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아포가토
아침 7시 반 지옥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가 떠밀리듯 내려 사무실로 향하고 내 자리 컴퓨터의 파워 버튼을 초인종처럼 눌러 내가 온 것을 알린 후 신발은 실내화로 갈아 신고 텀블러에 정수기 물을 가득 받아 자리로 돌아와 일 할 자세를 잡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치열하게 살아낸 하루의 끝, 사무실 창 밖으로 땅거미가 내리고 건너편 사무실 불빛이 어둠 속 선명해진 후에도 시간이 얼마쯤 흘러야 기지개를 켜고, 나와 함께 종일 수고한 컴퓨터에게 윈도우즈 종료로 쉼을 줄 수가 있다. 퉁퉁 부은 발을 구두에 대충 구겨 넣은 채 그 공간을 벗어나면서 하루는 끝이 난다고 생각했었다. 진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일텐데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사무실에서 벗어나기 순간은 일주일에 5일 또는 6일간 반복되는, 우리 모두가 소위 일상이라 부르는 시간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그 일상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붇기도 했었다. 그러면 귀가시간엔 거의 늘 방전 상태라 침대에 기절이라도 하듯 쓰러져 자기에 바빴다. 회사 다녀오는 게 아니라 집에 다녀오는 지경... 그러자 이내 권태가 찾아왔더랬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그 일상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비일상이 절실히 필요했다.
처음엔 취미라는 말도 너무 거창했다. 뭔가 대단한 지속성이 있어야 하는 느낌이라서. 난 단순히 내일도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게 해주는, 다음 달이 더 의욕적일 수 있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아포가토(Affogato)는 이탈리아 어로 '끼얹다', '빠지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식사 후 후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에스프레소(Espresso)를 얹어 내는 것을 말한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차디 찬 나의 일상에 끼얹어줄 뜨거운 에스프레소 같은 비일상을 찾으려 애썼고 외국어에 여행, 운동과 각종 모임, 악기 배우기, 사진 찍기, 맛집 탐방, 카페 탐색 등을 거쳐 이제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운영하는 블로그까지! (흥미가 없어 일찍 접는 것들도 있었지만) 시작한 대부분의 것들에 재미를 느꼈고 '빨리 퇴근해서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매일 매일의 생활에서의 돌파구가 되었다. 개중에 몇 가지는 마치 다른 차원으로 이어주는 문과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즐겨하는 일이 전문적으로 하는 일에 즉 내 생계를 책임지는 일에 활력소가 되는 것이었다. 자소서(자기소개서) 한 칸에 실제 즐기지도 않으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한 듯이 적어 넣는 취미 말고 진정한 의미의 취미를 얻은 것이다. 직딩 어른의 취미.
서툴게, 치열하게 무작정 열심히만 쌓던 하루들에서 즐길만 한, 기다려지는, 그럴싸한 취미가 탄생한 것이다. 내 취미는 '글쓰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