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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즈모넛cosmonaut Oct 18. 2020

#2 우주여행자에게 나라란?

우주여행자로 사는 법

김명인의 산문집 『부끄러움의 깊이』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에게 조국이란 없다”. 자극적이다. 그 말을 입에 담으면 왠지 가슴이 철렁한 느낌이 든다. 금기의 선을 넘어버린 느낌.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이 한창일 때 공주에 사는 어느 선배 한 분과 통화를 하다가 엄청난 말을 들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하고 모두 응원을 하는데 자기는 입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더라는 거였다.     


이 낯선 심리는 뭐란 말인가.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조국이란, 대한민국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 고향이나 엄마처럼 우리를 보호하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존재? 외국 가서 대한민국의 상품 광고판을 봐도 자랑스러운 그런 존재? 그러면 왜 김명인이나 내 선배는 그런 낯선 말을 입에 담는가.     




우주여행자가 보면, 민족주의라는 감정은 참 기괴한 것일지 모른다. 코스모폴리터니즘도 지구인만 똘똘 뭉치는 속 좁은 생각으로 보일 터인데, ‘우리나라’와 같은 민족주의적인 생각이나 말들을 접하면 얼마나 낯설까. 자유를 향해 여행하는 자들이 보면 지구인들이 어떤 나라에 소속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리라. 우주여행자가 김명인이나 내 선배의 말을 들었다면 왜 당연한 이야기를 하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에는 우울한 배경이 있다.      


김명인은 독재 시대에 처참하게 고문당한 끝에 민주화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의 이름을 발설했고, 그 이후 그는 자신을 고문한 조국을 긍정할 수 없었다. 그의 부정은 조금이라도 나은 나라를 만들어보려는 ‘조국’ 사랑과 짝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주여행자는 김명인의 사랑이 ‘조국’이라는 추상체가 아니라 그 조국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나마 그를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주에 사는 선배가 “대한민국”이라 외치지 못했던 이유도 김명인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의 슬픈 과거가 그로 하여금 반쪽짜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입에 올리지 못하게 했겠지. 우주여행자는 그런 그의 복잡한 심경을 안타까워했으리라. “대~한민국”이라 외치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축구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뭐라고 굳이 “대~한민국”이라고 고래고래 외쳐야 하는지, 우주여행자는 그 모두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을 하면 참 편안하고 자유롭다. 심지어 약간 흥분된 쾌감 같은 걸 자주 느끼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나의 현 존재 상태를 벗어나 그 어떤 윤리적 속박도, 그 어떤 현실적 과제도, 그 어떤 미래를 향한 욕망도 작동하지 않는 여행. 우리의 삶이 여행 같은 색깔의 그것이라면, 과연 내가 사는 나라, 조국은 어떤 존재일까? 내가 당연하다 느끼는 수많은 윤리적 판단이나 의무적 행위들은 여행하는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     


나는 우주여행자가 되고자 한 순간부터 김명인이나 공주 사는 선배와 같은 식의 나라를 대하는 태도가 싫어졌다. 또 무작정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도 싫어졌다. 복잡하고 ‘심오한’ 사랑이든 공기처럼 당연한 사랑이든 그것이 조금이라도 나를 속박하는 것이라면 난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니가 내게 해 준 게 뭔데?”하고 물으려면 처음부터 사랑 따위 하지 않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이 땅에서 살아온 내가 나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당연하다 여겨왔던 수많은 윤리들로부터 내가 자유로운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어찌 보면 그 자유의 지향이라는 것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라를 떠나 스페인 남부 작은 도시 네르하를 평온하게 거닐고 있을 때 난 내 나라로 돌아가기 싫었다. 정처 없음이 좋았고 한적한 분위기와 강렬한 햇살이 참 좋았다.     




내게 모든 윤리는 그저 공기처럼 편안할 때만 의미 있다. 스페인 네르하를 거닐 때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나라를 생각하고, 자연에 감사해하고, 가끔은 나를 생각하고…. 또 세계인들을 생각하고, 우주인들을 생각하고…. 우린 참 벗어던질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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