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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의 May 17. 2024

최선의 삶

아이를 낳고,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된 걸까. (feat. 윤여정과 나)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를 일하게 만든 아이들이요.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2021년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긴 수상소감의 한 대목이다. 영화관에서 펑펑 울어가며 <미나리>를 본 당시의 나는 이 수상소감에도 한동안 눈물이 차올랐다. 당시 다섯 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둘 다 잘해보려 애쓰는 게 하루하루 고되던 차였다. ‘이렇게 다 잡으려다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결국 내겐 빈손만 남는 것 아닐까. 육아든 일이든 뭐라도 하나를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매일 고민하던 그 마음을 70대 중반의 배우 윤여정이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영화 <미나리>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 그의 수상소감이 나를 울렸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입사 후 10년 가까이 기자로 열심히 일했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 다시 새벽별을 보고 퇴근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몸담은 분야에서 최대한 잘 해내고 싶어서였다. 퇴직을 앞둔 50대 선배가 여유롭게 핸드밀로 커피 원두를 갈며 “내야 집에 가도 할 게 없어 이래 있다 치고, 니는 우얄라꼬 이래 퇴근을 안 하노.”라며 웃을 정도였다. 그러다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꿈같은 시간을 보낸 뒤 아이 돌잔치를 치르고 복직했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내겐 매일이 중노동이자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눈을 비비는 아이와 씨름해가며 겨우겨우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내맡기듯 데려다주고 헐레벌떡 회사에 나왔다. 중고참이 출근시각의 마지노선이 다 되어 오는 것을 아니꼬워 하는 이들이 나를 흘겨봤다. 업무시간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지만, 아침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베이비시터 이모님과 교대를 해야 하는 탓에 지방출장이나 늦은 회식자리는 꿈도 꾸기 어려웠다. 회식을 하다가도 저녁 7시 30분이 되면 알람을 맞춰놓고 신데렐라처럼 “이제 애 보러 가야 해서요…”라며 자리를 떴다. 아이에게도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하는 건 물론이었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에 늦게 오니 하루 세 끼 중 내가 먹이는 끼니는 한 끼도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배꼽인사를 하며 하원하는 모습도, 작은 욕조에서 물장구 치며 신나게 목욕하는 모습도 모두 내가 아닌 시터 이모님이 지켜봤다. 네살배기 아이는 늦게 온 엄마와 놀고 싶어 밤 12시까지 깨 있었다.


  엄마의 손길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작은 아이는 내게 큰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회사 안에서 기자직군이 아닌 사무직군으로 지원해 업무영역을 옮긴 것이다. 오랜 기간 나를 알던 취재원들은 인사발령 소식을 듣고 걱정스레 전화를 걸어왔다. 뭔가 큰 잘못을 해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이라 짐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사무직보다 기자직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병치레를 자주 하는 아이가 아프면 언제든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도록, 그로 인해 갑작스러운 휴가를 쓰는 시스템이 가능하도록, 사무실에서 일하는 나인투식스 직군을 택했다. 직군을 바꾸는 게 얼마나 낯선 일이냐 하면 아예 그냥 다른 회사에 신입직원으로 입사한 것 같았다. 컴퓨터를 켜면 쓰는 프로그램이 ‘기사 입력기’에서 ‘엑셀’로 바뀌었지만, 엑셀이라곤 고등학교 기술시간에 배운 ‘썸(SUM)’밖에 기억나지 않는 나는 갓 들어온 신입에게 엑셀을 배웠다. 숫자 세는 일에도 익숙지 않아 100만원이 넘어가면 맨 뒷자리부터 하나하나 손으로 짚어가며 속으로 ‘일십백천만십만백만...’하고 세야 했다. 


  업무 특성상 영업할 일이 잦아 외부와의 회식이 있으면 예비 탄환처럼 헛개 컨디션 두 병을 양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한약으로 만든 간 보호제 환까지 입에 털어 넣고 열심히 술을 마셨다. 술자리가 거의 파해 가는 게 보이면 카카오T를 열어 ‘갑님’의 택시를 잡아드리고 문을 닫아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인사하는 게 일상이 됐다. 모든 자리가 끝난 뒤에야 단단히 붙잡았던 정신줄을 잠시 느슨하게 하고 비틀비틀 갈지(之)자로 걸었다. 그렇게 집에 가는 길이면 속이 쓰렸다. 아이를 낳고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된 걸까, 이게 진짜 내가 원하던 삶일까. 속에서 뜨거운 응어리들이 울컥 올라왔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처럼, 나만 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만들고 싶었다. 30대 후반쯤 되면 나만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싶었다. 그럴싸한 출입처에 다니며 특종 기사를 쓰면서 어깨에 힘도 좀 주고, 기자협회에서 주는 상도 받고 싶었다. 현실은 컨디션을 물처럼 마시며 비틀비틀 집에 가다 전봇대에 머리나 박는, 한심한 나였다.


  회사에서의 내 커리어 패스는 갈피를 잃었지만, 가만히 헤아려보면 출산 후 잃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변화는 호주머니를 뒤집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나는 보다 온화하고 너그러워졌다. 머리로만 이해하던 이들을 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유모차를 몇 년 끌어보니 세상에 얼마나 턱이 많은지,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하여 휠체어를 타거나 몸이 불편한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게 됐다. 전에는 회사에서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사람들이 그저 ‘비양심 월급 루팡’으로 보였지만 이제는 ‘저들도 집에 가면 좋은 아버지(어머니)일 수 있지, 사람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는데 여기서도 저기서도 모든 일을 잘 해낼 순 없겠지’라며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길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모두 내 아이들 같아졌다. 너무 빨리 달리면 그러다 넘어지거나 부딪치지 않을까 눈길을 주게 됐고, 등하굣길에 갑자기 비를 만난 초등학생에겐 가는 곳까지 우산을 씌워주는 꽤 근사한 어른이 됐다. 외출 중에 갑작스레 대변을 본 아기 때문에 공원 화장실에서 난감해 하는 아기 엄마에겐 ‘왜 사람도 많은 여기에서 세면대를 두 칸이나 차지하고 있담’하고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가방에 늘 챙겨다니는 물티슈를 건네는 여유가 생겼다. 윗집에서 쿵쿵 뛰는 소리도 윗집 아이 얼굴을 상상하면 ‘즐겁게 노는구나’ 하고 미소 지을 수 있게 됐다. 안 그래도 MBTI 가운데 판단기능이 감정형, F(Feeling)인 나의 공감능력은 아이를 키우며 최대치를 찍었다. 뉴스의 사건사고 소식은 마음이 아파 못 볼 지경이다. 특히 이태원 참사처럼 생때같은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사고나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그저 일상을 살았을 뿐인데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가 된 사건들은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아이를 안고 뛰어내려, 아이는 구하고 본인은 숨진 30대 아버지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남들을 보는 눈뿐만 아니라 나를 보는 자세에도 변화가 생겼다. 더 좋은,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성실하고 온화하며 영민하고 여러 방면에서 여유 있는 사람이고 싶다. 아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언제든 손을 잡아주고 함께 머리를 맞댈 수 있는 보호자이길 바라서다. 그래서일까. 내게 꼭 ‘인생 2회차’의 기회가 주어진 기분이다. 어린 시절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나를 다시 세팅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버스에서 “엄마, 장애인이 뭐야? 노약자는 또 뭐구?” 하고 소곤소곤 묻는 아이의 질문에 최선의 답이 무엇인지 골똘히 고민한다. 그렇게 단어의 뜻과 사회의 질서, 규칙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도 내 안의 개념들을 다시 정립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스스로 되묻고 있다. 


  배우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거머쥔 지 3년, 그는 얼마 전 반려견을 소재로 한 잔잔한 영화 <도그데이즈>를 촬영하고 홍보에 한창이었다. 나영석PD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해 보니까 시나리오 좋고, 역할 좋고, 감독 좋고. 그런 건 나한테 안 와.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어. 하나만 봐야 하는 거야.” 

노배우의 관록에 오늘도 무릎을 친다. 다 좋을 순 없다. ‘적당한 시기에 아기천사가 찾아와서 나를 세상 모성애 깊은 엄마로 짠하고 변신시키고, 나는 일과 육아를 모두 우아하고 균형감 있게 해내며 멋진 워킹맘으로 우뚝 선다’는 것은 완전히 허상이다. 모르긴 몰라도 윤여정 또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두 아들을 키우진 않았을 것이다. 일도 육아도 잘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버둥대고 허둥대다 닥치는 대로 어떤 역할이든 맡는 대로 해냈을 것이다. 아이들 잘 키워보려 열심히 일했던 현장에서 그는 누구보다 큰 명예를 얻었다.


대배우는 나영석PD와의 유튜브 토크쇼에서 말했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데가 어디 있어. 하나만 봐야 하는 거야."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십오야)


  대배우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이상이 아닌 현실 속 나는 육아도 일도 모두 ‘야매’다. 하루에 “엄마 여기 좀 봐봐!”를 수백 번쯤 해대며 자신을 봐달라는 아이에게 그만 좀 부르라며 버럭 짜증도 내고, 양치질은 가끔 건너뛰고 재우는 날도 있고, 몸이 너무 피곤할 땐 유튜브 영상을 하루에 몇 시간씩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전에는 항상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내일 더 재미있게 놀자고 말하며 함께 잠을 청한다. 그동안 퇴근 후 TV에 멍하니 빠져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 같아 최근 이사하면서는 과감히 TV도 없앴다. (덕분에 《나는 솔로》 본방송을 못 봐서 삶에 큰 타격이 있지만 사랑의 힘으로 이겨내려 한다.) 엄청난 모성애라거나 확고한 육아관 같은 건 없다. 그저 아이가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훗날 “너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했다”며 자식 탓 하지 않도록, 다음 인사철에는 다시 기자직으로 직군 변경을 지원하려 한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잡기란 너무나 어렵고, 다 잘 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일흔여섯에 오스카상을 거머쥔 그가, 그래도 된다고 내게 웃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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