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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Feb 12. 2022

[넷플릭스] 모럴센스 (2022)

BDSM 소재만 맛보기 스푼으로 핥은 격 (한국영화/서현/이준영/로맨스)

모럴센스 (2022)

감독: 박현진

출연: 서현, 이준영, 이엘 등

장르: 로맨스, 코미디

러닝타임: 118분

개봉일: 2022.02.11

취향존중, 상명하복 로맨스 시작

 키즈 콘텐츠 홍보팀의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로 만난 '정지우(서현)'와 '정지후(이준영)'. 한 끗 차이일 정도로 이름이 비슷하지만 매사에 똑부러지고 정확한 '지우'와 서글서글하고 싹싹한 '지후'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들이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계속 엮이게 되는데, 하루는 '지후'에게 배송되어야 할 택배가 '지우'에게 보내지는 바람에 그의 은밀한 비밀이 들통나고 만다. 그가 사실은 BDSM의 섭 성향을 가진 남자라는 것을. 

 지우는 생전 처음 접해본 성향에 당황하는 듯 하지만 이내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을 '주인님'이라 칭하며 복종하는 지후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상호 합의 하에 3개월 간 '디엣(지배하고 복종하는 두 사람의 관계)' 계약을 체결하고, 회사 안팎을 오가며 은밀한 플레이를 본격적으로 즐기게 된다. 과연 이들 사이에 오가는 감정은 성적 흥분으로 인한 고양감일까, 아니면 일종의 연애감정일까. 

매력적인 소재 but 설명에만 충실

 성적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BDSM을 메인 소재로 내세운 콘텐츠를 찾아 보기란 쉽지 않다. 애초에 특정 성적 취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개념인 데다가 절대 메이저한 개념은 아니라서 유명 배우를 캐스팅한 상업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시도 자체가 전무했다고 봐도 무방한 주제이기 때문에 <모럴센스>라는 영화 자체는 대중으로 하여금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요소가 많다. 애초에 대중적으로 유명한 '소녀시대' '서현'과 아이돌에서 연기자로 완벽히 자리잡은 '이준영'을 주인공으로 택했다는 것부터가 소재와 더불어 넷플릭스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충분했다.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친절하게 풀어내려는 데에 급급했던 탓일까. <모럴센스>는 BDSM이라는 소재를 꺼내기만 했을 뿐,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극중 진행되는 플레이나 인물 간의 대화는 관련 용어나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한 용도로만 기능하며 전반적으로 마치 <SM 플레이어>라는 제목의 성적 취향 개념서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그 악명 높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보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작품이 소재 맛보기 스푼에 그쳤다는 생각이 명확하게 든 이유는 인간의 성적취향과 욕망, 심리적 흥분을 다루고 있는 작품임에도 섹슈얼한 텐션이 전혀 감돌지 않는다. 돔과 섭을 연기하는 두 사람은 개와 주인님이 되거나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등 지배와 복종 관계로 얽힐 수 있는 여러 관계들로 일종의 롤플레이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그저 19금 SNL 콩트 속 한 장면처럼 코믹하고 어설프게 그려질 뿐이며 야릇하거나 발칙한 분위기가 전혀 형성되지 않는다. 하다 못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처럼 매혹적인 음악이라도 적절하게 활용했더라면 긴장감과 흥분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텐데, 그마저도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

 BDSM은 성적 취향의 일부일 뿐, 변태라거나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던 것이라면 이렇게 희화화해서는 안됐다고 본다. 소재는 다루고 싶은데 깊숙이 진입하기에는 겁이 나고, 하지만 해당 소재에서 등장할 만한 역할극들은 모두 써먹어보고 싶고...욕심과 망설임이 부딪히다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배우들의 연기변신을 보는 재미

 아직까지도 대중에게 올곧은 모범생 이미지가 강한 소녀시대 '서현'이 거친 욕을 쏟아내며 구둣굽으로 상대를 짓밟고,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들을 연기할 것이라고는 절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재미는 오히려 스토리적인 부분보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편견을 깬 '서현'의 파격적인 변신이 돋보이는 부분들에서 두드러졌을 것이다. '지우'는 기존의 '서현'의 이미지와 겹쳐보았을 때, 이질감이 들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이렇게 센 역할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강한 폭발력까지 느껴지는 연기는 아니지만 이는 연출과 각본의 문제지, 배우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우'에게 복종하며 댕댕미를 뽐내다가도 자신의 남다른 취향으로 인해 입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드러낸 '지후'를 연기한 '이준영'의 연기 변신도 탁월하다. 쉽지 않은 연기였을텐데도 오글거리거나 어색함이 드러나지 않도록 완전히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었달까. 

나와 다르다고 어떻게 돌을 던지나

 BDSM을 책으로 배운 듯한 교과서적인 스토리는 아쉽지만, 영화의 결말부를 통해 남긴 메시지 하나만큼은 공감하는 바다. 겉으로는 본인이 제일 정상인 척, 순수하고 건전한 척을 일삼지만 실제로는 속이 더 시커먼 인간들이 많다는 것을. '지우' '지후'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회사는 남들과 다른 성적취향으로 풍기문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지후'와 그와 함께한 '지우'를 징계 위원회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만이 올바른 인간상이고, 두 사람은 인권도 없는 변태 혹은 짐승 취급을 하며 온갖 희롱 섞인 말로 조리돌림을 한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불륜이나 성접대를 일삼는 쓰레기들에 불과했다. (녹음 펜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극중 '지우'와 '지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취향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관계를 가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음성 파일 하나만을 갖고 온갖 추잡한 상상을 하며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음해한다. 과연 이들을 비정상이라며 깎아내리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더 인간적이고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회사에서 잘려야 할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닌 이들을 징계하려 했던 윗선들이 아니었나. 우리 모두에겐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기 마련인데, 나와 다르거나 혹은 정상의 범주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비난할 권리는 없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에 좀 더 진중한 접근을 했더라면 좋았을 터이나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만큼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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