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마지막 날에서야 날이 맑아졌다. 지난 이틀이 오늘같이 맑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다시 오라고 아쉬움을 남겨주는 것이려니 하며 짐가방을 챙긴다.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지만 낮 2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12시까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될 것 같아 오전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키츠키 성하마을이라는 옛날 무사들이 살던 지역으로 우리나라의 한옥마을 같은 느낌의 지역이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기에 그곳을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숙소에서 산길을 따라 키츠키 마을까지 가는 길은 어찌나 구불구불한 산길인지 원래 차멀미가 많이 없는 나인데도 가는 내내 속이 좋지 않더니 급기야 아기는 토를 했다. 배가 아프다는 아기를 겨우 달래서 키츠키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유명한 곳이 아니어서 원래도 관광객이 별로 없는 곳인데 오전 10시쯤 도착했더니 더더욱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구글에서 찾은 조식을 한다는 평점 좋은 식당을 찾아갔지만 실제로는 조식을 하지 않았다. 근처에 문을 연 식당이라고는 딱 한 군데 밖에 없어서 선택권 없이 그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오니기리를 파는 간이식당 같은 곳이었다. 정작 오니기리의 원조인 일본에서 오니기리를 먹어본 적은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역시 일본은 쌀 자체가 맛이 있다보니 내용물이 그다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주먹밥의 맛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옛날의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보니 언덕 같은 지형이 상당히 가파르고 땅도 타일 형태의 다듬어지지 않은 돌 바닥이라 유모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그냥 가기엔 아쉬워서 걷지 않겠다는 아기를 들쳐메고 잠시 산책을 하며 둘러보았다.
오후에 왔다면 조금 나았으려나 싶지만 오전 시간에는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없어서 간단한 산책만 하고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차량을 반납하고 시간이 남아 공항을 둘러보았는데 규모는 작지만 이곳저곳 작은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그 중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물이 따끈해서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나쁘지 않았다. 국제선은 뭔가 간이공항 같이 작았지만 옆 건물인 국내선은 꽤나 구경거리도 있고 아기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그곳에서 시간을 좀 보냈다. 알고보니 우리가 알던 국제선은 도착만 처리하고 출국장은 그 옆의 또 다른 건물에 있어서(이 역시 간이건물 같은 느낌의) 여유를 부리다가 시간이 촉박해져서 깜짝 놀라 뛰어가야 했다.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날씨도 흐린 탓에 충분히 즐기지는 못했던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웃는 아기 모습을 보면 그래도 힘을 내서 잘 왔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쉬움이 많았던 오이타 여행, 아기가 좀 더 컸을 때 다시 와서 벳푸 아래 동남부 바다쪽으로 동선을 더 넓혀서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는 곳도 다녀오고 맛있는 해산물도 먹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