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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셰프의 한그릇[성천막국수]

더운 여름의 기억

세계일보 음식칼럼

[김동기 셰프의 한그릇]


*답십리 성천 막국수

장마가 지났다. 굵직한 빗줄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운 폭염이 내리 쬐는 한주로 보답 받고 있다. 종종 내리는 소나기는 더위를 한풀 꺾기는 커녕 습도만 높여주어 찝찝한 하루 하루를 선사해 주고 있다.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며 에어컨을 켜도 습한 날씨는 선풍기 바람을 더해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 하필 배까지 고파진다면 불현듯 생각나는 메뉴들이 있다. 와이프의 비법 양념이 담긴 차가운 김치 비빔국수, 집 앞 단골가게 집에 고소한 콩국수, 이젠 없어진 시장 골목에 함흥냉면집의 냉면 같은 그런 시원한 면요리들 말이다.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국물과 뜨거운 물에 팔팔 삶아 차가운 물에 헹궈 툭툭, 쫄깃한 특색 있는 면발들이 매력적인 여름 국수들은, 이 뜨거운 계절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생각만으로도 시원해 지는 음식들이다. 

그 중 더울 때 말고도 내가 입맛이 없을 때면 찾는 곳이 있다. 사는 곳하고도 그리 멀지 않아 자전거 타고 총총거리며 찾아가는 이제 60여 년의 역사가 다 되어가는 답십리의 '성천 막국수'이다. 예전에도 손님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더 많아졌다. 11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평일에도 대기인원이 많아 식사시간을 맞추려면 조금 더 일찍 가서 기다려야 한다. 오랜만에 도착한 이 날도 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손부채를 하며 서있었다. 막국수와 제육 등 메뉴가 간단하고 빠르게 나오는지라 대기는 그리 길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음식 나오는 시간뿐만 아니라 먹는 시간도 금방이다. 양이 적지는 않은데도 불구하고 찰진 면을 후루룩 먹다 보면 크게 네 다섯 입 정도면 한 그릇이 뚝딱 이다. 제육 반 접시를 시켜 제육과 함께 밸런스를 맞추어 먹어야 신사답게 보여 좋다.마음 먹고 먹는다면 5분 안에 그릇의 빈 바닥을 볼 수 있다. 

손님이 많다 보니 직원들도 많다. 크지 않은 홀에 직원과 손님들이 북적이는 데도 번잡한 느낌이 나지 않는다. 분명 소리가 나지만 시끄럽지가 않다. 사람들의 맛에 집중하는 소리는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물막국수와 제육

자리에 앉으면 뜨거운 면수가 준비 되어있다. 메밀면을 삶은 면수는 풋풋한 메밀전분 향이 올라 온다. 마치 숭늉 같은 고소함에 고기 육수와는 다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향이다.

성천 막국수의 국수는 다른 곳 보다는 조금 더 찰진 편인데 예전 처음 먹었을 때는 그 찰기와 엉겨오는 면발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었다. 한입 우적 거리며 씹어 삼키는 면에서 심심한 듯 무심하게 고소한 맛이 딸려온다. 처음 온 이가 그 고소함을 無 맛이라고 표현 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평양냉면을 먹는 맛이 이렇다고나 할까. 그 무심한 메밀면 맛에 물 막국수의 시큼하고 개운한 동치미 국물을 들이키며 오는 오묘함은 미식가보단 다식가에 가까운 나로써 세번을 가고 나서야 깊이를 알게 되었다. 어느 음식점에 붙어있던 '대미필담' 이라는 단어가 불연 듯 떠올라 국수를 먹고 있자면 미소가 절로 생긴다.곁들여 주는 무 짠지는 달지 않고 짭조름하다. 테이블에 배치되어 있는 겨자나 식초를 조금 넣어 버무리면 색다른 맛이 나는데 물 막국수에 넣어 같이 먹기에도 좋다. 양념장과 들 기름향의 고소한맛의 비빔 막국수는 이곳 면의 찰기와 향에 한번 더 반할 수가 있다. 특히 이곳은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메뉴들이 있다. ‘막국수와 제육 셋트’ 나 ‘제육 반개’ 같은 메뉴 들인데 꼭 제육은 추가해서 먹는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곳의 제육들 보다도 지지 않을 맛이다.



*막국수

우리 나라는 대대로 밀이 메밀보다 귀했다. 그런 밀이 1960대 넘어 미국에서 대량 수입되고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값이 싸게 들여야 메밀의 자리를 밀어내며 밀이 면 요리의 대명사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몇몇 곳의 평양냉면 집 말고는 한반도 북쪽의 강원도 지역 메밀 생산지와 인접한 춘천에서만 메밀로 만든 면 요리가 성행했는데 그 지역의 요리가 바로 춘천 막국수이다.  

막국수는 메밀로 만든 국수를 뜻한다. 메밀 껍질째 갈아 국수를 내리기도 했는데 아무렇게나 ‘막’국수를 내렸다고 해서 막국수라 불리우게 되었다. 글루텐이 있어 반죽 후 밀고 늘린 후 썰어 먹을 수 있는 밀가루 반죽과는 달리 메밀은 글루텐이 거의 없어서 반죽을 늘릴 수가 없기에 반죽을 국수틀에 넣고 눌러 뽑는 방식으로 면을 뽑는다.  들기름을 곁들인 양념장에 국물 없이 먹는 비빔막국수와 차가운 동치미 국물, 육수에 먹는 물막국수가 있다. 


<성천 막국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48나길 2


다이닝 주연 오너셰프 김동기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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