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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신영 Nov 17. 2023

 새우랑 표고 넣은 부추전을 들고 친구에게 갔다.

오만가지 다 챙겨주는 그녀.

그녀는

휴무일이 언제냐고 항상 전화를 한다.

서로의 시간이 되면 한 달에 두어 번도 만나게 되는 친구.

시간이 맞지 않으면 두어 달씩 거르기도 한다.

5년 전 겨울 서울에 왔을 때 전화가 왔다.

"서울 왔다며? *윤이 엄마가 전화 왔더라. 기 서울에 올라가니 연락해서 만나라고. "

(옥천에 있을 사람인데 어쩐 일이지?)

"응, 삼송 막내 집에 있어. 웬일이야?"

"나, 서울에 어. 그때 결혼한 큰 아들 집에 있어."

그녀는 몇 년 전에 만난 친구다.

보통 여자들의 친구는 소꿉친구, 학교친구, 고향친구 이거나 아이들 초등학교학부형으로 만나 수십 년을 보내면서 끈끈이 이어오는 사이의 사회 친구 등이 있다.

모두 개인적인 일이라 보편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친구는 학부형으로 30여 년간 지낸 친구의 절친이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했단다. 5년 전 부산에 놀러 와 그녀의 바람대로 한번 만나서 차를 마시고 헤어졌고, 아들 결혼식이 있는 대전에 친구와 가서 보고 헤어진 후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4년 전의 전화 이후 우린 가끔 만나게 되었다.

큰 아들 집에서 손주의 육아를 위해 옥천 살림을 정리하고 서울로 거주를 옮겼던 것이다.

가까운 곳에 있으니 곧 만나야 했다. 서울이 처음인 그녀가 지하철 2호선 역이 가깝다고 해서 시청역에서 만나기로 한다. 덕수궁으로 안내해서 함께 고궁을 거닐었다.

이 친구도 손재주가 있어서 퀼트와 재봉도 했으니 자투리 원단도 얘기하며 동대문 시장도 가고 싶고, 비즈도 사서 액세서리도 만들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천천히 구경시켜 줄게. 오늘은 남대문 시장 구경을 시켜 줄게. 여기서 걸어가도 되니까."

그런데 그때는 그녀가 다리가 안 좋은지 걷는 것을 힘들어했다. 천천히 걸어야 하고 지방에서 왔기에 서울내기인 와 달리 길도 잘 모를뿐더러 모든 것이 낯설기 때문에  천천히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남대문 원석 재료상에서 재료를 사고 카페에 앉아 팔찌를 만들어 마무리 매듭짓는 을 알려주고 잘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를 위해 손동작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라며 천천히 만들고 설명해 준다.

선물해  매듭 마스크줄도 만들고 싶어 했지만 매듭끈이 없어서 다음에 가르쳐 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고 가끔 안부를 전하며 지내던 중 급격히 가까워진 계기는 올봄 무릎이 부어 병원에 다녀온 뒤에 만날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는 나를 안타까워 한 그녀 때문이다. 중랑천 둑방길을 걷기로 약속을 한 날에 무릎이 아파 다리가 무거워 걷기가 힘들어 못 가겠다고 하니

"그럼, 병원에 갈래?"

"가야지, 토요일이라 일찍 가야 할 것 같아. 좀 큰 병원으로 가 볼게."

말은 그렇게 하고 낯선 동네에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난감하다. 며칠 전 다녀온 병원은 물 뺀다고 괜히 무릎에 주삿바늘만 꽂았다가 허탕 치는 바람에 신뢰가 없고 처방약을 2주나 먹었지만 크게 효과도 없던 차에 병원을 고르는 일도 숙제였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는 내게 다시 전화가 왔다.

"나한테 관절염에 잘 듣는 약이 있으니 좀 참고 살살 걸어오면 안 될까? 자기 온다고 바지락 육수 내고 부추수제비 반죽도 다 해놨어."

지난번에 만났을 때 그 동네 맛집이라며 부추 수제비집에 데리고 가서 수제비를 맛있게 먹었었다.

"집에서도 만들 수 있겠다. 다음엔 집에서 만들어 먹자."라고 한다.

요리도 일가견이 있어 뚝딱 잘 만들어 내는데 손맛이 있어 음식 솜씨가 훌륭하다. 그러고 보면 부산의 *윤이 엄마와는 다르게 우린 비슷한 점이 많다. 재봉틀로 하는 바느질과 퀼트의 손 바느질, 음식 만들기가 일치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매일 만보 이상씩 걷던 나와 달리 그녀가 걷는 것을 힘들어했는데 어느새 그녀의 다리가  좋아져 지금은 잘 걷고 건강해졌다.  이제는 중랑천 둑방길을 하루에 만보 이상 걷기도 즐겨한다고 한다. 결국 친구의 빨리 오라는 간절한 말을 듣고 집을 나섰다.

성수역에 내려 전화를 하고 잠시 후 도착한 그녀의 집엔 온통 바지락 육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육수 냄비를 불에 올리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던 터라 육수가 짜겠다고 걱정을 한다.

하지만 짠 것이 대수이. 그 정성에 늦은 점심을 먹고는 바로 약을 꺼내 놓으며 그녀가 하는 말.

"자기가 진통 소염제 밖에 더 있느냐고 해도 이 약을 먹고 다들 좋아졌으니 한번 먹어봐. 동네 병원에서는 처방도 안 해 주더라. 나는 건대병원에서 받고, 저 언니는 서울대 병원에서 받은 건데 똑같은 약이야."

자초지종은 이랬다.

친구도 처음 서울에 올라와 손주를 신생아 때부터 육아를 하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았다고, 나와 다르게 혈압, 고지혈 약도 먹고 있는데 우울증과 류머티즘까지 왔단다. 서울 천지에 아들내외만 아는 사람이고 집안에서 아이만 24시간 키워야 했으니 왜 안 그랬겠나.

갑자기 신혼시절이 떠올랐다.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 하나밖에 없는 부산으로 시집을 가서 낯선 시부모, 시동생, 시누이와 함께 생활하며 살짝 돌아버리는 것 같았던 그때가.

잠깐 사이에 들이닥친 질병을 치료하느라 애를 먹었고 이젠 많이 좋아졌다며 웃는 그녀가 안쓰러울 뿐이다.

아들에게 오피스텔 하나 마련해 달라고 해서 독립을 했고 아들집으로 출퇴근을 하니 좀 살 것 같다고 하는 그녀. 며느리가 좋은 의사를 찾아 건대 병원 예약을 해주고 같이 가서 진료받고 처방약을 먹으며 3개월마다 가서 검사하고 처방받던 것을 이제는 좋아져서 6개월마다 가서 검사한다고 한다.

어들 내외와도 먹고 언니에게도 줬단다.

동병상련이 되어 내가 아픈 것에 그녀가 발 벗고 나서는 것이다. 사실 병원 가서 검사를 하고 내게 맞는 처방을 받아야 하는 게 맞지만 우리 나이엔 다 비슷한 질병(퇴행성관절염)이고 부작용도 없고 우리나라 굴지의 제약회사 약이라고 강조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얼마 전부터 그녀가 걷는 일이 유연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마다 엘리베이터가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고 다녔던 일도 떠올랐다. 그랬는데 계단도 잘 걸어 다니고 힘든 내색을 안 한 이유가 그동안 치료를 받아서 그런 거였구나.

이후로 비록 진통 소염제이지만 그 약을 먹고 무릎의 통증도 완화되었고, 이젠 근무지의 그 많은 계단도 잘 오르내린다. 근무지 특성상 매일 보통 2 에 가까운 걸음을 걷는다. 퇴근 때마다 발바닥부터 통증이 시작되고 가끔 무릎도 삐걱대지만 그 약의 효과를 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루에 두 번 먹으라는 약을 한번 먹고도 괜찮다면서 모아 놓은 약을 나에게 주라고 친구에게 전해주는 동네 언니도 고맙고 친구에게도 뭔가 보답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자잘하게 했던 선물 말고 특별한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만든 부추전.

친구와 동네 언니를 위해 부추전을 만들어 저녁에 들고 갔다. 꼬박꼬박 약을 챙겨주는 그 언니와 이튿날 하모니카 수업 후에 먹으라면서.(동네 언니는 손주들 어린이집에 몇 년을 등하원 시키며 사귄 언니.)

동네 언니를 초대해서 부추전을 먹었대요.

친구는 만날 때마다 뭔가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어쩜 그리도 나와 똑 닮았을까? 자기가 사는 곳 성수동으로 이사 오면 좋겠다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늘 얘기한다. 또 자기 집에서 자고서 출근하면 안 되겠냐고도 한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여겨져 더욱 좋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아프지 말고 이 대로 사는 날까지 가끔 만나 둑방길도 걷고 바뀌는 계절을 감상하고 즐기며 건강하게 지내자고 약속하자. 친구야~♡

거의 일 년 가까이 친구가 챙겨준 목록을 사진으로 남겨보며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관절염 약과 선크림. 꼭 유정란 먹어야 한다며 사준 달걀.
동생과 고구마 농사 지었다며 쪄서 준 고구마와 그외의 선물.

*photo by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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