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희 Feb 24. 2016

부족함과 결핍의 사이에서

만나는 돈의 무게


1999년 12월 31일 밤, 꼭 무슨 일이 생길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었던 그 밤의 자정이 지나고 먼 미래 같았던 2000년이 시작되었다. 2000년 1월 1일 00:01... 시간은 변함없이 1999년과 똑같이 시작되고 있었고, TV에서는 '밀레니엄 베이비'의 타이틀을 가지고 세상에 나온 '특별한' 아기들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1999년 1월 1일의 시작과 1998년의 1월 1일의 시작과 별 다를 바가 없는 2000년의 시작은 약간  허탈하기까지 했다. 어느 종교 집단의 말처럼 휴거를 기대한 것도 세상의 종말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왠지 2000년대는 1990년대와 다를 거 같았다. 손가락만 튕기면 SF영화에 나오는 먼 미래의 모습으로 마법처럼 바뀌어 있을 거 같았지만, 그로부터 16번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모습처럼 바뀌지는 않았다.


사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씩 달라지는 작은 것들에 익숙해져서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던  것뿐이다.

얼마 전 종영한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들처럼 아날로그가 익숙한 나는 삐삐에서부터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지나오는 변화를 온전히 경험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단 1년 사이에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부터 120여 년 전에 선교사들이 남긴 기록만 보아도 그 시간의 변화가 느껴진다.


그 소중한 날 아침에 조랑말들의 방울 소리가 우리 앞마당에서 들려왔다. 나는 곧 그 앙증맞은 짐승들의 긴 행렬이 중전마마의 선물을 잔뜩 싣고 도착한 것을 알았다. 자그마치 현금 백만 냥이 었다. 꼭 <아라비안나이트> 속의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때에는 2,500냥에서 3,000냥이  1달러쯤 되었기 때문에, 그 돈은 너그러운 조선 왕비께서 손쉽게 주실 만한,  또 선교사 한 사람이 쉽게 처리할 만한 액수였다.라고 기록했다.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중에서


당시 한국의 유일한 교환 수단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오래된 엽전이었다. 10센트 정도의 돈이 되려면 이것 100개가 필요했다. 그러므로 돈을 갖고 다니기 위해 지갑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20달러 정도가 되면 짐꾼이 져야 할 정도였다.---애너벨 메이저 니스벳의 <호남 선교 초기 역사> 중에서


1892년 11월 14일.
우리가 사는 이 나라는 문자 그대로 '부가 짐이 되는' 나라이다. 남자들과 당나귀는 등에 돈 짐을 지고 다닌다. 화폐는 가운데 구멍이 뚫린 둥그런 엽전인데 줄이나 새끼로 꿰어 다닌다. 3,350냥이 금화 1달러이다.---매티 노블의 <조선 회상> 중에서


그 당시 순회하는 데 한 가지 어려운 점은 은행 시설이 없는 것과 고단위 화폐가 없는 것이었다. 돈은 구리로 만든 동전이었는데 여행에 쓸 돈을 실으려면 조랑말이 한두 마리 필요했다. 멈추어 설 때마다 수상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주변을 돌며 무거운 돈 상자를 보면 환성을 질렀다.  ----조지 톰슨 브라운의 <한국 선교 이야기> 중에서


 언더우드 부인의 결혼은 1889년이었고, 매티 노블의 일기는 1892년이다. 이 당시만 해도 조랑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으므로 "돈"은 그 무게만으로도 "짐"이 되었다. 조선을 여행하기 위해 달러를 조선의 돈으로 바꾸어야 했던 서양인들은 감당할 수 없는 "돈의 무게"때문에, 여행 경비를 실을 말과 마부까지 필요했다.( 그 후 당오전, 당백전등의 발행과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화폐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890년쯤의 돈의 무게는 20달러만 되어도 짐꾼이 필요할 정도로 무거웠다.  부가 짐이 되는 것이다.


2016년 지금, 오늘의 돈의 무게는 몇 kg일까?


"0"이다.


DOS에서 window 10으로, 공중전화에서 삐삐(무선호출기)를 거쳐 스마트폰으로 변화하는 동안 우리의 지갑 속도 달라졌다. 우리의 지갑은 현금 대신 카드로 채워졌다. 그리고  또다시 달라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전자거래와 비트 코인, 오프라인에서는 신용카드를 벗어나 스마트폰의 앱을 통한 결제는 또 다른 세상이다. 실물 카드도 통장도 필요 없는 온라인은 SF영화에서처럼 카드도 스마트폰의 앱조차도 필요 없는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예감하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돈, 실제로 보이지 않는, 만질 수 없는 화면상의 숫자에 불과한 돈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진짜 무게도 "0"일까?



조선시대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시절엔 미친 소리였겠지만 우린 물을  사 먹는다. 집에서 쓰는 물에도 수도 요금을 내며, 버리는 쓰레기의 양만큼, 내가 가진 것의 가치 만큼 세금을 내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돈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수록 더 '고급진' 것을 얻으며, '흙수저', '금수저'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우린 '돈'에 민감해졌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것에도,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단지 명품을 위해 몇십 배나 되는 돈을 쓰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이유이든 각자 다르겠지만 "만족"을 위해서라는 것만은 같을 것이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신조어, 부족함과 결핍, 지나침과 넘침, 무소유와 욕심,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돈의 가치 대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할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고민했다. 나 역시 돈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하나의 "인간"이기에 억지로 포장하거나 이상적인 말을 싶지 않았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말이다.


망설이던 나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이 글을 쓰던 밤, 그녀는 내가 있었던 24시간 롯데리아에서 나의 건너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러 개의 장바구니와 여행용 가방을 들고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은 채 팔짱을 낀 채 앉아서 잠이 들었다. 그녀의 개인적인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단지 그녀의 피곤한 며칠간의 길 위에서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거나 정말 돈이 없었기에 가장 저렴한 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명절의 아이들과 식구들의 번잡함을 피해 온 곳에서 그녀를 만난 나는 덕분에 글을 마저 쓸 수 있었다.


1895년을 살았던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살았지만, 우리보다 더 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시대는 땅과 자연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자급자족적인 삶의 비중이 더 컸으며 모든 것이 돈으로 지불되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6년을 사는 우리에게 "돈"은 "필요악"이다.

현대 사회는 "돈"이 지나치게 모자라면 삶을 영위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먼저 살아남고서야 그 이후에 삶의 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 "돈"은 생존의  필요조건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우리가 원했던 생존이 아니라 "돈"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생존이었으며,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다.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이었지만, 이제 돈 그 자체가 목적이고 행복인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었던 돈이 목적이 되고, 돈에게 지배당하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원했던 삶을 살 수 없다.

플라톤의 행복의 다섯 가지 조건을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기가 생각한 것의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겨뤄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했을 때 절반만 박수하는 말솜씨

라고 했다.


플라톤은 적당한 "부족함"은 내가 가진 것들의 가치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부족하다면  그것 또한 고단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그녀처럼 말이다.

그녀는 고단해 보였다.

새벽에 내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 앉은 자세로 가방을 끌어 앉은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돈이던 다른 무엇이던 부족함이 지나쳐 결핍이라 말할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우린 결코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며, 오히려 더 그것을 원하고 갈망하게 될  것이다.


2016년의 돈의 실제 무게는 "0"이지만, 지금의 사람들이 느끼는 돈에 대한 마음의 무게는 조랑말에 싣던 그 무게보다 절대 가벼울 수 없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1895년을 살았던 사람들보다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더 행복한 것일까?


1895년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자유와 편리함과 풍족함을 누리는 우리는,

어쩌면 "부족함"을 모르며 "부족함"으로 인한 "불편함"도 참을 수 없는 지도 모른다.


부족함이 "결핍"된 지금, 2016년을 사는 우리는 조금  불편해져야겠다.


돈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진짜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위의 사진은 군산 해저에 침몰한 일본 화물선에서 나온 중화민국과 홍콩의 주화입니다.

 군산의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었던 '군산 근대건축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군산에 남은 일본식 가옥의 의미는 고통이었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