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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btube Nov 19. 2022

유럽살이 실상

어디까지나 이방인일 뿐. 그럼에도 내 가능성은 너무나 열려있다. 

언젠가 독일에 사는 어느 한국인의 유튜브 브이로그를 보다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독일 살면서 느낀 것은, 단 하나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뭐.. 솔직히 말하면 뮌헨 살 때부터 알았다. 말도 안되는 주먹구구식 행정처리, 당연히 따라오는 굉장히 느린 속도, 뭐든 post로 직접 보내야하는 아날로그식 처리, 제기간에 맞추려면 최소 3개월 전부터 준비해야하는 모든 이 상황들.

다 알고 있었는데... 모르던 것이 아닌데. 너무나 중요한 시기에서 나에게 덮쳐온 이 상황은 나를 몇 개월간에 걸쳐 서서히 끌어내렸던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아직도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아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 내가 일을 시작하기를 희망했던 것은 9월. 그러나 내가 비자를 그 때까지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10월을 제안해서 회사가 ㅇㅋ했고, 

그럼에도 너무나 느려터진 이 행정처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했다.


지금 이미 11월 말에 접어들고 있다. 나는 원래 9월에 시작했어야 했는데. 

사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대부분의 외국인 인턴들은 그냥.. 계약 파기당해버린다. 회사 입장에서는 인력이 빵꾸났는데 기다려줄 이유가 없다. 그냥 쉽게 로컬 인력 채용하는거지 뭐.

나는 워낙에 큰 회사인데다가, 특수 이유로 나를 채용한 것이기 때문에 회사가 계속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친절하게도 에이전시도 고용해서 프로세스를 가속화하는 노력도 해주고, 내가 인턴 때문에 뒤셀로 이사를 온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월급아닌 월급도 주기로 했다. 

이렇게 받는 친절이 있을수록 내 부담은 더 해간다.......... 늦게 시작할수록 나 정말 충성을....... 다해야하는 거겠지 ^_^..

그리고 그만큼 한국에 갈 수 있는 날이 미뤄지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예측 불가였던 적이 있었던가. 

독일에서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그냥 인생이 그렇게 됐다.

한국에 있을 때는 참 뻔했다. 대학 졸업해서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는거지 뭐.

목표는 목돈마련, 집 마련일테고. 20대 중순부터는 결혼을 슬슬 생각하고 30대 초반 즈음에 결혼을 했겠지.


사실상 나는 내년에 바로 정직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강 그런 식으로 이미 얘기가 오갔다. 

몇 주 전에는 회사가 베푸는 친절로 베를린에서 열린 회사 이벤트에도 2박 3일로 다녀왔다. 아직 직원도 아닌데 나에게 초대장을 보내서 회사 분위기를 익히고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너무 고마웠다. 

뭐 여튼.. 아무래도 독일에 최소 몇 년은 눌러살게 될 것 같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방식의 삶이 있다는 것을 유럽에 와서 처음 알게 됐다. 

굳이 국적이 하나일 필요도, 돈을 많이 벌거나 성실할 필요도, 남들 모두가 날 좋아할 필요도 없는 것인데.

왜 우리는 더 넓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내 인생이 예측 불가가 됐다는 것이 설렜다. 아니 사실 지금도 설레긴 한다. ㅋㅋ

다만 내가 내 인생을 원하는대로 그려갈 수 있다는 의미의 예측 불가라는 점에서 좋은 것이다.

이렇게 비자가 안나와서 언제 일을 시작할지도 모르는 이딴 초조함과 불안감 말고....... ㅠ


그리고 인생에 주어지는 선택지는 그 하나하나가 너무나 값지다. 새로운 문들이 열릴 때마다 보여지는 세계는 또 다른 세계로 열리기도 하기에. 이는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너무나 소중하다.

사실상 나에게는 독일이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하나 주어진 것이다. 

다르게(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여기서 너무 힘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이 그리운가?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그립다. 

나처럼 밖에 돌아다니고 구경하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성격의 유형에게, 지금 상황은 조금 힘들다.

언제나 긍정적인 면만 보려고 하는 나지만 몇 개월에 걸쳐 계속되는 딜레이와 스트레스에, 지난 몇 주간 내가 잠식되었던 것 같다. 


일단 뒤셀에서는 소속이 없다. 뮌헨에서는 LMU 학생이었기에 친구들과 사귀는 경로가 존재했다. 

"어 나도 경영 공부해!" "어 나 그 수업 들어. 그 교수님 되게 잘 가르치시던데!!"

여기는... 회사 말고는 소속이 아예 없다. 대학생들은 알지도 못하고. 어디서 친해지는지도 아직 모르겠고. 

그리고 교환학생 때는 기숙사, 같은 수업 등 어떤 테두리 안에서 친해질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있었다.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정말 나는 하늘에서 NOWHERE로 뚝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몇 한국인 친구를 사귀기는 했지만 나와 결이 크게 맞는 친구들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남자친구랑만 맨날 놀게 된다. 

(남자친구는 나 따라서 뒤셀에 인턴 구하고 뮌헨에서 여기까지 와주었다. 정말 뒤셀에서 최소한의 내 인간관계이자 안정감을 주는 safety net이다. 많은 것에 고마울 뿐이다.. 난 럭키걸..)

솔직히 생각해봐라. 갑자기 대구에 당신이 살게 됐다. 누구랑.. 어떻게 친해질건데? (회사사람 제외)

말도 안통한다고 생각해봐라. 영어는 나에게도 외국어이지만, 독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귀찮은 외국어일 뿐이다. 그들은 독일에 있는데 굳이 영어를 왜 쓰고싶어 하겠어?


설움이 폭발적으로 터진건 어제였다. 독일 와서 이렇게 광광 울어본거 처음이었다.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는데, 이미 천정부지로 솟고 있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숙소 및 교통권 값들. 

얼른 크리스마스 시즌에 뭘 하고 어딜 갈지를 정해야하는데, 

갈 곳이 없는거야....


연말 연초는 나에게 항상 바쁜 날들이었다. 내 생일 1월 7일도 겹쳐있기에,

아이참 이번에는 외가를 갈까 친가를 갈까. 가족들이랑은 언제 시간 보내고 친구들이랑은 언제 또 약속 잡지?

이런 것들의 연속이었고. 그 약속들이 심지어는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어딜가지... 어딜 가도 비싸고 문도 닫았을거고 딱히 친한 친구도 많지도 않고...


마음의 안식처가 없다는 느낌. 아마도 내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겠지.

살면서 이런 기분 처음이다. 내가 갈 곳이 없고, 1년 중 가장 바빴고 가장 풍족했던 시즌에 할게 없다는 기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평생 모를거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평생 모르길 바란다. 유쾌하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직도 나를 꾸준히 찾아주고 나와 연락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해진다. 나를 궁금해해주는 사람들.

내가 제풀이 지쳐서 연락도 뭣도 귀찮아지고.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아져서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조차 몰랐던 요즘. 


오늘 폴이 연락해주었다. 항상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오는 그. ㅋㅋㅋㅋ 이쯤되면 소름돋는다;;(장난)

이제는 그냥 친오빠같다 ^^.. 부담없이 얘기 잘 들어주고 적절한 조언을 던져주며 나에게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준다. 사실 이건 엄청난 능력이다... 

딱 나에게 적당한 온도와 속도로, 필요한 것을 주는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힘들때마다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고 고맙다. 


덕분에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

내가 먼저 지쳐서 나가 떨어져서는 안되겠다. 시간이 많이 주어진 만큼 내가 준비가 많이 되어서 회사에 보여주어야 한다.

독일어도, m&a도, 재무도 열심히 공부해갈거야.. 아참 독일에 대해서도 좀 공부해야겠다. 정치, 역사, 경제 등. 

난 할수 이따 윱캔두잇!!!!!!!!!!!!!!!!!!!!!!!


다시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윱캔두잇으로 돌아가겠어 난 윱캔두잇이니까

공부는 낼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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