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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희 Jul 08. 2019

군산에 남은 일본식 가옥의 의미는 고통이었다(2)

여행의 의미-순례 NO.3

군산에 남은 일본식 가옥의 의미는 고통이었다(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긴 시간 동안 서랍에 있던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오래전에 쓴 글 이라 지금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주세요! 



https://brunch.co.kr/@manimanista/64



거꾸로 쓰는 여행기-순례#3 아직도 피가 흐르는 생채기 군산 - 두번째




사라진 것과 진짜 사라진 것들
마지막 여행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세 번째 순례 여행기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군산은 내가 만난 군산과 너무나 달랐다. 지나는 길에 맛집을 찾아 수산시장을 찾아 들렸었던 군산과도 달랐고, 영화의 촬영지였던 일본식 가옥 '히로스 가옥'과 심은하의 영화 배경이 되었던 초원사진관도 아련한 추억이 되지 않았다.
나의 여행의 시작은 선교사분들에 대한 자료 조사였지만, 나는 그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간 유적지와 박물관에서 선교사분들의 이야기 말고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직접 보게 되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그저 시험을 위해 외웠던 내가 알아왔던 역사는 여행을 통해 나에게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군산에 남은 일본식 가옥은 더이상 "아름다운 집"도 "관광지"도 아닌 고통과 아픔이 되어 다가왔다.



우린 아펜젤러 기념관으로 돌아갔다. 


"아펜젤러"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로 언더우드 선교사와 같은 시기에 조선에 왔다. 주로 서울에서 활동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기념관이 군산에서도 외진 비응항 근처에 있는 이유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레이놀즈 선교사를 만나러 오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료의 공통적인 부분은 배가 침몰할 때에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려다가 그의 조사였던 조성규과 함께 군산 앞바다에서 죽었다고 한다. 다행히 조선인 여학생은 그들의 희생으로 생명을 구했으나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자료들에는 이름만 남겨져 있었던 함께 익사한 '조성규'에 관한 자세한 기록도 볼 수 있었다.


주목할 부분은 '아펜젤러 기념관'이지만 노블 선교사의 기록도 많이 있다는 점이다.  


아펜젤러 선교사 가족

그 이유는 조선에서 태어나 자란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들과 노블 선교사의 딸인 루스 노블이 결혼했고, 다시 조선에 선교사로 왔다가 양화진에 묻혀있기 때문이다. 아펜젤러 선교사의 큰 딸인 "앨리스 아펜젤러"는 조선에 태어난 최조의 서양인 아기였고, 학업을 마치고 조선에 다시 온 그녀는 1950년 숨을 거둘 때까지 이화학당의 교장으로 섬겼다. 

노블 선교사 가족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고, 미국에 돌아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이땅에 묻히기까지 한 그들, 선교사의자녀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절러 선교사의 죽음이후에도 은퇴할 때까지 조선에 남았던 레이놀즈 선교사는 큰 아이 윌리엄을 이땅에 묻었고, 둘째 아들은 죽은 뒤에 이땅에 돌아와 양화진에 묻혔다.


호남의 7인의 선발대 중 레이놀즈 선교사의 아들이었던 존은 평생 조선을 사랑하고 기억했다. 그는 매일 아침 애국가를 연주했고, 죽은 뒤에 한국에 묻히고 싶어 했다. 

그들은 미국인이었지만, 어느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인의 삶을 살았다. 

기념관에는 여러 문서들과 책과 선교사의 후손이 기증한 유품도 있었다. 

그리고 언더우드 타자기도 보았다. 

언더우드 가문의 타자기로 인한 사업의 성공은 남장로교의 선교사들에 대한 후원으로 이어졌다. 그의 후원으로 호남지역에 오게 된 7명의 선발대는 많은 생명을 살렸고, 많은 여인들과 아이들에게 이름을 주었고, 병원과 학교, 교회가 되었다. 


만약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지금의 내 삶은 내가 했던 작은 선택들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상황에 떠밀린 경우도 있으며 선택을 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겠지만 다를 수 있었을까?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묻게 되었다.  

1,2층에 이어 별관에 있는 기독교 역사 전시관까지 보고,  마음 속에 '선택에 대해 여러 질문을 담은 채'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린 "다른 선택"을 했다.


 오후의 일정을 미룬 뒤 호텔의 작은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원래의 일정으로 돌아갔다.


전킨 선교사가 자신의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시작된 군산의 안락소학교, 영명학교와 멜본딘 여학교는 이미 이름도 바뀌었고, 거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무언가라도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이름이 바뀐 학교를 찾았다. 


군산 제일중고등학교로 바뀐 영명학교는 학교안의 연혁에 남장로교 선교회가 1903년에 세웠다는 기록을 만났고, 영광여자 중고등학교에서는 건물벽에 걸린 학교 연혁에 1902년에 멜볼딘여학교로 개교했다는 작은 흔적을 만났다. 


영명학교는 1919년 3월 5일 학생과 교사가 구암예수병원 직원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면서 특별과가 폐과되고 고등과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결국 1940년 10월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자진폐교했다. 후일 군산 영명고등학교가 되었다가 재정난으로 군산의 기업가가 인수하며 오늘의 군산 제일 고등학교가 되었다. 멜볼딘 여학교 역시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했다가 65년 다시 개교했으며 현재 영광 여자 중고등학교가 되었다. 


군산도 광주와 전주처럼 예수병원이 있었다. 

구암예수병원

전주예수병원은 아직도 전주예수병원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광주제중원, 광주예수병원이었던 병원은  현재 광주기독병원으로 남아있지만, 군산야소병원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1896년 가장 먼저 시작되었던 군산예수병원은 1907년에는 수술실과  병실이 갖추어진 남장로교 최초의 병원이기도 했다. 또 광주제중원과 애양원의 원장이었던 로버트 윌슨의 아들 제임스 윌슨이 1939년 원장으로 와서 일제에게 추방될 때까지 병원의 원장으로 섬겼다. 구암예수병원은 일제의 선교사들의 강제 추방과 해방, 이어진 전쟁 끝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안락소학교와, 영명학교, 멜볼딘 여학교, 군산예수병원의 사라진 흔적들을 확인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고우당과 히로스가옥이 있는 신흥동으로 향했다.

고우당은 여러번 왔었지만 다른 기분이 들었다. 

역사를 되새기고 온 뒤에 보는 고우당은 예전처럼 예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군산은 유난히도 일본식 가옥이 많았다. 

고우당도, 청담찻집도, 히로스가옥도 목구멍에 끼인 가시 같았다.


히로스 가옥을 나와 초원사진관을 지나 동네를 쏘다녔다. 

'정말 맛있다'는 후기가 남겨진 블로그의 맛집은 '정말 불친절'했고 '정말 맛이 없었다'. 


그리고 동국사로 향했다. 동국사의 마당을 비친 오후 햇살은 눈이 부셨다.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있는 동국사도,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들도, 일본은행 건물들 모두가 우리의 아픈 역사였다. 동국사 마당의 소녀상이 쓰디쓴 침을 삼키게 했다. 

민족혼 말살을 위해 강요된 신사참배. 이를 거부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학교가 폐교되었고, 선교사들은 추방되었다.


가볍게 시작한 여행이 점점 무게를 달리 하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오전에 군사을 떠났어야 했지만, 우리는 군산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은 비응항에서 칼국수를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신기루가 보인다는 긴 도로를 달렸다.

분명 저 멀리 물이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가보면 없었다. 

도로의 끝에 물이 있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은 내내 계속되었다. 


문득 인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앞에 있을 거 같은데 막상 가보면 없는, 

손에 잡힐 것 같은데 잡히지 않는 그런 거 말이다.

칼릴 지브란의 시가 떠올랐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말이다.


군산에 있는 초기 교회 중 개복교회를 찾았다. 

높은 계단을 오르고 마당에서 쉬며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우리는 먼저 이영춘 가옥에 들렸다가 만자산 교회로 불렸던 초기 교회중 하나인 지경 교회로 가기로 했다.


군산간호대학교 안에 있는 이영춘 가옥은 일본인 지주 구마모토의 개인별장이었고, 이영춘 박사의 진료소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시마타니, 히로쓰, 구마모토, 모리기쿠, 미야자키 등은 군산의 5대 부호로 불리웠다. 


군산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일본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일본식 가옥의 의미는 "고통"이었다. 

우리의 아픔이고 우리의 고통의 흔적이고 증거이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직접 겪었던 고통스러운 세월이고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지 말고 우리의 역사를 인정하고 다시 그러한 치욕의 시간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되새기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 의미를, 일본식 가옥의 존재 이유를, 부잔교를 세웠던 우리의 할아버지들의 뼈를 깎는 고통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셨던 우리의 할머니들을 잊어서도, 부정해서도 안될 것이다.



사라진 것들은 건물들 뿐인 것 같지만 진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기억이고 역사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해야 한다.







+++위의 사진은 군산에 남아 있는 일본식 신사인 "동국사"입니다.



                                                    

존 볼링 레이놀즈
성경번역의 주역이었던 레이놀즈(William D. reynolds)와 팻시 볼링(Pasty Bolling)이 첫 아들 윌리엄을 잃은 뒤에 낳은 둘째 아들로 1894년 9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미국에 돌아가 대학을 마친 뒤 1920년 남장로회 교육선교사로 내한하여 순천 광주와 전주 신흥학교에서 활동하였고, 1930년에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시립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늘 “미국은 제2의 고향이고, 한국이 제1의 고향”이라고 하면서 한국을 많이 사랑했다. 평생 김치를 즐겨 먹었고, 매일 아침 애국가를 피아노로 연주했으며, 한국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했다. 1970년 3월 20일 테네시에서 75세로 별세한 뒤, 그의 부인이 연로하여 한국에 올 수 없어 화장한 유해를 소포로 보냈다. 우체국 검열과정에서 유해가 ‘화공 약품’으로 오해받아 함부로 취급되고, 유골이 흩어지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외롭게 한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 묻혔다. 하관식에는 원일한(언더우드 3세) 장로 부부등이 참석하였다.



<군산 여행 정보>

군산 여행정보 사이트 주소입니다.

http://tour.gunsan.go.kr/index.gunsan


군산도 여행정보가 많고, 블로그 후기도 많습니다.

군산에 가보기 전에 1박 2일이나 영화를 통해 군산에 대해 먼저 보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군산은 TV 화면에 비추어진 단지 먹거리나 특이한 건물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눈을 열고 마음을 열어 군산을 보시기를 권합니다. 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시고, 아이들에게 잊혀가는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군산은 생각보다 가볼 곳이 많습니다. 구불길이라 이름 지어진 길들 위주로 코스를 잡으셔도 되고, 일정에 맞추어 그중에 가보고 싶으신 곳들만 가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아직 금강 쪽은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제 일정표의 다음 군산 여행의 출발지이지요. 

이곳엔 제가 다녀온 곳의 정보만 올리겠습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063-454-7870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67)

                                                                                                                                                                            http://museum.gunsan.go.kr/index.jsp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입니다. 11월~이듬해 2월)

                      

   ※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의 통합권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참!!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 얼마 전 전국 5대 공립박물관에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옛 군산세관(구 군산세관 본관)  063-730-8721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4-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49-38)

                                                                                                                                                                            

○ 관람시간 :월요일~금요일 9:00~18:00

  

   ※ 전라북도 기념물 제87호

   ※ 저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 휴관이고 법정 공휴일 또한 휴관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체관람일 경우 미리 예약하면 문을 열어준다는 직원분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군산관광정보 사이트에는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처럼  <화요일~일요일 9:00~18:00>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저처럼 꼭 군산세관 내부를 관람하실 분은 미리 전화로 확인하시고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근대문화역사발물관의 홈피에는 문의전화가 063-450-6110(군산시청 관관진흥과)로 되어 있습니다.              

    


+구) 미즈상사  063-446-2867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32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8-2)

 ○ 관람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17:00       



+장미갤러리  063-454-7870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67)

 ○ 관람시간 :월요일~일요일 10:00~17:00



+근대미술관(구 일본제 18 은행 군산지점)  063-446-9812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30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32)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입니다. 11월~이듬해 2월)


  ※ 등록문화재 제372호

  ※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의 통합권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장미공연장                           

전라북도 군산시 내항 1길 5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7-2)

       

 ○ 관람시간 :월요일~일요일 10:00~17:00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063-446-9811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14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23-1)

    

○ 관람시간 : 화요일~일요일 9:00~18:00

(동절기는 오후 5시까지 입니다. 11월~이듬해 2월)

   

   ※ 등록문화재 제374호

   ※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 근대역사박물관, 근대건축관, 근대미술관의 통합권은 근대역사박물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 고태수가 다니던 은행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진포 해양공원     063-450-6110(군산시청 관관진흥과)                                                         

전라북도 군산시 내항 2길 32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장미동 1-4)


해양공원의 자세한 정보입니다.

http://museum.gunsan.go.kr/content/sub03/03_08.do?act=view&Id=34&tct=03




+군산 아펜젤러 기념교회 063-467-2478, 010-6576-8000

전라북도 군산시 내초동 109-16


http://appenzeller.co.kr/

교회와 기념관 외에도 작은 카페도 있습니다. 또 게스트 하우스와 단체 숙소도 있습니다.

            

○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홈페이지에는 관람시간이 저렇게 써져 있지만, 미리 전화해서 확인을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성당 063-445-2772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7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가 12-2)

○ 운영시간 : 매일  07:30~22:00 첫째 주, 셋째 주 일요일 휴무.                 

  ※ 전화로 미리 예약하면, 줄 서지 않고 사실 수도 있답니다. 



+영국빵집 063-466-3477~8

전라북도 군산시 대학로 144-1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신풍동 1001-11)                                         

○ 운영시간 : 매일  8:00~22:00   휴무일은 신정과 구정 설날 당일만 쉽니다.            


+동국사



+고우당 063-443-1042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동 16-6

  ※ 고우당은 일본식 건축물을 숙박과 까페와 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히로스 가옥  063-454-3274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1길 1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신풍동 1001-11)                                         

○ 운영시간 :  8:00~22:00   

히로쓰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때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역이었다. 히로스가옥은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 곳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 등록문화재 제183호           



+이영춘 가옥 063-443-1042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동 16-6

  ※ 고우당은 일본식 건축물을 숙박과 까페와 식사가 가능한 곳으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히로스 가옥  063-454-3274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1길 17 

(지번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신풍동 1001-11)                                         

○ 운영시간 :  8: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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