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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ofilm Nov 19. 2022

동감 (2022)

풋풋함과 맞바꾼 애틋함 (여진구/조이현/김혜윤/나인우/로맨스)

동감 (2022)

감독: 서은영

출연: 여진구, 조이현, 김혜윤, 나인우, 배인혁

장르: 로맨스, 판타지

상영시간: 114분

개봉일: 2022.11.16

1999년의 대학생 ‘김용(여진구)’과 2022년의 ‘김무늬(조이현)’. 두 사람은 우연히 HAM 무전기를 사용하다가 23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거짓말 같은 통신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각자 95학번과 21학번이라고 주장하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의 심술 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차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며 얼굴도 모르고, 실제로 만날 수도 없는 교신기 너머의 상대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며 두 남녀는 가까워진다. 

‘김용’은 기계공학과 신입 여학생 ‘한솔(김혜윤)’에게 첫눈에 반한다. 여학생이 귀한 학과에 당돌한 성격에 예쁘기까지 한 학생이 들어왔으니 학교 생활에 따분함을 느끼던 ‘용’에게 활력을 가져다 주기 충분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성격까지 좋은 ‘용’은 나름 학교의 인싸지만 연애 앞에서는 숙맥이나 다름 없었고 20년이나 앞선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무늬’는 무전을 통해 여심 저격 방법을 코칭해 준다. 조언은 성공적이었고, ‘김용’은 ‘한솔’과 꿈에 그리던 연애를 시작한다.

자신의 감정에 직진할 줄 아는 ‘김용’과 달리 ‘무늬’는 2022년 현재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고민을 안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가면 인생이 잘 풀릴 줄 알았지만 대학에 가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진로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물론 오랜 남사친 ‘영지(나인우)’를 두고는 친구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무전을 통해 고민을 토로하며 답답함을 털어내고, ‘김용’ 역시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 결정하지 못했다는 비슷한 고민을 듣고는 동질감을 느낀다. 쉽게 상념을 풀어 놓을 데가 없던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더 많은 시간을 무전으로 함께한다.

그러나 23년이라는 시간 차를 둔 소통은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무전 통신을 두고 대화만이 오갔을 뿐이지만 각자가 존재하는 시대상의 흔적들도 교신기를 따라 함께 이동했다. 처음에는 1999년도에 사는 ‘김용’이 이해할 수 없는 유행어 정도만이 이동할 뿐이었다. ‘김용’은 자신이 40대가 되어서야 뒤늦게 알 수 있을 법한 신조어를 이해하며 박장대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미래에 벌어지게 될 일들을 선택적으로 들을 수 없던 ‘용’은 절대 미리 알아서는 안 될 사건까지 알게 된다. 과거 ‘김용’의 흔적을 찾기 위해 애쓰던 ‘무늬’는 ‘용’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전하고, 연애를 시작한 이후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그의 인생은 완벽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동감>은 2000년 개봉한 ‘유지태’‘김하늘’, ‘하지원’ 주연의 <동감>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남녀가 교신한다는 핵심적인 설정만 그대로 유지한 채 작중 배경만 ‘1979년-2000년’에서 ‘1999년-2022년’으로 바꾸었다. 또한 원작에서는 여주인공을 맡은 ‘김하늘’이 과거를 살아가고, 남주인공을 맡은 ‘유지태’가 현재를 살고 있던 반면 리메이크 작에서는 남주인공인 ‘여진구’가 1999년 과거를, 여주인공 ‘조이현’이 2022년 현재를 맡았다. 

 

중반까지의 진행은 매우 자연스럽고 캠퍼스 로맨스 장르의 풋풋함이 뚝뚝 떨어진다. 신입 여학우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랑꾼으로 분한 ‘여진구’와 수줍음과 당찬 면모를 모두 갖춘 매력적인 ‘한솔’ 캐릭터를 소화하는 ‘김혜윤’의 연기력은 작중 오글거리는 대사마저 매끄럽게 소화할 정도로 뛰어나다. 두 사람이 학생회관 건물 앞에서 처음 만나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썸을 타는 과정은 여느 캠퍼스 배경의 멜로 드라마와 다를 것이 없지만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이 익숙한 스토리라인 속에 재미를 불어넣는다. 특히 로맨스의 감정선을 단독으로 이끌어가는 ‘여진구’의 힘이 대단하다. (‘방가방가’ 같은 최악의 대사도 맛깔 나게 소화하는 치명적인 매력이란.)

문제는 <동감>이 단순 캠퍼스 로맨스 장르의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다. 20년의 간극을 두고 있는 남녀가 짝사랑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동감’을 느끼고, 이 과정을 단 한 번의 대면 없이 오로지 무전 상의 목소리로만 교류한다는 점에서 애틋함을 자아내는 게 핵심 주제이자 중요한 감정선이다. 하지만 원작과 시간적인 배경만 다르게 설정했을 뿐인데 남녀 주인공의 소통은 그리 애틋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용’과 ‘한솔’의 로맨스는 풋풋하면서도 몰입감 있게 그려졌지만 ‘무늬’와 ‘용’의 소통은 전반적으로 어색하기만 하다. ‘베프’, ‘이불킥’ 같은 철 지난 유행어들로 세대 차이를 보여주려는 대사들은 억지스럽기까지 하며 ‘조이현’의 연기력이 ‘여진구’에 비해 부족한 탓에 집중을 흐린다. ‘김혜윤’과 ‘여진구’의 뛰어난 연기, 그리고 감초 같은 매력을 더한 ‘배인혁’이 등장하는 과거 신은 캠퍼스물 특유의 유쾌함과 청춘의 건강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반면 ‘조이현’과 ‘나인우’가 합을 이루는 신은 완성도 낮은 웹드라마를 보듯 부자연스럽다. 후반부 ‘무늬’의 감정선이 매끄럽게 전달되지 않은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1999년의 남자와 2022년의 여자가 오래된 무전기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퍽 판타지 같은 설정이다. 2000년에 개봉한 원작 역시 이러한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낭만적인 색채를 부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2022년의 <동감>은 기술이 너무도 발전한 세상의 ‘무늬’가 ‘김용’의 흔적을 척척 찾아내고, 비현실적인 상황의 흐름을 두 사람이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판타지의 색깔이 옅다. 특히 ‘용’의 짝사랑 이야기와 달리 실제 있을 법한 Z세대 대학생의 고민을 다룬 ‘무늬’의 이야기는 낭만을 반감시키고 현실성을 덧입히는 요소다. ‘HAM 무전기’와 ‘공중전화’, 1990년대 음악 등 향수와 감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품들만 들고 왔을 뿐 각 장치들은 애틋함이나 아련함을 연출하지 못한다. 특히 주인공이 소나기를 맞으며 이별을 결심하는 장면에서 ‘김광진’의 ‘편지’를 사운드트랙을 사용한 것은 촌스럽고 조악하기까지 하다. 

원작에 비해 풋풋하고 밝은 색감을 더하는 데는 성공 했는지 몰라도 판타지 로맨스의 애틋함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원작의 장치들을 그대로 따라가느라 리메이크 작품만의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는데 일부 한계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후반부에 갑작스레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것도 뜬금없다.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 첫사랑에 실패한 ‘용’의 이야기를 보여주고는 ‘마음 가는 대로 솔직하게, 진심은 언제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영지’를 향한 ‘무늬’의 진심이 통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작중 단 한 번도 아련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만이 ‘동감’을 느끼고, 관객은 작품에 전혀 ‘동감’할 수 없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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