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0대가 되면서 20대보다는 좀 더 장례식이 익숙하다. 그때마다 검은 옷을 입고, 부의금을 내고, 절을 하고, 명복을 빌어주고, 가서 음식을 먹는다. 이제는 20대보다 좀 더 어른스럽다. 나름의 절차가 머릿에 있어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는 사람이 있으면 죽는 사람이 있듯이 나에게 장례는 죽음과 형식 그 사이에 있었다.
"해정아,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늦게 출근을 하는 날 휴대폰을 보니 부모님께 부재중전화가 2통이나 와있었다.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 부모님께 부재중 전화라니 순간 가슴이 철렁하였다. 20대에는 부재중 전화가 대수롭지 않았다. 30대가 되면서 마음이 약해진 건지 걱정이 많아진 건지 잦은 부재중 전화는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부모님과는 한없이 가깝고 나에게는 적당히 가까운 관계이다. 이모부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대학교까지 지방에서 다니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서울로 올라온 나였다. 때문에 서울에 계시는 이모와 이모부는 가족행사가 아니면 잘 만날 수 없는 사이였다. 그나마 한 번씩 지방에서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실 때쯤 부모님과 함께 보는 그런 사이였다.
이모부는 60대 중반을 넘었지만, 근래의 모든 60대가 그렇듯 검은 머리카락에 너무나도 건강한 모습이었다. 만날 때마다 '잘 지내냐, 서울생활은 어떠냐, 회사는 다닐만하냐'라고 물어봐주셨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이모부는 참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사회, 문화, 기업가 이야기 등 30대인 나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놀랐던 적이 많았다. 이모는 '너 아니면 들어줄 사람이 없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줬지만 나는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했다. 20대 때 나는 모든 사람들을 좋아하였고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30대가 되면서 나는 생각보다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이며,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고 이유 없이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모부는 내가 별다른 이유 없이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이모와 사촌형, 사촌누나, 지방에서 급하게 올라오신 부모님, 다른 이모들, 사촌들과 함께 입관식을 보았다. 입관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춘기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 입관식을 보며 울지 않았다. 그때는 으레 사람은 죽는 것이라고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별다른 감정 없이 입관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이모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슬픔 반 당혹감 반이 섞인 채로 울게 되었다. 이모부와 그렇게 가까이 지내지도 않고, 자주 뵙지도 않았던 그런 사이였는데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슬픔이 당황스러웠다. '너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왜 울고 있니'라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입관식을 보며 부모님을 투영했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비슷한 연령대인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가까운 시일 내에, 너무나도 피할 수 없이 부모님도 돌아가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언제든지 갑작스레 영영 못 볼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와닿는다. 때문에 30대가 되어야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되어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며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줄 수 있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부의금을 받으면서 애써 괜찮은 척하는 사촌누나를 보았다. 밥은 먹었냐, 니가 고생이 많다 하며 웃으며 위로를 해주다가도 사촌누나의 친구들, 직장동료들, 지인들을 보기만 하면 누나는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누나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은 누나를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지인들을 만나 한껏 울고 나면 누나는 잠시나마 별일 아니었는 듯 괜찮아진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오면 또다시 엉엉 울어 별일이게 된다. 그렇게 누나는 별일이 아니다가 별일이었다가 별일이 아니다가 별일이었다가를 반복한다.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고 출장에서 헐레벌떡 온 누나의 동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회사일 뿐이고, 직장동료는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며 마음속으로 온갖 똑똑한 채를 하며 생각하고 있었던 나였다. 그러나 직장사람들 역시 진심으로 사촌누나를 걱정해 주며 위로해 주며 혼자가 아니라며 다독여준다. 한 걸음에 달려와서 애도를 표하는 직장분들을 보며 사촌누나의 슬픔마음, 고마움, 위로받음이 느껴졌다.
40대의 상사들을 보며 왜 저렇게 직장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회사 밖에서도 볼 것처럼 친하게 지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때론 한심해 보였다. 40대 상사들처럼 되지 않으려고 반발심리로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 20대 때 30대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 되지 않으리라 다짐한 것과 같이, 늙지 않으려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 것이라며 다짐한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30대가 사회의 주역이라고 생각하며, 이제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겠다며 자부했던 나는 겸손해지고 또 배우게 되었다. 이모부를 사랑했던, 사촌누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와서 진심으로 명복을 빌어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