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둘째날은 센트럴의 날로 정했다. 옛 경험상 피크트램은 생각보다 별게 없었던 기억이 있어서 마지막까지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홍콩이 처음인 남편에게는 안가면 또 아쉬운 장소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입장티켓 예약을 했다.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우리는 돈을 더 내고 루비패스라는 줄을 덜 서는 티켓을 샀다. 입장권에는 왕복 피크트램 + 스카이 테라스 428 + 메이록 체험 + 루비 패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호텔 근처에 DIM SUM HERE라는 딤섬맛집이 있어 조식으로 먹고 가기로 했다. 약간 애매한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잠깐의 대기가 있었지만 곧 자리가 났다. 메뉴판을 보니 정말 딤섬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구글 검색을 하고 왔는데도 메뉴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빨리 먹고 빨리 빠지는 분위기의 압박에 느긋하게 메뉴판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죽에서 하나 탕에서 하나 이런 식으로 마음 급하게 체크를 해 나갔고 주문이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바로바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딤섬류는 모두 먹을만했고 탕류는 아마도 내가 잘 못 주문한 것 같은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갈비탕과 한약이 섞인 맛인 이상한 탕이 작은 그릇에 귀하게 나왔다. 뭔가 보양식인 것 같아 다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남편과 나 한모금씩 마시고 더 이상 먹지를 못했다. 그래도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맛볼 수 있어서 홍콩에 왔으니 딤섬을 한 번은 먹어야지! 미션은 달성한 기분이다.
피크트램은 아무래도 야경이지만 인파 속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오전 시간에 가기로 한다. 홍콩에서의 첫 지하철 이용이다. 조던역에서 센트럴로 이동한다. 홍콩은 부산만큼이나 산이 많은 것 같다. 구글 맵 3D view로 보니 산지가 아닌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산으로 인해 중국 본토에서의 접근성도 떨어져 보였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리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는 옛날의 중국 사람들은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이 말은 즉슨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에 헬인 도시라는 얘기다. 고가도로도 많고 차도도 복잡하고 유모차 프렌들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도 못하다. 거기에 산지의 경사까지. 홍콩도 한국 이상으로 길에서 아이를 보기가 어렵다. 도심에서는 그냥 일만 하라는 뜻인가보다.
굽이굽이 길을 돌아 땀으로 옷이 젖을 무렵 피크트램 입장 장소를 발견하였다. 10여년 전 쯤에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렇게 어렵게 오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자세한 기억이 사라졌다. 잊고 싶은 기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더우니 잘 따라와주는 아이도 살짝 짜증이 난 것 같았지만 피크트램 입구를 들어서면서 미키마우스와 도날드덕 그림들을 보며 즐거워 했다.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잠깐의 대기 후에 바로 트램을 탑승할 수 있었다. 막상 타보니 재미가 있다. 그러라고 일부러 입구에서 고생을 시키나 싶다.
스카이테라스에 올라 한참 사진도 찍고 풍경도 구경했다. 나름 피크라 좀 선선하려나 싶었지만 산 위에 구름이 걸쳐 있을 정도의 높이였는데도 후덥지근한건 매한가지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티켓에 포함되어 있던 메이록 체험이라는 곳을 방문했다. 예전에는 못 본 것 같은 곳이고 건물의 모퉁이를 활용해 자그맣게 옛날의 홍콩의 생활상을 전시해 놓은, 일반 관광객에게는 큰 흥미거리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는데 아이는 왜 그렇게 이 곳을 좋아하는지 안 둘러봤으면 큰일날 뻔 했다. 아이는 이발소에서 미용사 역할극도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 역할극도 하고, 화장대 앞에서 화장하는 척도 하며 이곳에서만 한시간 가량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관광객도 굳이 이곳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전세낸 기분으로 시원하고 여유롭게 둘러보았다.
이것저것 보다보니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소모해서 일단 내려가기로 한다. 다음 목적지를 미드레벨에스컬레이터로 가서 맛집을 둘러볼까 했으나 이미 1시가 넘어 가장 더운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IFC로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가기 까지 또 다시 구불구불 빌딩을 가로지르고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지상 트램도 한 번 타고 겨우 IFC에 도착했다.
IFC에는 아기 옷이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 있는 옷들은 가격대가 어른들 옷 뺨치게 비쌌다. 아이가 마음에 든다고 고른 옷이 25만원 가량, 우리의 호텔 1박에 맞먹는 돈에 깜짝 놀라 가게를 나왔는데 옷을 사주지 않는다고 마음이 토라진 아이가 얼마나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는지 그걸 달랜다고 또 비싼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여주었다. 20까지도 잘 못세는 아이한테 물가가 비싼 것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것 같다. 어쨌든 나도 IFC 몰의 비싼 물가가 빈정이 상할 지경이었다.
1층을 둘러보는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디자인의 미끄럼틀이 설치되어 있었다. IFC몰 회원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현지 연락처가 없으니 인터넷 가입도 어렵다. 이미 가입에 실패하고 울고불고 하는 아이를 들쳐업고 자리를 옮기는 외국인들이 여럿 보인다. 그러나 우리 남편이 누구인가. 한 번 꽂히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분 아닌가. 남편은 한참을 핸드폰과 씨름하다(와이파이도 먹통이었다) 근처 인포메이션으로 가서 현장 회원가입을 해냈다. 아이는 정말 의기양양해 보였다. 다른 친구는 울었지? 그냥 갔지? 라는 소리를 몇 번을 하던지. 사실 미끄럼틀은 진짜 별 것 없었는데 아이는 또 여기서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IFC몰에서 아이는 즐겁게 우리는 시간을 좀 때운 것 같은 느낌으로 시간을 보내고 4시가 넘어가기에 슬슬 침사추이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침 과식으로 점심을 간식으로 대충 때워서 저녁을 빨리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어제 불만의 시작이었던 해적선은 못태워주지만 일반 배는 태워줄 수 있지. 일반 대중교통인 배를 타면서 이것도 해적선이라고 했더니 후크선장아! 물고기 잡아줄까? 또 신나서 역할극 시작이다.
침사추이에 도착해서 버스를 갈아타고 백종원이 스트리트푸드파이터 홍콩편에 간 음식점 중 하나인 애문생이란 식당으로 향했다. 중심가에서 살짝 떨어져 있어서 관광할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이곳만을 위해 이 동네를 와야 한다. 버스에 내려 바로 코너를 꺾으니 큰 간판으로 애문생 글자가 보인다. 홍콩에서도 대단하게 소문난 곳인지 촬영을 하느라 바쁘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젠슨황도 왔던 맛집이다.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구글리뷰어들이 알려주는대로 소고기 감자 볶음과 조개볶음, 볶음밥을 시켰다. 맛은 살짝 짰지만 워낙 내가 좀 짜게 먹어서인지 내 입맛에는 잘 맞았고 맥주도둑처럼 맥주가 술술 들어갔다.
내일은 대망의 디즈니랜드 방문일이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좀 여유롭고 편안한 하루를 보내려고 했건만 또다시 우리는 과하게 알찬 하루를 보내고 땀에 쩔어 호텔로 복귀했다. 그렇게 놀아도 지치지 않는 아이는 어린이집 안가고 아빠엄마랑 놀고 있다는 기쁨에 호텔방에 와서도 잠들지 않고 그림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리더니 급기야 호텔 벽에도 매직으로 표식을 남겼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