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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셔의 손 Jan 06. 2022

남돌, “우리 오빠”에서 “우리 애”가 되기까지

H.O.T., 젝키, 신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를 지나 빅뱅, 샤이니, 엑소, 방탄소년단, 세븐틴, NCT까지.

모두 대한민국을 빛내온 남자 아이돌들이지만, 이들은 아래의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현역 당시 팬들에게
“우리 오빠”로 불리던 이들과,
“우리 애”라 불리는 이들.


응답하라 1997 속 성시원은 목이 터져라 H.O.T. 의 “토니 오빠”를 외쳤었다. 하지만 2022년 지금, 아미들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정국 오빠”, “태형 오빠”라 부를까? “우리 정국이”, “우리 태형이”라 부르는 팬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 본다.


단지 나이가 많은 팬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기 남돌의 브이앱에는 “OO야, 나 이제 중학생이 돼서 너무 떨려.” “OO야, 나 6학년인데 키가 너무 작은 것 같아.”라며 미성년자 팬들이 20대 중후반의 멤버들에게 말을 놓는 댓글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팬 커뮤니티에 남돌 사진이 뜨면 “OO 오빠 오늘 너무 멋있다ㅠㅠㅠ”보다는 “오늘 OO이 너무 예쁘다ㅠㅠㅠㅠㅠ미쳤다”라는 반응이 훨씬 흔하기도 하다.


그렇다. 언젠가부터 덕질하는 아이돌을 “오빠”라 부르는 것은 조금 오글거리게 느껴지고, “우리 애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멋지던 우리의 오빠들은
언제부터 예쁘고 귀여운 “우리 애들”이 된 것일까?


1 쉬워진 소통

열심히 손편지를 써서 소속사로 보내도, 답장은 커녕 받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것이 과거 오빠들과의 소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브이앱 뿐만 아니라 위버스, 버블, 유니버스 등 소통 앱을 통해 멤버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은가. 운이 좋으면 소통 앱에 내가 남긴 글에 멤버가 댓글을 달아줄 수도, 브이앱에서는 내 댓글을 멤버가 읽고 그에 대해 10분 넘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닿을 수 없던 신비로운 존재였던 오빠들은, 이제는 팬들과 재잘재잘 일상을 나누는 친구들이 된 것이다.


멤버들의 말투가 또래 친구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질 때 친밀감은 더해진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 속 남돌은 자신이 올린 사진에 팬이 ‘너임?’이라고 댓글을 달자 ‘ㅇㅇ’이라고 대답한다. 거의 카톡을 하는 친구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인 것이다..!


팬 플랫폼 ‘위버스’에서 팬과 소통하는 아이돌

이렇듯 과거에 범접할 수 없던 오빠들은 이제는 팬들과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서로와 친해지고 있다. 이렇게 친구 같은 아이돌을 “멋진 우리 오빠ㅠㅠ”라고 부르기에는 팬과 아이돌이 너무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2 유튜브, 자체 컨텐츠

공중파 예능에서는 아이돌들이 해당 예능의 주어진 문법에 따라, 베테랑 예능인들과 방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긴장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소속사들이 유튜브에 정기적으로 올리는 자체 예능 컨텐츠, 줄여서 ‘자컨’이 있다. 자컨에서는 다른 연예인이 아닌 같은 그룹 멤버들과 촬영을 하기 때문에 아이돌들이 방송인보다는 누군가의 멤버이자 친구로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편집도 방송사가 아닌 소속사에서 직접 하기 때문에 보다 긴장을 덜하고 스스럼없이 멘트를 치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자컨 외에도 수많은 비하인드 영상이 올라온다. 안무 연습 비하인드, 컴백 활동 비하인드, 화보 촬영 비하인드, 앨범 녹음 비하인드 등등.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멤버들이 쉬는 시간에 어떤 장난을 치는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하는지 등 그야말로 무대 뒤의 멤버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평상시 자연스러운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팬들은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씩 아이돌의 공식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자컨과 비하인드 영상을 본다. 매주 한없이 유치한 장난을 치며 서로와 투닥거리는 멤버들을 보다 보면, 그들을 '오빠'라고 부를 만큼의 신비감은 쌓일 수가 없다. 그저 '이 잘생긴 남성들은 왜 이렇게 귀엽기까지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될 뿐.


결과물: 유사 육아?

신비로움보다는 친구 같은 매력을, 귀여운 매력을 뽐내는 요즘 아이돌들.

그래서일까?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춤이나 보컬이 늘어서, 표정연기가 늘어서 아이돌을 칭찬하는 댓글이 예전보다 많이 보인다.

“우리 OO 진짜 많이 늘었어ㅠㅠㅜㅠㅜ 연습 엄청 많이 했나 봐”

확실히 “우리 오빠”한테 할 법한 말은 아닌 것 같고, 마치 부모가 어린 자식의 성장을 기뻐하는 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댓글이다. 비슷한 사례로 예능 프로에 나온 멤버가 자체컨텐츠나 브이앱에 비교해 조용한 모습을 보이면, 팬들은 “우리 애가 낯을 많이 가려요..”라고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보통 유쾌한 어조로 쓰이지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기도 하다.


이렇듯 최근 팬들은 친구를 넘어, 때로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돌을 지켜보게 되었다. 요즘 덕질은 '유사 연애'가 아니라 '유사 육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덕질하면서 멤버들을 '키운다'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쓰이고, 무엇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팬들에게 아이돌은 '우리 애들'로 통하게 되었다.



아이돌이 우리의 “오빠”에서 “친구”, 심지어는 우리 “애”가 되기까지.


애교 문화나 프로듀스 101  아이돌들의 성장 서사를 강조하는 콘텐츠들도 아이돌이 어리고 귀여운 존재로 비치는   역할을 다. 하지만 결국 남돌들이 우리 오빠에서 우리 애들로 변하는 데에는 팬과 소통하는 방식의 변화 가장 컸다고 본다. 팬레터를 쓰던 시기를 지나 공카가 개설되고 미투데이, 브이앱, 유튜브, 인스타그램, 그리고 위버스와 버블이 생기기까지. 케이팝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는 지난 20 동안 이렇게 다양한 플랫폼들을 거쳐 지금에 도착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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