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산일기
드디어 대망의 홍콩디즈니랜드의 날이다. 홍콩여행의 목적기기도 하고 백미이기도 하다.
가장 극성수기의 한여름의 홍콩에 방문하는 것이니 경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순간의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날을 위해 몇 개월의 사전조사가 있었고 입장권도 풀리자 마자 구매를 했다. 놀이기구는 2-3개를 제외하고는 다 아기가 탈 수 있을 것 같아 키 제한이 있는 몇 가지만 제외하고 모두 도전하는 동선으로 위치 인기 난이도 선호도의 변수를 넣어 순서를 짜보았다. 블로그도 유튜브도 이렇게 떠먹여주는 차트는 없을 것 같다는 자신감까지 들었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다는 이야기이다.
아침 일찍부터 맛집을 방문하고 디즈니를 가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욕심이었다. 부랴부랴 일어나서 준비해서 나오니 호텔 맞은 편에 맥도날드가 있다. 갑자기 감자튀김과 도나츠가 먹고싶다는 아이의 의견도 반영하여(라기엔 시간이 너무 없어서) 맥도날드로 향했다. 홍콩까지 와서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약간의 중국 향신료 냄새가 있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디즈니의 살인적 물가를 감안하여 가급적 든든한 조식으로 배를 채우고 택시를 타서 부랴부랴 목적지로 향했다. 지하철로 한시간이 넘고 택시로는 30분 거리이니 시간과 에너지가 더 중요한 우리의 선택은 택시다. 더군다나 early entrance 티켓을 끊어놨는데 조금 늦기도 했으니.
택시정차장에 내려 주위를 두리번 거렸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가 않다. 인파를 따라 들어갔더니 디즈니 직원 입장통로여서 다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9시부터 입장인데 9:01에 도착했으니 이미 다들 들어갔을 수도 있다. 마음이 급해진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오늘따라 해는 왜이렇게 쨍쨍한지 이때부터 땀으로 옷이 다 젖었고 체력을 반쯤 소진한 것 같다.
홍콩디즈니랜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World of Frozen의 Frozen Ever After(겨울왕국 보트어트랙션)으로 뛰어갔는데 이상하게 내부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바로 탑승이 가능했다. 실외와 실내의 온도차는 어마무시하다. 디즈니는 어트랙션을 파는게 아니고 memory를 파는 곳이라더니 아이를 위해 온 곳에서 내가 더 설레이고 명불허전 어트랙션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잠깐의 구간에서 보트가 떨어지는 것 같은 재미 요소가 있었는데 아이는 그때 많이 놀랐던지 이후부터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 일정 꼬였다.. 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도 조기입장권 뽕을 뽑아야 하니 덜 무서운 놀이기구들(회전목마 같은)이 모여있는 Fantasy land로 향했다. 이곳은 영유아도 탈 수 있는 수준의 어트랙션이었지만 한국의 그것들과 비교하면 속도감도 빠르고 높이도 높고, 키제한 기준도 우리보다 낮아서 다 큰 내가 더 소리를 지르며 탔던 것 같다.
10시가 되자 슬슬 사람들이 몰려온다. 날은 벌써부터 찜통이라 실내 공연 관람과 실외 놀이기구 탑승을 번갈아가며 했다. 아이가 타지 않겠다는 놀이기구가 너무 많아서 동선은 이미 꼬일대로 꼬였고, 날이 덥고 마음이 급하니 그렇게 넓은 부지는 아니었음에도 이곳저곳을 원활히 찾기도 어려웠다. 불꽃놀이가 하이라이트인데.. 그 하이라이트는 밤 9시에나 열린다는데.. 이곳에서 12시간을 버틸 수 있는 것일까? 이미 12시 이전에 우리는 녹초가 되기 시작했다. 실외 퍼레이드는 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서 실내를 돌다가 이곳에서 꼭 봐야 한다는 라이온킹 공연을 보러갔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 라이언킹 뮤지컬과 디즈니랜드의 라이언킹 공연을 비교하기에 내심 기대가 컸다. 입장료에 공연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수준이 높은 공연이었고 시원한 실내에서 꽤 긴 시간을 코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현장감 있게 볼 수 있어서 만족도가 높았지만 내 기준에서는 뮤지컬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싶었다. 다시 뉴욕에서 공연을 볼 날이 올까? 아이가 크면 꼭 뉴욕도 데려가 보고 싶다.
World of Frozen의 Playhouse in the Woods는 정말 예약이 너무너무 어려웠다. 현장에서 핸드폰으로 접속을 해야 했는데 예약 시간때마다 접속자 수가 많으니 자꾸 오류가 나고 예약이 실패했다. 겨우 낮 3시 경으로 예약에 성공했는데 나중에 보니 현장 직원들에게 부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꽤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름의 디즈니랜드는 정말 말리고 싶지만 혹시나 나처럼 선택권이 없었던 분들이 계시다면 꼭 디즈니랜드 옆의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early entrance로 일찍 어트랙션을 최대한 많이 이용하고 1시가 넘어가면 호텔로 돌아가 식사도 하고 호텔 내에서 수영도 하고 낮잠도 자고 쉬다가 5~6시쯤 나오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해도 어트랙션은 거의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2일권을 예약해서 오전에 왔다가 오후에 나가고 다음날에는 오후에 와서 밤까지 구경하는 관광객도 많다고 하니 그것 또한 방법이다.
그렇게 예약이 어려웠던 숲속의 플레이 하우스는 15분 동안 소수의 예약 인원이 들어가서 안나와 엘사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인형만 보다가 실제 분장한 사람을 보니 연식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액션들이 좀 어색해서 몰입이 잘 안되었지만 모두가 손 한번 만져보고 싶어 안달인 엘사님께서 친히 울 애기에게 다가와 두 손을 마주잡고 말을 걸어주셨는데 아이의 표정을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래 그거면 됐다.
아침에는 그렇게 태양이 작열하더니 오후가 되자 먹구름이 슬금슬금 몰려오는 것이 찜통 속의 딤섬이 이런 거구나 싶다. 숲속의 플레이 하우스를 나오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불꽃놀이 앞에서 보고 싶어서 불꽃놀이가 포함된 우선 입장권을 비싼 돈 주고 사놨는데... 아이가 놀이기구 타지 않겠다는 말에 남편에게 우선입장권도 샀다고 말을 못꺼냈는데... 아직 불꽃놀이 보려면 5시간은 더 남았는데... 비까지 온다. 그래, 비밀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이곳을 떠나야겠다... 아이는 퍼레이드를 못봤다고 돌아가지 않겠다고 징징거린다. 아가야, 비도 오고 너무 덥다. 아빠랑 엄마랑 약속할께 우리 반드시 겨울에 다시 오자.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이한테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일단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약속부터 한다. 마지못해 수긍하는 것 같았지만 아이도 이미 더위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터라 눈이 그믈그믈 한다.
입구랑 연결된 지하철로 달려가서 개찰구를 지나자 아이는 잠에 빠져들었다. 호텔 근처 역에 도착하니 다행히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아서 호텔로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이었는데 마침 근처 노점이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초이삼 유채나물요리, 맛조개 볶음, 새우볶음(가재같이 생긴... 이름을 까먹었다)을 시켰는데 오모나, 이곳이 천국이구나. 아기는 잠에 빠져 깨지를 않기에 남편과 느긋하게 음식을 즐겼다.
아쉬운 순간도 많았지만 이 정도면 꽤나 알찬 여행이 지속되고 있다. 아이와의 여행은 힘들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한 뿌듯함이 있다. 예전에 여행을 해 보았던 곳이라도 아이와 여행을 다시 오면 마치 새로운 곳인 것처럼 다양한 곳들이 보여지기도 한다. 이래서 아이가 천천히 컸으면 좋겠다고들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