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필사적으로 잠에서 깨기 위한 새끼 인턴의 과몰입9
배가 고픕니다.
오늘은 찜닭이 먹고싶습니다.
드디어 금요일입니다. 벌써 마음이 붕 떠있습니다. 물론 주말이라고 거창한 건 하지 않습니다. 그저 누워있겠죠. 이번 주말에는 본가에 가니 가만히는 못있겠지만, 그렇다고 뭘 하지도 않을겁니다. 그냥 쉴겁니다. 가만히 누워서, 아무것도 안할거에요. 맨날 자도자도 피곤하다 하던 아빠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이짓을 어떻게 20년 넘게 하고 있을까요. 신기할 따름입니다.
소울푸드, 찜닭
본가에 가서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합니다. 엄마 요리라면 다 맛있지만 그 중에서 제일은 찜닭입니다. 우리집 시그니처 요리라고 하면 바로 찜닭을 떠올릴 정도로, 맛있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입에 안 맞고 안 맛있는 게 어딨겠냐만, 우리 집 찜닭은 정말 맛있습니다. 그날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저녁으로 찜닭 먹을 생각하면 모두를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습니다.
우선 찜닭용 닭, 감자, 양파를 준비합니다. (다른 야채가 있다면 더 넣어도 좋습니다. 우리 집은 오만 야채를 다 때려넣으니까요.) 우리 집은 기름이 많은 걸 안좋아하기 때문에 닭껍질을 다 제거합니다. 잡내가 나면 안되니 뼈 뒤에 붙은 내장이나 이상한 찌꺼기도 제거해줍니다. 손질한 닭을 한번 더 행구고 큰 냄비에 넣습니다. 닭이 살짝 잠길만큼 물을 붓습니다. 이때 감자는 맨 밑에 깔아줍니다.
고추장 찜닭
그리고 양념을 해줍니다. 우리 집 원조 찜닭 스타일은 고추장 찜닭입니다. 배달해서 먹는 찜닭이라고는 안동찜닭이 유일하던 시절(시절은 너무 갔나요. 나에게는 옛시절이니 시절이라 합시다.) 우리 집은 빨간찜닭을 했습니다. 고추장베이스의 찜닭입니다.
고추장 찜닭을 안 먹은지 제법 되어 기억이 자세하지는 않지만, 외할머니 고추장 두 국자, 고춧가루 조금, 매실액, 물엿과 빻은 마늘 얼려둔 것을 한 조각 넣습니다. 간장이나 멸치액젓을 넣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본디 간이라는 것은 맞춰가면 되는 것이죠. 정확한 계량도 없습니다. 엄마는 눈대중으로 휙 두르고 말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신기해하면 엄마는 한숨을 쉬며,
다 하다보면 알아서 하게 된다!
고 말합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김치찌개 간을 맞출 수 있는 걸 보면 나도 엄마 딸이 맞긴 한걸까요?
기본 양념을 제대로 넣었다면 팔팔 끓여줍니다. 닭이 다 익을 때까지 간 맞추고 졸입니다. 닭이 다 익었는지 확인하고 싶으면 닭다리를 확인합니다. 닭다리를 손으로 잡을 때 잡히는 부분과 두툼한 살짐이 이어진 힘줄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부분이 떨어지면 다 익은 것입니다. 아직 얌전히 붙어있다면 한번 저어주고 뚜껑을 덮은 다음 기다립니다. 기다림 끝에는 빨간 양념이 질척하게 졸아있습니다. 걸쭉한 양념 속 닭고기와 포슬포슬한 감자. 그리고 마무리로 올라간 썬 대파. 당장에라도 밥을 비벼먹고 싶은 비주얼이죠. 집에 시래기가 있으면 시래기를 넣어도 좋습니다. 양념이 푹 배여 시래기 씹을 때 마다 촉촉하거든요.
안동찜닭
우리 집은 이 찜닭을 '까맣게 한 찜닭'이라고 부릅니다. 밖에서 파는 안동찜닭은 소스는 맛있지만 닭껍질이 붙어있어 잘 시켜먹지 않습니다. 빨간 찜닭만 먹다가 짜장면을 좋아하는 동생이 태어난 뒤론 까맣게 한 찜닭도 종종 해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까맣게 한 찜닭을 하죠. 본가에 저는 없고 동생이 있는 까닭입니다. 아빠의 의견은 어디있냐고요? 아빠는 치킨 제외하고 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닭띠거든요. 아마도 동족을 먹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소스는 따로 만들지 않습니다. CJ였나요, 거기서 파는 안동찜닭 소스를 넣습니다. 이 발전된 세상, 간편하게 소스 한 팩으로 양념하자고요. 하지만 기본 3인 이상이 먹는 가족에게 소스 한 팩은 적습니다. 우선 양념을 고기에 뿌려놓고 배길 때 까지 기다린 다음, 물을 붓고 간장으로(다른 것도 넣은 것 같지만 식탁을 닦느라 보지 못했습니다.) 간을 맞춥니다. 막판에 청양을 썰어넣으면 매콤한 맛이 확 살아나죠. 뚜껑을 열면 매콤한 냄새와 먹음직스러운 갈색 빛깔이 반지르르한 매력을 뽑냅니다.
당면
고추장찜닭이 좋냐, 안동찜닭이 좋냐 물으면 대답 못 합니다. 둘 다 너무 맛있거든요. 뭐가 더 땡기냐고 물으면 한참 고민 끝에 어제 먹은 메뉴가 빨갰는지를 생각합니다. 둘 다 매콤한 건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찜닭사리로 뭐가 제일 좋냐는 물음에는 묻기도 전에 먼저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당면입니다. 녹두당면, 넓은 당면, 일반 당면, 중국당면, 다 상관없습니다. 당면. 당면은 최고입니다. 짱이라고요. 탄수화물인 주제에 밀가루도 아니라 어쩐지 죄책감이 덜어지면서도 양념을 잘 흡수한 쫄깃한 녀석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죠? 세일할때 마트에서 사 쟁여놓으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습니다. 이 녀석만 있다면 어떤 음식이든지 맛을 1단계 높여줄 수 있거든요. 최소한 양이라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당면은 미리 따뜻한 물에 불려놓았다가 찜닭이 절반정도 익어갔을 때 넣습니다. 그리고 물도 넣습니다. 당면이 생각보다 물을 많이 잡아먹거든요. 당면은 위에 올려야합니다. 밑에 눌러붙으면 설거지할 때 힘들어요. 눌러붙은 게 맛있다고요? 본인이 설거지 할거면 그렇게 하세요.
쫄면처럼 빨갛게 졸여진 면도, 자장면처럼 까무잡잡하게 물든 면도 모두 맛있습니다. 양념을 잔뜩 머금은 면발이 혀 위로 쏟아지고, 매끄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면 여기가 천국입니다. 인생이 기쁨이 뭐 별거 있나요. 이런 맛으로 사는거죠.
김치찌개 다음으로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요리는 찜닭입니다. 하도 좋아해 많이 만들다 보니 이제 대충 뚝딱뚝딱 만들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양도 많고, 재료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접근성이 쉬운 요리입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는 할 수 없지요. 그래서 본가에 갈 때 마다 무조건 먹는 음식입니다.
고기를 먹고 난 다음 당면을 잔뜩 건지고, 감자 하나에다 양념을 끼얹습니다. 감자는 타박합니다. 잘 으깨어 양념을 섞어먹으면, 매시드 포테이토가 뭡니까, 그것보다 훨씬 배는 맛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탄수화물의 향연, 당면치기.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닭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 아빠도 당면귀신이라 냄비는 금방 동이 납니다. 한 입, 한 입에 '음~ 맛있다~'를 연발하는 저와 동생을 보며 엄마는 뿌듯해합니다.
이번에는 일정이 많아 먹을 수 있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응석을 부려보는 것도 괜찮겠죠. 잠이 미친 듯이 왔다가 이제야 눈이 떠집니다. 역시, 맛있는 이야기를 하면 잠이 번쩍 깨는군요. 입에는 침이 줄줄, 벌써 찜닭을 한 입 먹은 것 같습니다.
배고파요.
찜닭 먹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