 일이 약간을 덜 생긴다. 예전 어느 누군가가 말했듯 감정도 돈처럼 아껴 쓰다 보면 감정을 소모할 일이 좀 더 줄어드는 거 같다. 내 마음을 쓸 가치도 없는 사람에게 마음을 안 쓰는 법을 한 번만 배우면 아주 약간은 덜 아파진다.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나 몇 년째 아프다..) 


타고나길 본성적으로 나와 안 맞는 사람들과도 아무리 짜도 물 한 방울 안 나올 만큼 드라이한 관계를 만드는 것. 그러면서 나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나만의 가면을 써야 하는 것. 그것이 슬픈 직장생활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험난한 세상에서 오늘도 하루를 이겨낸 우리 모두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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