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길은 험했다. 거칠게 흔들리며 여기까지 달려온 차가 멈췄다. 차는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형준은 괜히 차문을 거칠게 열고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산골짜기라 그런지 도시의 바람과 질이 달랐다. 아니, 질이 다른 이유는 하나 더 있을 것이다.
“여기 바람은 비린내 없이 깨끗하구만.”
형준은 담배를 한 대 꺼냈다. 담배는 아직 배급품이라 아껴 피워야 했다. 1년 전에는 오직 말보로만 피웠던 그는 아직도 디스의 쓴 맛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담배가 있다는 게, 살아서 이를 피울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얼굴만 찡그릴 뿐 불평을 내뱉지는 않았다.
담뱃재를 갈색 흙에 탁탁 털고 나서 그는 차 트렁크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머리부터 손잡이까지 쇠로 만들어진 쇠삽, 구급상자, 휘발유, 맹견용 팔토시, 소주 6병, 마른오징어 등이 들어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형준은 쇠삽과 소주, 마른오징어를 꺼내들었다. 이것저것 더 챙기고 싶었지만, 갈 길은 머니 몸을 가볍게 해야 했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고갯길을 휘적휘적 올라갔다.
1년 전 좀비 사태는 모든 것을 바꾸었다. 가출하다시피 집을 뛰쳐나간 지 10년. 중견 기업의 과장 자리까지 오르니 이제야 좀 살 만 했다. 바로 그때 좀비 사태가 일어났다.
형준은 지금도 그때의 방송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미인 아나운서가 단정한 표정을 잃지 않고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전염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먼저 눈이 빨갛게 물들고, 이어서 의식을 잃고 광란 상태에 빠져 다른 사람을 습격합니다. 특히 짐승보다 생명력이 강해져, 포획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현재 정부는 비상 방역 체제를 구축하고, 결코 감염자를 생기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아나운서의 아래로 ‘긴급! 광화문 일대에 감염자 발생. 현재 광화문 일대 폐쇄조치 중.’이란 자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방송사는 광화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말을 마친 아나운서가 순간 얼굴을 찡그리는 걸 형준은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그걸 ‘○○○ 아나운서의 굴욕’이라고 인터넷에 올려 모두를 웃길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끊기고 계엄령이 실시되자 그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었다.
1년간 죽은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추정으로만 20~30억 정도였고, 한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반 정도가 사망했다. 고작 1년 새에 그렇게 많은 피해가 나온 것은, 이 병이 공기 중으로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좀비가 된 자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려 뛰어다니니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바이러스 자체를 막을 수단이 없다 보니, 초반에 잘 대처하던 경찰과 군대도 몇 달 새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 와중에 그들이 가진 총기가 풀리면서 한국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그나마 사태가 일어난 지 8개월 만에 예방 백신이 암시장에 풀렸다. 아직까지 멀쩡한 사람들도 앞으로 멀쩡할지 장담할 수 없으니 이걸 맞아야 했다. 그런데 이거 한 방을 맞는 데 천만 원이 넘었다. 물론 현금이 아니라 그만한 값어치의 현물로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물량마저 딸려, 이걸 갖기 위한 약탈이나 방화도 엄청났다. 형준은 무려 2주간이나 약탈 패거리를 졸졸 따라다니다, 그들이 약탈에 성공하고 방심했을 때 하나를 훔쳐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백신 물량이 풀려 공짜로 나눠주는 걸 보고 억울해하기도 했지만.
좀비 사태에 대한 원인규명은 높으신 분들의 몫이었고, 살아남은 일반인들은 배급제와 공동생산제로 어찌어찌 연명해 갔다.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생필품 생산에 주력하니 어느 정도 먹고살 형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형준은 자동차 공장에 배치되어 주 6일을 근무하게 되었는데, 독신이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여유가 있었다. 사태 통에 많은 여자가 죽었지만, 남자는 더 많이 죽었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결혼도 문제 없을 듯했다. 차도 굴릴 수 있겠다, 먹여살릴 입 없겠다, 최적의 조건 아닌가? 이미 그에게 추파를 보내는 여자도 두엇 있었다. 좀비 사태 전에는 165센티미터의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을 여자들이었다. 덕분에 그는 지금이 오히려 전보다 나아졌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어머니였다. 그는 산골짜기에서 홀로 살아가는 어머니를 좀비 사태 때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어머니를 포기한 것에 가까웠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의 이동이 엄격하게 통제되었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나갈 방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나가지 않았던 것은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살 순 없다는 그의 무의식이 반영되었다 할만 했다. 이렇게 모든 사태가 끝난 후에야 어슬렁거리며 그곳에 가는 건, 어머니는 이제 돌아가셨을 거란 확신이 섰기 때문인 걸까.
슬슬 가을 초입이라지만 날은 아직 무더웠다. 두 손이 모두 짐을 들고 있어, 땀이 그대로 목까지 흘러내렸다. 길은 아직 멀었기에 그는 잠시 쉬기로 했다. 근처에 편편한 바위가 하나 있어, 거기 앉아 땀을 닦으며 소주를 한 병 꺼내 마셨다. 독한 액체가 목구멍을 지지자 살아있다는 실감이 났다. 한 모금이면 충분했으므로, 그는 마신 병의 뚜껑을 잘 닫아 비닐봉지에 넣었다. 나머지 병들은 혹시 산 사람이 있다면 선물로 돌릴 생각으로 들고 온 것이었다. 한때 담배와 더불어 화폐로 사용되기도 했던 소주는 지금도 그 위력이 막강했다.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끼며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 생사확인을 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머리 속에 어머니는 이미 망자였다. 그렇다면 슬프기라도 해야 할 텐데 도무지 슬퍼지지 않았다. 친한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낯익은 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걸 너무 많이 보아서였을까.
하지만 그것만으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러 간 게 언제였더라.”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근 십년 사이에 편지 서너 통을 보내긴 했다. 그곳에 전화가 놓여 있지 않았으므로 통화를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방문은…… 세 번? 두 번? 아니, 한 번이었다. 회사에 취직한 첫 해, 추석 선물이랍시고 받은 멸치 선물세트를 도무지 어디 써야 할지 궁리하다가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그러면서 자리를 잡았으니 앞으로 명절마다 찾아뵙겠노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설날부터 선물 대신 현금이 들어오자 어머니에게 갈 필요를 더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이 꼴이다.
형준과 어머니 사이에 큰 불화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머니가 그에게 바랐던 삶이 그에게 와 닿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대대로 물려받은 선산을 관리하고 밭을 일구며 살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수입은 둘째치고 이곳에서 자기 늙어죽을 때까지 같이 살자고 하는 것과 똑같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그간 둘이 쭉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를 그렇게 봉양하는 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다는 선언과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형준은 어머니에게 편지만 남긴 채 떠났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어머니는 그를 전혀 책망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보기 힘들었다.
아직 술기운이 남은 채로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깨에 걸친 쇠삽이 점점 어깨를 짓눌러왔다. 정부는 좀비가 된 사람을 치료할 방법이 없음을 선언하며 그들을 만나면 때려잡으라고 이 삽을 사람들에게 뿌렸다. 삽질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이 삽은 아주 유용했다. 찌르기, 베기, 후리기 등 오만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보니, 머리에 맞히지 못하면 소용없는 총보다 오히려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형준도 이를 휴대하고 다니며 아홉 마리의 좀비를 직접 때려잡은 적 있었다.
오늘, 이 삽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까.
하늘을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 언덕을 넘자 드디어 어렴풋이 마을이 나왔다. 마을이래봤자 일곱 집이 드문드문 퍼져 있는 형태였다. 시대는 21세기였지만 저 동네는 육이오 직후 건설된 꼬락서니를 하고 있었다. 그가 늘 떠났으면 했던 동네는 떠난 이후에도 도무지 변한 게 없었다.
형준은 자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와 절친했던 정씨 아주머니의 집에 먼저 찾아갔다. 차마 어머니부터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집에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어머니에 대해서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사람이 아니라면, 어머니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려줄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그는 마당 한켠에 오징어와 소주를 내려놓고 삽을 움켜쥔 채 크게 소리쳤다.
“아주머니, 접니다! 형준이! 안에 계시나요?”
좀비는 소리에 반응한다. 이 마을에 있는 좀비라면 누구나 이 소리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노인만 사는 곳이다 보니, 좀비가 되어봤자 시들어빠진 육체로 흐느적거릴 게 뻔했다. 그런 좀비라면 몇 마리라도 상대할 수 있었다. 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문이 덜컹 열리며 사람이 나왔다.
“형준이? 아이고 형준이 왔네! 이놈아, 살아 있었네!”
마르고 왜소한 체구의 노파가 구르듯 달려와 형준의 손을 잡았다. 머쓱해진 형준은 삽을 담벼락에 세우고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눈치챘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런 건 실례가 아니라고 그는 애써 되뇌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주머니. 여긴 다들 정정하시나요?”
“하이고, 말도 마라. 읍내 나갔다 뭔 좀빈지 잠빈지가 나온단 얘기 듣고, 다들 무서워서 출입을 안 했지. 그래서 우린 좀 나았다. 그런데 니 어매가…….”
“어머니가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그를 괴롭히던 하나의 문제가 끝나는 걸까. 그런데 아주머니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어매가 언젠가부터 보이질 않네.”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정씨 아주머니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좀비 사태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읍내로 갔다고 한다. TV와 전화가 있는 읍내에서 형준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였다. 집에서 라디오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라디오 방송에 비해 TV 쪽이 현황을 자세히 보도한 까닭이었다. 버스가 끊겨도, 읍내에 좀비가 발생해도 그녀는 고갯길을 하루 종일 걸어다니며 읍내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랬던 어머니가 사라진 건 다섯 달 전이었다. 누구에게 온다간다 말도 하지 않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사태 전에는 동네 모두가 한 식구나 마찬가지였지만, 어머니가 매일 읍내로 나가자 좀비 바이러스를 묻혀왔을까 두려워 모두 접촉을 피했었다. 그나마도 정씨 아주머니가 용기를 내 마을을 돌지 않았다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따라오겠다는 정씨 아주머니의 호의를 거절한 채, 형준은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집의 문을 열었다. 몇 달 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 터라 집에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다. 평소 유난히 깔끔했던 어머니는 이런 먼지를 질색하곤 했다. 먼지나 거미줄이 한번 끼기 시작하면 집이 무너질 징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신을 신고 마루로 오르려던 형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새 운동화를 신고 마루에 올랐다 회초리를 맞았던 유년기가 생각났다. 그는 피식 웃으며 신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갔다. 하지만 곧 머뭇거리다 내려왔다. 신을 벗은 그는 비로소 다시 올라와 문을 열었다. 구멍이 군데군데 뚫린 장지문이 드르륵 열리고, 몇 달간 근처만 맴돌던 햇빛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빈 방은 나름대로 정갈했다. 이불 한 채가 구석에 개어져 있었고 장롱과 앉은뱅이밥상, 손거울, 라디오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뭔가 옷을 담았을 것으로 보이는 종이상자는 열린 채 방치되어 있었고, 대신 벽에 박은 못에는 몇 벌의 낡은 옷이 걸려 있었다. 형준은 가만히 그 옷을 만지고, 이어서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아 보았다. 퀴퀴한 방 냄새가 섞이며 낯익은 냄새가 코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 엄마 냄새가 났다.
그가 어릴 적, 툭하면 코를 박고 울며 맡았던 냄새였다.
형준의 정신이 아찔해지며 갑자기 눈이 시큰거려왔다. 그대로 있으면 해가 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을 것 같아, 그는 일단 밖으로 나와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형준의 허리 높이에나 올 만한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쉰내가 확 끼쳤다. 아무리 냉장고라도 몇 달이 지난 음식을 멀쩡히 보존할 순 없었다. 형준은 반찬통을 모두 꺼낸 후 하나씩 열어보았다. 도라지 무침, 깻잎볶음, 창란젓, 삶은 고사리…… 그는 왜 그 음식들인지 한순간 이해했다.
모두, 자신이 좋아했던 음식뿐이었다.
그는 말없이 밥솥을 열었다. 쉬다 못해 누렇게 변한 밥이 한덩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밥그릇에 옮겨담고, 반찬을 모두 방 안의 밥상에 옮겨왔다. 그리고 한 술을 떠 입에 넣었다. 밥알은 씹기도 전에 이미 물러터져 있었다. 그는 역한 냄새를 견디며 이를 삼키고, 쉰 반찬을 하나씩 집어 입에 가져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힘주어 씹는 사이 반찬은 형태를 잃어가고, 동시에 어머니에게 맺혔던 죄책감이 흐물흐물 녹으며 전신에 번져 갔다. 두 번째로 수저를 움직여 밥을 떠넣자, 찝찔한 눈물이 국물처럼 입 안에 스며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밥을 삼킨 후, 그는 입을 막고 소리 죽여 통곡했다.
겨우 진정된 후 그는 이웃에 가 정씨 아주머니에게 어머니의 부재를 알렸다. 그녀는 이를 어쩌나, 형준이 불쌍해서 어쩌나, 하며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가 먹은 걸 정리하고 방을 환기했기에 방의 모양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방을 살펴보던 정씨 아주머니가 문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형준아, 수의가 없다.”
“수의요?”
“니 엄마가 수의 한 벌 장만해서 애지중지 다뤘는데…… 저 상자에 들어있었는데 없어졌지 않나.”
열려 있던 상자가 그것이었나. 하지만 형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수의만 없어진 걸까? 하지만 여기서 고민해봤자 알 수 없었다. 그는 곧 추리를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전 시간이 많지 않아 그만 일어나야겠습니다. 바로 올라가봐야 해서요.”
“알았다. 잘 들어가고, 어매 소식 있으면 읍내 내려가 알려줄 테니.”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그는 자신이 먹던 소주만 빼고 나머지를 정씨 아주머니에게 안겼다. 갑작스런 선물에 아주머니의 입이 벌어졌다.
“와, 이 귀한 걸 다 주나…… 동네 사람들이랑 노나야겠네.”
“뭘요. 참, 주사는 맞으셨어요? 좀비 예방 주사. 혹시 안 맞으셨으면 얼른 보건소 가서 맞으세요.”
“그래. 걱정 말고, 자네도 몸조심 하소.”
정씨 아주머니는 형준의 등을 팡팡 두드린 후 돌아섰다. 굳이 다른 동네 어르신들을 만나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는고민 없이 마을을 나섰다. 하지만 바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향한 곳은 선산이었다. 아버지의 묘, 조상들의 묘가 거기 있었다. 생전 안 하던 짓이었지만, 지금은 아버지 묘 앞에 오징어 한 마리라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싶었다.
아직도 죽지 않은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햇빛이 나무그늘을 지나며 산길을 얼룩덜룩하게 물들였다.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 밟으며 형준은 소주 두어 모금을 더 마셨다. 속이 꾸륵대는 걸 참아보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속은 곧 진정되었지만, 머리가 더욱 띵해졌다. 너무 강한 햇빛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며 형준은 좀비처럼 그저 걸어갔다.
어머니는 어디로 간 걸까.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였지만, 그 답을 곧바로 내놓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귓가에 형준의 이성이 자꾸만 속살거렸다. ‘니 어미는 좀비가 되어 산속을 헤메고 있을 테지, 그리고 넌 어미를 찾아내 때려잡기 위해 선산을 뒤질 테지…….’
“시끄러!”
형준은 아무도 없는 산길에서 고함쳤다. 환청은 그 서슬에 허깨비처럼 꺼져들었다. 하지만 매미 소리는 여전히 귀를 찌릿찌릿 울렸다.
“시끄러, 시끄럽다고! 닥치란 말이야!”
그는 비닐봉지를 던지고 삽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그 삽 옆면으로 나무를 힘껏 때렸다. 쾅! 나무가 요동치자 나무에 붙은 빨간 매미 몇 마리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삽으로 짓이기고, 그걸로도 모자라 발로 짓밟았다. 그가 발을 들자 바닥에는 빨간 동그라미 몇 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모양은 그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좀비화가 막 시작된 사람의 시뻘건 눈동자, 형준의 우정과 애정을 차근차근 짓밟아 나갔던 빨간 눈이었다. 그 눈이 말없이 형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형준은 발작하는 것처럼 발로 흙을 차 끼얹었다. 빨간 눈동자가 흙에 덮여 사라지자 곧 매미들이 다시 울어댔다. 그는 삽과 비닐봉지를 챙겨들고 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선산에 가면 다른 길을 통해 차로 갈 수 있었다. 당분간, 아니 평생이라도 그는 이 길을 다시 걷고 싶지 않았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덤불을 헤치며, 때론 삽을 휘둘러 낮게 깔린 나뭇가지를 꺾으며 그는 불도저처럼 전진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탁 트인 묘역이 나온다. 커다란 소나무 두 그루가 지키는 묘역은 그의 기억 속에서 항상 최후의 낙원이었다. 잘 다듬어진 봉분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어찌나 아늑한지, 그는 항상 봉분에 등을 기대로 잠을 청하곤 했다. 저곳에서 잠시 쉬면 차로 돌아갈 힘이 날 것이다. 그래야 했다.
-어우아.
형준의 귀에 다시 환청이 들렸다.
-어우아, 어우아.
환청이 아닌 것도 같았다.
소리는 묘역 쪽에서 나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환청이 아니라면 답은 하나였다. 그가 1년간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던 좀비의 신음이 저 앞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이곳에 온 목표일 가능성은 매우 컸다.
삽을 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다. 형준은 급히 소주를 따 꿀꺽꿀꺽 마셨다. 술을 마시면 취해야 하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마실수록 정신이 말짱해졌다. 하지만 손이 더 떨리지 않는 걸 보면 아무튼 제 역할은 한 것 같았다.
그는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시야를 막는 마지막 덤불을 날려버렸다. 답답했던 시야가 확 트이며, 묘역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우, 아.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가 그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공중에 서 있었다.
수의 자락이 공중에서 펄럭거리고 있었다.
썩어가는 손과 발이 공중을 헤엄치듯 허우적거렸다.
목에 감긴 밧줄이 소나무 가지에 연결된 채 위태롭게 흔들렸다.
어머니의 형태를 한 좀비는, 아니,
좀비의 형태를 한 어머니는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단 채 대롱거리고 있었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악!”
형준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그의 삽은 어머니를 매단 소나무를 내리찍고 있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애지중지했던 소나무를 삽으로 찍자 피처럼 붉은 송진이 찐득하게 흘러나왔다. 그는 송진이 온몸에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나무를 찍어댔다. 삽의 날은 매섭게 갈려 있었고, 또 놀랍도록 튼튼했다. 마치 도끼질을 하는 것처럼, 나무에 그어진 상흔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 깊음 속에서 그는 자신을 떠나보내던 어머니의 깊은 눈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고, 알려서도 안 되었을 것이다. 손거울에 비친 시뻘건 눈동자를 본 순간, 당신은 이 죽음을 그렸을 것이다. 산에서 뛰어내리거나 손목을 긋는 것 정도로는 부족했다. 이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게다가 선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들의 얼굴을 한 번은 더 볼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지 않았을까.
우지끈! 드디어 나무가 허리를 굽히며 신음했다. 나무가 앞으로 쓰러지자 허공에 대롱거리던 어머니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썩어가던 육체는 그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다리 한 짝이 끊어져 허공을 맴돌다 풀썩 떨어졌다.
형준은 그제야 삽을 내려놓고 헉헉댔다. 자신에게 무슨 힘이 생겨 이 나무를 꺾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앞을 바라볼 힘도 없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스윽 스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고개를 드니 어머니가 기어오고 있었다. 다리 한 짝이 끊어진 채, 남은 팔다리가 기괴하게 비틀린 채, 목에는 여전히 밧줄을 감은 채, 오직 아들만을 바라보며 생과 죽음 사이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어우아.
어머니가 입을 열어 신음을 냈다. 썩어가는 혀와 몇 남지 않은 이가 만든 발음은 형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저건 다른 좀비의 소리와 달랐다.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 형준에겐 저 소리가 ‘형준아’란 소리로 들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들리는 것으로 충분할 터였다.
“어머니, 오래 기다리셨죠?”
형준은 목이 메어 중얼거렸다. 더 기다릴 수 없어, 어머니가 그를 덮치기 직전에 그가 먼저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 곧 그의 어깻죽지를 깨물었다. 그러자 간신히 붙어 있던 이빨들이 와르르 허물어졌다. 잇몸만으로 깨무는 건 형준에게 아프지도 않았다. 차라리 피가 뿜어져나왔으면, 하고 형준은 생각했다. 그랬다면 어머니의 갈증이 조금이라도 해결되지 않았을까. 백신을 맞은 덕분에 그가 좀비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사실이 감사하지 않았다.
까칠한 수의 너머로 어머니의 메마른 등을 매만지며, 형준은 어머니의 앙상한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지난 일 년간 참았던 눈물을 모조리 내쏟았다. 수의가 눈물로 젖으며 썩는 내를 풍겨도 형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비명인지 흐느낌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며 형준은 짐승처럼 울음을 토했다.
한참을 형준과 씨름하던 어머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아들과의 포옹으로 만족한 것일까. 그녀는 뒤로 조금 물러나더니 그 자리에 엎드렸다. 그리고 고개만 들어 형준을 바라보았다. 반 너머 썩은 안구에 형준의 상이 일그러지며 맺혔다. 그녀의 입꼬리가 그 순간 조금 움직인 것은 그의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는 충분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쉬세요.”
울음 섞인 형준의 말과 함께,
그의 삽이 열 번째의 좀비를 쓰러뜨렸다.
아버지의 무덤 옆에 조그마한 봉분이 새로 올라왔다. 봉분에 입힐 떼가 없었기에, 형준은 그 위에 주변 잡초를 통째로 파내 올려두었다. 이렇게 해 두었으니 내년에 꼭 다시 이곳에 와야 한다고 그는 다짐했다. 벌초를 하지 않으면 여기가 봉분인지 언덕인지 헷갈릴 지경이 될 것이다. 그렇게 임시로나마 떼가 입혀진 무덤 앞에는 삽이 꽂혀 있었다. 이것이 어머니 묘의 비석이었다. 어머니와 그만이 여기 숨겨진 의미를 알 터였다.
어머니의 쉼터를 만든 그는 소주병의 뚜껑을 열고 남은 소주를 천천히 뿌렸다. 그가 많이 마셨기 때문에 양이 적은 게 아쉬웠다. 대신 내년에 올 때는 정종 됫병을 사다가 넉넉하게 뿌리는 게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오징어를 그 앞에 살며시 내려놓은 후 형준은 두 번 절했다. 그대로 한참을 엎드려 있다 일어난 그는 천천히 무덤을 돌기 시작했다.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낭랑한 노랫소리가 그의 귀를 타고 들어왔다. 그가 입을 벌리자 그 노래는 저절로 목구멍을 따라 구성지게 흘러나왔다. 휘영청 뜬 초승달 아래에서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했다.
“어허, 어어어 어리넘자 어허어.
저승길이 멀다 해도 삽작 밖이 황천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