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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Nov 07. 2022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2 (2022)

연대를 통해 한 발짝 나아가다 (밀리 바비 브라운/헨리 카빌)

에놀라 홈즈2 (2022)

감독: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밀리 바비 브라운, 헬레나 본햄 카터, 헨리 카빌, 루이 파트리지, 데이빗 듈리스 등

장르: 추리, 드라마

상영시간: 129분

공개일: 2022.11.04

연대를 통해 한 발짝 나아가다

 ‘튜크스베리(루이 파트리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사라진 엄마 ‘유도리아(헬레나 본햄 카터)’를 찾으며 초짜 탐정으로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에놀라 홈즈(밀리 바비 브라운)’는 오빠를 따라 탐정 사무소를 설립한다. 하지만 미성년자에 여성이기까지 한 ‘에놀라’에게 사건을 맡기는 사람은 없었고, 탐정 사무소를 찾아와 오빠인 ‘셜록(헨리 카빌)’을 찾는 사람들만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파리만 날리던 탐정 사무소를 접으려던 찰나, 성냥 공장에 다니는 소녀 ‘베시’가 ‘에놀라’에게 언니의 실종 사건을 의뢰하면서 ‘에놀라’의 첫 탐정 업무가 시작된다. ‘에놀라’는 호기롭게 성냥 공장에 잠입하며 추리를 시작하지만, 생각보다 크고 위험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앞에 놓인 위기와 난제들을 차례차례 헤쳐 나간다. 

<에놀라 홈즈> 1편은 ‘에놀라’가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는 모험 활극이 주된 이야기였다. 페미니즘적 색채도 담겨 있었지만 ‘유도리아’가 주도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은 후반부에 살짝 드러나는 정도였고, ‘에놀라’의 서사를 통해 여성도 남성과 평등하게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원론적인 논리가 핵심이었다. 반면 속편은 성냥 공장에서 열악한 조건으로 근무하던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당시 여성들이 처했던 사회적 문제와 결부 지어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논한다. 전편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힌 만큼 추리의 비중이 커지긴 했지만 결국 작품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연대를 통해 권리를 쟁취한 여성들의 사회운동에서 비롯되는 주제의식이다. 

 

에놀라’와 ‘셜록’이 맡은 사건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1888년 여성 노동자 ‘세라 채프먼’이 주도했던 ‘매치걸 파업(Matchgirls’ Strike)’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낸다. 당시 런던에서 최대 규모의 성냥 공장이었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에서는 ‘세라 채프먼(Sarah Chapman)’의 주도 하에 1,400명의 어린 여공들이 비인간적 노동 실태를 폭로하고 질병을 유발하는 백린 사용을 금지하도록 집단 파업에 돌입했다. 이를 통해 런던 노동위원회로부터 산업안전을 위한 조치를 약속 받았고, 1908년에 백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노동권 투쟁의 최전선에 있던 것은 권력의 최하위에 놓였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작은 불씨에 불과했던 이들도 연대를 통해 큰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는 노동하지 않을 권리라는 노동기본권에 속한 개념마저 되새긴다. 물론 후반부에 주제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감정적으로 어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전편에 비해서는 페미니즘을 자연스럽게 풀어냈고, 추리물과 사회운동을 억지스럽지 않게 연결 지었다. 

전편에서 신선한 장치들을 모두 끌어 썼기 때문에 속편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4의 벽을 뚫는 ‘에놀라’, 19세기 영국의 전형성을 파괴한 여성 캐릭터들, 성별의 고정관념을 틀어버린 ‘에놀라’ ‘튜크스베리’의 관계 등은 이미 전편에서도 등장했던 요소들이다. 대신 추리극이라는 정체성에 충실하며 액션 모험 활극 정도로 비춰졌던 전작의 부족한 장르적 정체성을 보완한다. 단순히 의뢰인 소녀의 언니를 찾고자 했던 사건이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 파업으로 이어지고, 대규모 횡령의 범인을 추적하던 ‘셜록’의 사건과도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캐릭터들을 의심하고, 복선을 해결해 나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기지와 명석함을 갖춘 ‘에놀라’가 점점 탐정의 면모를 갖춰 감에 따라 추리극으로서의 정체성도 짙어 지는 듯하다.

 작품이 강조한 ‘연대’는 극중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에놀라’와 오빠 ‘셜록’, 그리고 ‘튜크스베리’와 엄마 ‘유도리아’까지 연대를 통해 각자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끔 연출한다. 전편은 주인공인 ‘에놀라’의 능력과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 캐릭터들을 소모적으로 활용한 감이 있다. 하지만 본편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에놀라’가 ‘셜록’의 도움을 여러 차례 받고, ‘셜록’ 역시 ‘에놀라’를 통해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얻을 수 있는 안정감과 힘을 깨닫는다. ‘에놀라’에게 보호받는 존재로 그려졌던 ‘튜크스베리’는 비록 피투성이가 되긴 했지만 스스로 적과 맞서며 싸울 줄 아는 남자로 성장하고, ‘에놀라’와 상호보완을 이루는 연인이 된다. 잠깐의 등장만으로 임팩트를 남긴 ‘유도리아’는 여전히 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며 ‘에놀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그녀의 가르침이 언제나 해결책이 되어 준다. 결정적인 위기에서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우두커니 뒤편에 서서 ‘에놀라’의 성장을 바라봄으로써 모녀의 바람직한 연대 과정을 보여준다. 

 추리 영화의 서늘한 온도, 미스터리를 해결해 가는 촘촘한 연출을 기대했다면 어딘가 엉성하고 어수선해 보이는 <에놀라 홈즈>는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에놀라 홈즈’다운 것이다. 만일 이 시리즈가 관객으로 하여금 충격적인 반전을 거듭 선사하고, 사건에만 집중하는 흐름을 보여주었다면 오히려 작품의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로맨스와 어드벤처를 곁들인 하이틴 오락 영화의 색채를 풍기면서도 사건 추리를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이끌어내는 것이 곧 <에놀라 홈즈>의 정체성이다. (만일 3편도 제작될 예정이라면, 오빠의 동업 제안을 거절한 ‘에놀라’가 오빠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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