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조절력은 곧 심리적 에너지의 보존과 지속을 위한 방법을 실천하는 일
대문자 ESTJ인 친구 한 명은, ESTJ가 꽤 많은 우리 친구 모임 중에서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이유는 육아와 대학원을 병행하면서 졸업논문을 '매일 3장씩', 그것도 단 한 번도 미루지 않고 '매일' 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빨간펜 같은 학습지를 한번도 미뤄본 적이 없다니, 태생부터 다른 사람이었구나 싶기는 하다. 결국 그 친구는 육아를 하면서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재취업까지 성공했다.
친구들 모두 매일 일정한 양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나에게 더 인상깊었던 것은 두 가지가 더 있었다.
하나는, 왠지 글을 더 잘 써지는 날 3장 보다 더 쓰고 싶을 때도 거기까지만 한다는 것이었다. 다들 '왠지 잘 되는 날, 의욕에 넘치는 날,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를 기다리지 않나? 그런 상태일 때 더 많은 아이디어와 생산성 있는 글이 써지지 않나?
그런데 최근 「하루 10분 가장 짧은 동기부여 수업」이라는 책에서 의문이 풀렸다. 하루에 해야 할 하한선과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 심리적 자원을 보존하고 의욕을 유지하면서 번아웃을 예방하고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하한선은 '최소한으로 꼭 해야하는 양/시간'을 정하는 것이고 상한선은 '최대한으로 할 양/시간'을 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는 매일 3장의 논문을 쓰는 것이(질과 상관없이), 하한선이자 상한선이었고, 일주일에 3회 이상 5회 이하 운동하기를 정한다면 3회는 하한선, 5회는 상한선이 된다.
책에서는 하한선을 설정하는 이유에 대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이 끊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쉬는 시간을 조절해 흐름이 깨지지 않게 복구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에너지를 추가로 낭비하지 않게 하려는 데 있다"라고 언급한다. 상한선을 설정할 때는 "그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삶의 다른 영역과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 하한선-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은 특히 나처럼 두 경계를 극단으로 오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 어느날은 목표 달성을 위한 최소한의 일/시간도 쓰지 않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리는 패턴인데, 이는 나의 심리적 에너지와 자원은 고갈시키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매일 하한선만큼 조금씩 했으면, 상한선도 없이 몰두하다 다음날 혹은 며칠 뒤 다시 방전되어 하한선도 지키지 않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다시 그 일을 시작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들고 마음먹기가 많이 필요해져 자꾸 미루게 된다. 그러다 결국에는 데드라인에 임박해져서 허겁지겁 마무리하게 된다. 이런 방식이 스스로에게 미치는 가장 최악의 영향은 '목표를 위해 매일 노력한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신뢰, 성취감을 느끼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패턴을 반복하다 최근에서야 '매일 조금씩'(이게 하한선이 되겠고) 하는 것이 '날 잡아서 제대로'(상한선을 정하지 않은 채 심리적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해버리는 일) 하는 것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엇보다 목표 달성을 위한 효율적인 면에서도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한선-상한선을 설정하고 지키는 일. 친구는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을 지속하는 자기조절의 비법을 이미 알고 실천하고 있던 셈이다.
친구의 이야기 중 놀라웠던 다른 하나는 다른 친구들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을 때였다.
"아니 근데, 매일 3장이라고 계획을 세워도 그날 컨디션 나쁘거나 기분 너무 안 좋으면 안하고 싶은데? 못하겠던데....."
"기분대로 하면 그건 계획이 아니지."
아, 내가 해왔던 건 계획이 아니구나. 그냥 의욕만 앞선 희망사항이었구나!
친구의 대답이 큰 울림을 주었는데,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그 계획을 실행하는 데 부족했던 이유가 "하기싫어서",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조금 더 쉬다 하고 싶어서", 어떤 일 때부터 속상해서, 와 같은 현재의 기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기분관리가 내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기분과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일, 그래서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운 일을 '그냥 해내는 힘'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이다. 친구처럼 기분에 조금 덜 무던하고 당장의 해야할 일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걸까, 라는 궁금즘은 여전히 남지만, 친구의 그 말을 올해의 모토로 삼아 연습해보려고 한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싫어도 그냥 하는 일을.
* 자신의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하라는 글은 다음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아하레터 https://aha-contents.tistory.com/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