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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ural born traveller Oct 20. 2020

여행의 힘

예상치 못한 순간까지도 즐겁게

역시나 여행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은 자꾸 일어난다. 남편의 안식휴가를 맞아 우리는 장기 여행을 계획했고 먼저 이스탄불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머물다 터키 일주를 시작하였다. 꿈만 같았던 터키일주를 마치고 예정되어 있는 대학원 기말고사 일정으로이스탄불 공항에서 남편은 눈물을 머금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아이와 나는 아이의 일기장 속 바람대로 소크라테스의 기운을 받기 위해 아테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와 각자 기내용 캐리어 하나씩만 들고 떠나는 새로운 스몰 트립이 시작된 것!


이스탄불에서 아테네까지는 비행시간이 한 시간 반 남짓이고 그리스는 터키보다 한 시간 느려진다. 수학 기호처럼 생긴 그리스어가 익숙한 듯 낯설다.


아테네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들어 가는 x95 버스를 타고 버스의 종점인 신타그마 광장에 내려 도보 5분이면 되는 플라카 지구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버스를 타고 이십여분쯤 갔을까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기사가 strike(파업)을 외치며 모두 내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리스에서는 흔한 일이라 조금은 염두에 둔 상황이었다 해도 모두에게 갑작스러운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메트로를 타려니 역까지 찾아 걸어가는 길이 너무 번거롭게 느껴지고 택시를 타자니 이미 도로는 꽉 막혀있고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한꺼번에 내려 택시를 잡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미 그 일대는 교통지옥이 따로 없는 아수라장에 그사이 날도 어두워지고 갑자기 비까지 쏟아지는 바람에 제대로 걸렸구나 싶었다. 그때 아이와 함께여서였을까 운이 좋게도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 준 택시를 만나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유인즉슨 신타그마 광장 앞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사람들의 시위가 한창이었으며 때문에 메인도로는 모두 폐쇄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날의 구세주가 되어주신 나이 지긋하신 우리의 노련한 기사님은 이런 상황이 매우 익숙한 듯 아테네의 골목골목을 능숙하게 돌고 돌아 무사히 우리를 호텔에 데려다주었다.


예기치 않은 만남과 상황을 무척이나 즐기는 나로서는 저녁 먹을 시간을 훌쩍 넘겨 식사할 곳 하나 없어 이스탄불에서 친구가 혹시 몰라하며 챙겨준 귀한 컵라면 두 개를 클로징한 호텔 카페테리아에 겨우 뜨거운물을 부탁해 아테네에서의 첫 끼니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조차도 매우 들뜨는 상황임을!  “엄마! 무려 파르테논을 보며 먹는 컵라면이야!” 라면을 즐겨하지 않는 아이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열살인생의 인생 컵라면이라고까지 말하며 맛있게도 먹는 걸 보니 그래, 그리스에서의 첫 식사의 만족도는 이만하면 정말 최상급이다. 아이의 즐기는 힘이란! 정말이지 여행은 그냥 즐겁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레이트 체크인을 하며 리셉션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리스는 알다시피 파업이 정말 잦은 나라라 그리스의 모든 파업에 대해 공지하는 사이트(apergia)까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그리스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그날의 파업을 체크하며 움직이게 되는 수고를 하여야만 했다.


색깔별로 카테고리가 나뉘어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기자, 노동단체, 변호사, 교사 등 상상 불가하게 매일 각종 파업과의 전쟁 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곳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살아 숨 쉬는 땅이라 불리는 아테네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사람들을 붙들고 철학적 질문을 하던 그 골목인 플라카(plaka)에 지금 우리가 있는 거라고!


여행을 하며 겪었던 경험 하나하나가 앞으로 펼쳐질 우리의 인생의 모든 장면 속에서 서서히 반짝반짝 빛을 발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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