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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btube May 31. 2022

D+74 중간점검

나에게는 일기장이 3개 정도가 있다. 브런치, 인스타 비공개 계정, 직접 손으로 쓰는 일기장 이렇게 세 개.

왜 세 개씩이나 있나 싶고 각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셋 다 모두 필요하다.

브런치는 내 생각을 정리하는 용. 인스타는 순간순간을 기록. 일기장은 정말 아무에게도 하지 못할 말.


오늘은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또 브런치를 폈다.

독일로 교환학생을 온지 74일 째 된 지금, 나는 어느 지점에 있고 어딜 향해 가는지.

(방향이 있긴 한건지 의문이긴 하지만)

조금 더 의미있는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집어다가 정리해보려구.


본격 시작 전 오늘을 조금 기록해 보자면,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swapfiets를 타고 학교까지 갔다.

자전거 타고 등교하는 두 번째 날. 아직 어색하지만, 그래도 한 번 가본 길이라고, 눈에 익어서 그런지 조금 더 수월하게 갔다.

그리고 권진아와 샘킴의 closer 노래를 들으면서 가다가 하늘을 보라는 가사를 보고 하늘을 봤는데,

정말 높고 파란 하늘에 엄청 뭉실뭉실한 하얀 구름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더라.

좋은 노래와 좋은 날씨, 그리고 여유로움에 절로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요즘 새로 행복을 정의하게 되었는데, 편안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를 내리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거쳤는지..)

그렇게 달려서 MEP 수업 갔다가 잠시 공강시간에 남자친구도 만나서 샌드위치도 먹고.

어제 망쳐놓은 앞머리가 어색해서 이리저리 만지면서 Corporate finance 수업 준비도 조금 하고.

옆에 앉은 중국인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조금 냉담해서 다시 내 공부에 집중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또 자전거를 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죽어라 운동하기도 했다.

집에 와서는 오자마자 밥먹고 빨래하고, 또 독일어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오늘은 시간을 말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생각보다 쉽긴 하지만,,

역시 아직 숫자 체계는 나에게 익숙치 않아서 힘들다 ㅎㅅㅎ


<나의 1, 2, 3학년, 나의 이화>

1학년 때는 하버드 프로그램으로 꽉 차고 첫 사랑으로 아파했고,

2학년 때는 많이 싸우고 사랑하는 성장기였고.

3학년은 코로나가 시작됨과 함께 카카오라는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험을 쌓았고,

2021년, 즉 3.5학년은 학회와 금융 그리고 밤샘으로 가득 찬 한 해였다.


즉 정리해보자면 단 한 해도 쉰 적은 없는 것 같다.

항상 열정으로 가득찼고, 뭔가에 쫓기는 듯했고, 방향은 없으나 누구보다 열심히였다.

그러나 매일매일 무언가를 느끼고 배우는 중이었고,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오늘 그것들을 다시 보니까, 지금 내가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고,

다시 각성해서 조금이라도 더 productive한 생활을 하려고 이렇게 브런치를 편 것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 4학년.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거지?

22-1 독일에 있는 나는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달리기만 했으니,

나를 위한 휴식시간도 필요하다고. 나를 좀 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휴식과 여유 그리고 노는 것은 정말 미련 없이 하고 있는 듯 한데,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더 적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을 놀며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 힘들도 할 게 많아도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고 느끼고자 했던 지난 날들의 내가

더 나를 많이 돌아보고 느끼고 나를 위해 고민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복잡한 고민들로부터 탈출하고자 교환을 온 것도 맞기는 하다.. 그런 고민들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그냥 잠시라도 뇌를 비우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기를. 완전한 행복을 조금 길게 누리고 올 수 있기를 바라며 떠나온 독일이기에,

그 목표는 미련없이 이루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한국에서 살면서 할 수 없을, 혹은 어려울 여러 경험들을 여기 와서 많이 해보고 있기에, 더더욱 미련없는 교환학생 생활이 될 듯하다.

그러나, 오늘 나의 남자친구가 말했듯, 적어도 내가 가는 길이 어느 방향이었는지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중간점검이 필요할 듯하다.


교환학생을 어떤 의미로 남길지는 오직 나만이 정하고 만들어 나간다.


교환학생을 하며 하고싶은게 너무 많았다.

외국인 친구들과 파티하기, 영어 실력 향상, 공부, 인턴, 남자친구 사귀어보기 등등...


그러나 시간은 정해져있고 나의 몸은 하나이다. 다 할 수 없다. 현명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매일 나가 노는 것과 남자친구는 양립이 불가함을 알게 되었다. 현재는 남자친구에 집중 중이지만,

둘을 잘 balance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영어도 남자친구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느는 중이긴 하다.

그러나 language barrier가 확실히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잘 지냈지만, 막상 내가 지난 해들에 얼마나 깊은 생각들을 했고 내가 기록으로 남겼는지를 보고 나니,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시 기억났다. 나는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공유하면서 그걸 토대로 나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걸 좋아한다.

여기서는 생각없이 살아도 돼서 그냥 생각이 없는 걸 수도 있긴 해ㅋ

그러나 좀 더 깊이있는 대화, 혹은 가볍게 툭 던질 수 있는 사소한 생각들을 조금 더 많이 공유하면

더 많이 가까워졌을텐데, 라는 아쉬움은 들었던 것 같다.

나의 영어가 조금 더 많이 늘기를! 그리고 나도 한 층 더 용기내서 나아갈 수 있기를.


going out도 엄청 많이 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남자친구가 있으므로 반강제로 그만두긴 했지만,

FOMO의 일종으로 매일 많이 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이 나가서 사귀게 된 친구들 중 소수의 친구들은 매우 소중한 친구들로 나에게 남아줬다.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나의 뮌헨 일상을 꽉꽉 채워주는 친구들.


처음으로 swapfiets를 픽업해서 오는 길에, 좋은 날씨와 좋은 친구와 뮌헨에서 도로를 달리던 그 날의 그 기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밤에 술을 마시며 2026년을 기약하던 그 순간도.


나 바로 전에 뮌헨대에 있었던 이대 언니는, 교환학생의 목표를 하나 정하고 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막상 핑핑 놀고나니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며.

아직 교환학생 반도 안지났지만 벌써 무슨 말인지 알 거는 같아.

사실 인스타그램으로 친구들이 인턴하고 취준하는 과정들을 지켜보면,

of course I'm so happy for them, but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들게 된다.

나를 자극시켜주는 아주 적당한 정도의 감정이기에, 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그럼 되지.


그래서 생각해봤다. 내가 꼭 교환학생에서만, 혹은 유럽에서만 할 수 있는게 뭘까?

- 영어 수준급으로 올리기

- 독일어/독일에 대해 배우기

- 유럽 경제 빠삭하게 공부하기

- 독일 인턴

이 정도도 .. 많은 것 같다. ㅋㅋㅋㅋㅋ

저 네개만이라도 다 채우고 간다면 충분한 교환학생 생활이 되겠다.

특히 유럽 경제에 대해 배우는 것은 혼자 하기보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며 성장하고 싶었기에

여기서 학회를 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도저히 내가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결국 지원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스터디를 하지 못한다는건 좀 아쉽다.


가장 가고싶어했던 산은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지금. 게다가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해보고 싶어졌기에,

나의 미래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할 시기이긴 하다.


오늘은 졸려서 이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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