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수업에서 언젠가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가지를 이야기 해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비교적 쉬웠다. 1. 하버드 2. 카카오 3. 학회 였으니 말이다. 이 세 경험은 유럽 라이프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근데 이번에 네 번째가 추가될 듯하다. 온지 단 23일 밖에 안됐지만,
진지하게 내 미래를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예정이다.
난 아직도 세상의 5%도 경험하지 못한 새내기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얼마나 경험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 몇 달이 나에게는 하나의 라이프 터닝포인트가 되어주기를. 그냥 여행이나 경험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저번 글을 올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내 본격 유럽 라이프가 시작됐다.
친구가 소개해준 뮌헨대 앞 카공 카페를 가서 공부하려고 노트북을 폈는데,
진짜 웃기게도 내 옆사람 내 앞사람 모두 나한테 말걸기 시잗함
온지 4일밖에 되지 않은 나는 이게 노멀한 문화인가? 하고 어리둥절했지만
영어로 열심히 떠들다가 셋이 친해져서 술먹고 놀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근데 다른 친구들 말 들어보니 내가 매우 럭키한 것이라고.. 보통 그렇게 쉽게 친그 되지 않는다고...
뭐때문에 그렇게 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내 옆에 있던 친구가 매우 friendly and talkative 했고 나도 같이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다른 한국 친구들은 여기 온지 첫 주에 친구도 없고 조금 우울했다고 했는데,
나는.. 뭐.. 그냥 여기랑 너무 잘 맞는다. 나 완전 유럽 체질인가봐.
한국은 카공하러 카페 가면.... 진심 걍 앉아서 자기꺼만 하다가 오자나..
여기는 그냥 와이파이 비번 물어보다가 친구되고
그 메뉴 맛있냐고 물어보다가 친구되고
엄청 프리하고 오픈되어있다. 놀랍다.
한국에서 노트북 두들기는데 누가 나한테 말건다? 그럼 저 xx 뭐지 뭔데 나한테 말걸어 나한테 뭘 원해 보통 이런... 반응이잖아요? 내가 삐뚤어진거 아니잖아요 그쵸?
여기는 일단 기본적으로 경계를 매우 안하는 듯하다. 뮌헨이 워낙 international city여서 그런걸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 나름대로 내가 뮌헨을 사랑하는 이유가 되겠다.
여기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바로 영어다.
영어를 항상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그 정도의 영어를 쓸 기회도 많이 없었기에 아쉬웠는데,
웬 걸... 이렇게까지 나에게 큰 무기와 강점이 될 줄 몰랐다.
이번에는 영국에서 네덜란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옆에 앉은 남자애랑 떠들다 보니 동갑이었다.
그 친구는 싱가폴 사람인데다가 옥스퍼드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놀러 네덜란드 놀러간다고 했다. 마침 우리랑 행선지도 겹쳐서 같이 놀게 됐다. ㅋㅋㅋㅋㅋ 여기는 이런 문화라고..
언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영어와 한국어를 할 때의 내가 다르고 성격과 자아가 달라진다.
영어할 때는 훨씬 더 말도 많아지고 친근해지는 듯하다.
언어는 단순 구조적 차이를 뛰어넘어 고유의 문화와 영혼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됨을 느낀다.
이런 언어 자아를 생성하기까지는 비교적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이 바로 나는 하버드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맞냐 틀리냐 많은 것들을 따지고 재고 무서워하느라 자아 형성은 커녕, 영어를 배우기 바빴던 첫 한 달.
그리고 그 뒤 조금 편한해지기 시작하고, 다양한 티비 프로를 접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쌓기 시작한 것 같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여기 와서 나는 아주.. 날라다닌다 ㅋ
너무 행운아다. 나는 참 복도 많아.
물론 부모님과 나의 많은 노력과 시간이 있었기에 뒷받침 되었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나는 국적과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하나의 가장 큰 장벽을 뛰어넘은 셈이다.
언어가 이렇게까지 나의 장점이 될 줄 몰랐다.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남에게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조금 더 자세히 봐야겠지만, 내가 공원 잔디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든. 누워있든.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하든, 무슨 옷을 입고 뭘 했든.
자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스타일도 모두 다르고 자유분방하다.
이는 분명 다양성의 차이일 것이다. 한국은 유럽에 비해 다양성이 정말 부족한 나라이니..
한국보다 훨씬 덜 피곤하다. 내가 여기에 뿌리내리고 싶어하는 가장 큰 아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아시아계 여성인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날들이었다.
다음 생에는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백인 남자인 애를 친구로 두게 되었고 그 애의 삶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와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이런 삶이 있을 수 있구나, 내가 살아온 날들과는 너무 다르구나, 부럽다 등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고
다음 생에는 백인 남자애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감정을 표정과 행동으로 분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 매우 자유로워 보이고,
스케이트를 타고 알프스 산과 스페인 등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는. 정글에서 아나콘다를 껴안고 사진 한 컷 찍는.
나같은 아시아계 여성은 혹시 위험하진 않을까, 너무 시골인데 무슨 일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얼씬도 하지 않는 곳들을
자유롭게 다니더라. 그런 삶이 있을 수가 있더라.
유럽 사람도 모두 나름이겠지만.
백인이라는 것과 남자라는 것. 그 둘은 현재 사회에서 특권임에 틀림없다.
나도.. 걱정없이 유럽 밤거리를 거닐다가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시골에 가서 스케이트와 자전거 등 각종 스포츠를 하고. 그런 새로운 경험을 매일매일 해보고싶다.
나같은 자유로운 영혼에게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º·(˚ ˃̣̣̥⌓˂̣̣̥ )‧º·
그럼에도 나는 매우 복도 많고, 나름대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이라도 이런 세상을 보았고 알게 되었으니 됐다.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
언젠가 회사에서 일할 때 책임님께서 나보고 ~~씨는 꿈이 직장인이에요?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얼마나... 현실을 담고 있는 말이었는지를 이제는 안다.
세상은 넓고 선택지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안정적인 하나의 길을 강요아닌 강요받는 듯하다.
아직 유럽 여러 나라들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유럽에 살면 더욱 인생이 다채로워질 것 같다.
일단.. 문화는.. 너무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