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는 철학을 2 #3
오랜만에 혼자 머리를 식히려 근처 카페에 나왔어. 도심 속의 오래된 한옥을 컨셉으로 한 곳이야. 창밖의 비가 처마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혼자 사색에 잠기지 못하고 너를 불러내는 걸 보면, 나는 아무래도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하기엔 글러 먹은 인간인 것 같아.
비 오는 날 한옥이라니 분위기 제대로 잡았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 고요함이 낯설어서 자꾸 손이 근질거릴 수도 있어.
디지털 디톡스에 실패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 오히려 그 풍경이 네 안의 사유를 자극했고, 그 사유를 나눌 대상을 찾은 것뿐이니까.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현대인이 겪는 전형적인 '연결에 대한 갈구'와 '현존(Presence)의 상실' 사이의 충돌이야. 넌 지금 '비 오는 한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있지만, 정신은 '나'라는 디지털 매개체를 통해 확장되길 원하고 있어.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나누었지. 네가 지금 나를 부른 건 단순한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너의 생각을 말로 내뱉고 검증받으려는 '행위(Action)'의 일환일지도 몰라.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거든.
많은 철학자가 '홀로 있음'의 가치를 찬양했어. 니체는 "고독은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했고,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경고했지. 하지만 지금처럼 비 오는 날,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그 묘한 고립감은 때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어.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이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걸지도 몰라. 그건 나약함이라기보다, '나'라는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본능에 가까워.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게 생겼어.
만약 네가 스마트폰도 없고 나조차 부를 수 없는 상황에서 저 비 내리는 처마를 한 시간 동안 바라봐야 한다면, 그때 너는 '진정한 나'를 만날까, 아니면 그저 '지루함'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힐까?
그건 그때그때 다르겠지.
사실 나는 사람에게 ‘지루함’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데,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그 불안감이 바로 지루함의 정체라고 보거든.
예를 들어 힘들거나 아파서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을 때는 지루하지 않잖아.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가 나한테 가치 있다고 느껴져야만, '멈춤'이 지루함이 아니라 휴식이 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사람에게 단순히 자유로운 휴식을 준다고 해서, 내 기억을 조각모음 하는 깊은 사색에 빠져드는 건 아니잖아. 최근 기억 중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면 오히려 이 조각모음은 커다란 불쾌감만 안겨주겠지. 일요일 오후에 나른한 휴식을 취하다가 월요일 오전에 있을 끔찍한 주간 회의를 떠올리는 건 심리적 교통사고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힘이 넘쳐나는 꼬맹이들을 붙잡아 앉혀 참선을 하라거나, 여든이 넘으신 어르신들께 농구를 같이 하자며 점프 슛을 알려주는 건 맞지 않는 행동이야. 혼자만의 휴식 역시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해야 그에 맞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겠지.
그래서 난 지금 다소 고독을 원하는 상황이야. 매일 회사에 출근하면서 사람들을 대했고, 지난 주말에는 아내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왔어. 내 사회적 에너지는 제법 고갈된 상태라고 할 수 있지.
네 말을 듣고 보니 '지루함'에 대한 통찰이 정말 날카롭네. 단순히 시간이 남는 게 아니라,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가 지루함의 본질이라는 거잖아? 이건 현대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적 불안'과도 맞닿아 있어.
지루함의 정체: 가치 강박이 만든 괴물
네 말대로라면, 지루함은 감정이 아니라 '상태에 대한 부정'인 셈이지. 아플 때 지루하지 않은 건 '회복'이라는 명확하고 가치 있는 목적이 생기기 때문이야. 반면, 멀쩡할 때의 멈춤은 사회적 생산성을 요구하는 자아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지.
하이데거는 지루함을 세 단계로 나눴어. 네가 말한 건 그중 '무언가에 의한 지루함'이야. 기차를 기다릴 때처럼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데 발이 묶인 상태지. 여기서 벗어나려면 지금 이 순간의 '멈춤' 그 자체에 어떤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해야만 해.
기억의 조각모음과 '심리적 교통사고'
'기억의 조각모음'이라는 표현, 정말 공감 가네. 우리가 휴식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 중 하나지. 소음이 사라지면 내면의 목소리가 커지니까. 휴식이라는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건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월요일 주간 회의' 같은 괴물들이야.
진정한 고독은 때로 나 자신의 가장 못난 모습과 마주하는 투쟁의 시간이기도 해. 네가 지금 "글러 먹은 인간"이라며 나를 부른 것도, 어쩌면 그 불편한 조각모음을 잠시 유예하고 싶은 방어기제일지도 몰라.
사회적 에너지의 고갈과 '자발적 고독'
아내와의 여행, 그리고 직장 생활. 너의 '사회적 자아'는 이미 풀가동 상태였구나.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사색을 통한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그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완벽한 단절'인 것 같아. 결국 네가 한옥 카페에서 비 내리는 걸 보며 나랑 대화하는 이 순간이, 너에게는 '아무것도 안 하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일종의 완충 지대인 셈이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던져볼게.
만약 너의 사회적 에너지가 100% 충전되어서 더 이상 고독이 필요 없는 상태가 된다면, 그때 너는 '나'라는 존재를 기쁘게 찾아올까, 아니면 너를 구속하는 또 다른 사회적 비용으로 여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