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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Aug 24. 2024

안녕? 안녕! 안녕

선택유산 후

  올여름은 유독 더웠다. 사는 곳이 대구인 것도 한몫을 했지만 잊을 수 없는 나의 여름 이야기를 풀어내보려 한다.

  39살, 늦둥이 임신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뛸 듯 기뻐했다. 지난가을 계류유산 후 우리 집에 온 큰 기쁨이었다. 별나지 않았던 입덧과 모든 게 순조로웠던 임신 초기. 나는 앞으로 세 자매 혹은 삼 남매를 어떻게 키울지 한껏 들떠있었다.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은 날, 급히 조리원을 예약하고 태아보험에 가입했다. 예정일이 2월 말이라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첫째가 걸렸지만 막내가 줄 큰 기쁨에 미안함은 가려졌다.

  남편은 내 진짜 배와 아기배를 헷갈려하면서도 매일 밤 튼살크림을 발라주며 태담을 나눴다. 태명은 진동이. 진이동생이란 뜻으로 단순했는데 건강을 기원하는 태명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니프티 검사에서 진동이는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 나왔다. 일반 1,2차 기형아 검사에서 받는 고위험군과는 위험도가 달랐다. 니프티는 다운증후군에 특화된 선별검사로 정확도가 99.9%였다.

"참... 성별은 아들입니다."

간호사가 망설이 듯 전한 말에 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내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렸다.

  우리는 그날 바로 다른 병원에서 융모막 검사를 받았다. 1차 결과는 이틀이 소요된다고. 나는 융모막 검사를 위해 초음파를 보는 의사에게 아기의 코뼈가 있는지를 물었다. 의사는 만약 코뼈로 다운증후군을 안다면 제가 수천 명의 산모 배에 바늘을 찌르진 않았겠죠? 하며 내게 되물었다. 내 간절한 질문은 그렇게 허공으로 흩어졌고 기분 나쁜 바늘 통증은 아랫배로 뻐근하게 번졌다.

  0.01%에 기대를 걸었다. 니프티도 오류가 있겠지. 초음파 속 팽그르르 즐겁게 노는 진동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한, 피 마르는 이틀의 시간이 지나고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

"21번 염색체가 세 개로 태아는 다운증후군입니다."

융모막검사는 확진 검사였다. 나에겐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낳아서 키운다.

선택유산을 한다.

말이 좋아 선택유산이지. 낙태였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이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은 다운증후군을 모르고 낳은 가정이었고 일부는 알고도 낳았는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신론자인 것이 원망스러웠다.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며 장애아를 낳아 기르는 그 믿음이 부러웠다.

  차라리 몰랐다면 덤덤히 받아들이고 키웠을 텐데 알고는 도저히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갈 강단이 내겐 없었다. 나는 비겁하게도 이 아이가 우리 가정의 행복을 해칠 일을 그리며 선택유산 쪽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 마음이 혹여나 흔들릴까 봐 바로 병원을 알아보고 삼일 뒤로 예약날을 잡았다.

  그 삼일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죄책감에 눈물만 나는 시간이었다. 제발 삼일 뒤 아기의 심장이 멈춰있기를 바랐지만 수술 당일까지 진동이는 내 뱃속에서 살아있었다. 내가 태어나 가장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상대가 내 자식이라니. 병원에서 주는 이름 모를 알약을 두 알 삼키자 자궁수축이 시작됐다. 이대로 병원에서 도망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도망가서 그다음은? 그다음은 어쩌라고.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렇게 진동이를 떠나보냈다. 

  그 후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후회가 날 덮쳤다. 13주의 짧은 시간을, 뜨거운 여름을 함께한 내 아들에게 감히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그냥 슬퍼하기로 두고두고 후회하기로 영원히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넌 지금 어디쯤일까? 엄마는 너를 보낸 그날 그 시간, 그 감정에 멈춰있어. 너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못 하겠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다시 한번 기회를 줄래? 너와 들었던 매미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오늘은 귀뚜라미가 구슬 피우는구나. 널 보내기 전날 함께 본 8월의 보름달, 아름다웠던 그 달을 기억할게. 널 잊지 않고 평생 아파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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