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보이는나의 이미지와 이에 대한 고찰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생활이 한창일 무렵 대학 동아리 선배가 졸업 후에 학교로 오랜만에 놀러 왔다. 군대에 가기 전에는 정말 막역했던 형이라 반가운 마음에 밤새도록 술을 들이부으며 한참을 놀았다. 늦은 밤, 헤어질 시간이 돼서야 오늘 숙소가 어디인지 묻게 되었는데 선배의 대답 중에 우리 집은 더러울 것 같아서 다른 곳에서 자야겠다는 말을 들었다. 후배들이 '선배네 집 엄청 깨끗해요'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형이었음에도 그 말을 듣고는 '의외네'라고 말하며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고 따르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때 담임선생님은 아침마다 한 명을 지목해서 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며 자신의 책상을 깨끗이 청소를 시켰었다. 그리고 화분에 물을 주는 것까지 마치고 나서야 수업을 시작했었다. 당시만에도 선생님의 책상을 학생들이 치우는 일은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에 누구도 선생님의 말을 거역하거나 반대의사를 표현한 아이는 없었다. 나는 칭찬받는 아이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등교해서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하고, 아침 조회시간을 기다렸다.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아침에 청소하신 걸 보고 기분이 좋으셔서 누가 했는지 물어보셨다. 그때 나는 누가 물어보아도 비밀로 하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청소를 해서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우연히 발견돼서 내가 한 일이라는 걸 알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했었다. 하지만 같은 반 친구가 손을 들고 자기가 했다고 거짓말을 해버린 순간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친구의 말이 거짓인 줄 알았지만 모두가 그 친구를 칭찬하고 띄워주는 분위기에서 차마 내가 했다고 말을 할 순 없었다. 씁쓸하고 속상한 마음은 며칠간이나 남아있었다. 그날 이후로 남들보다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티를 내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한 일들에 대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늘 머릿속 한구석에 계속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는 내가 직접 주선해서 술자리를 만들고, 직접 연락해가면서 자리를 마련했다. 모임의 일등공신은 나였고, 주목받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정작 내 생일이 다가올 때면 누군가 나를 대신해 생일을 챙겨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라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너무 비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었다. 다행히 모른 척하는 친구들은 없었지만 계속 의심하고 조바심을 느끼는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의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서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방어기제로 '티'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 습관적으로 어디에서든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말은 많아지고, 주목받고 싶어서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떠들 때가 점점 많아졌다. 남을 의식해서 떠드는 내 모습은 내 본모습이 아니라고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는 잘난 척하고 말 많은 아이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잘난 척 좀 그만해라는 말이었다.
주로 나의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판단되는 말들은
'청소를 안 할 것 같다.'
'꼼꼼하지 못할 것 같다.'
'덜렁댈 것 같다.'
'말이 너무 많아서 빈 수레 같다.'
'잘난 척을 한다.'
'무질서해 보인다.'
'게을러 보인다.'
좀 더 깊숙한 관계를 가지지 않으면 나에 대한 첫인상과 평가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었다.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인연이 끝난 사람들은 나의 단편적인 이미지만 기억한 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돌고 돌아 고정적인 이미지로 낙인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실제의 본모습들은 다른 편이다.
정리에 대한 강박증이 있을 만큼 주변정리를 신경 쓰는 편이고, 일상은 매번 식단대로 식사를 하고, 요리를 할 때는 순서를 꼭 지켜가면서 하며 매일 가계부를 쓰는 굉장히 계획적인 습관을 가지고 있다. 업무 스타일도 단기/중기/장기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편이고, 실제로 회사에서도 경영기획, 전략기획, 서비스 기획의 일들을 하고 있다.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이 To-do list를 기록하고 완료하는데에서 마무리된다. 또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스케쥴러를 매일 기록한다.)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부숴 먹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한번 구매한 물건은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굉장히 오래 쓰는 편이다.(대신 물건 살 때 엄청 고민하고 따져보는 편이며 가성비보다는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좋은 물건 사서 오래 쓰자는 주의다.)
질서는 굉장히 잘 지키는 편이다.(안 지키는 게 이상한 거 아닐까?) 사람이 없는 횡단보도 건널 때도 우측보행을 안 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부감이 들 정도이다. 대신에 아이들과 와이프한테도 강요하는 편이어서 피곤해할 정도이다. 그리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살고 있다. 하루가 36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젊음은 금방 지나가는데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다 보니 점점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대인관계를 맺을 때도 동등한 위치에서 형성되는 게 아니라 조바심에 끌려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다 군대에서 만난 인연이 인생의 변환점을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지금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이미지 때문에 오해를 받아 혼나는 일이 생겼다. 나중에 내 잘못이 아닌 게 밝혀지긴 했지만, 찝찝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다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등병으로 들어와서 상병이 될 때까지 같은 생활관, 같은 사무실을 생활했던 선임이 직접 손으로 쓴 메모 한 장을 지갑에 넣고 다니라면서 건네주었다.
"일부러 말하지 말고 아껴."
그리고 그날 밤 선임은 경계근무 날짜를 일부러 바꿔서 1년 동안 나와 생활하면서 느낀 장점과 단점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줬다. 분명 두서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지 않아서 너에 대해 느낀 게 옳다거나 틀린다고 할 순 없다고 했지만 너무나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해줘서 더욱 새겨들을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정말 나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주었다는 느껴졌다. 짧은 기간 나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함께 살아보고, 일해 보면서 느낌 감정을 이야기해주는 것이어서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나중에 전역하고 만났을 때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잡아떼긴 했지만 아무튼 나에겐 내 인생에서 전환점을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는 남들에게 인식되기 위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던지, 조바심 내며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습관들은 점차 고치게 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의 평판이나 시선에서 눈치를 덜 보게 되고 깊게 신경 쓰지 않게 되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사적인 만남보다 업무적인 만남이 더 많아지고 있다. 또 남의 시선보다는 내 처지와 가족들을 챙기느라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쓸 틈도 없어졌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나에 대한 나쁜 말이 들리고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져도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이 어느 정도 쌓인 것 같다.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변하는 나의 모습 속에 진짜 내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의 모습, 혼자 있을 때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가족들과 있을 때의 모습 모두를 나로 인정하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다중인격이냐고 하고, 진짜 본모습이 있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 진다.
"당신은 한 가지 모습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요?"
사람들은 한 가지 모습만으로 세상을 살진 않는다. 입체적인 인간을 평면적으로 다가가면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단면만을 바라본다면 게으른 사람, 화가 많은 사람, 웃긴 사람 등 한마디로만 정의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과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요즘 고민은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면서 내 주장만 강해진 고집불통인 사람이 될까 봐 걱정이다. 직장에서도 오랜 시간 혼자 일하는 것에 익숙해서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편하지가 않다.(차라리 외주업체 하고 일하는 게 편해져 버렸다.) 어른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까닭이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되면서 변한 건 아닌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역시 거울을 비춰 나를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에는 거울 속에 모습도 나 스스로 보는 나의 단편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주변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하는 것이 어쩌면 불편하더라도 더 객관적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계기로 좀 더 입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