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심리치유 에세이/사람풍경)
살면서 그런 생각 한 번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 누가 내 심리를 명확히 좀 분석해줬으면, 도대체 저 사람의 심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나는 왜 늘 이 지점이 예민하고 이 지점에서 상처받는지 알 수 있다면…. 내 마음에 박힌 가시가 나를 찌를 때, 깊이 새겨진 '옹이'가 삶의 결을 거칠게 할 때 사람들은 심리학 책을 찾는 것 같다.
‘심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음 심, 이치 리, 마음의 작용과 의식의 상태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임에도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어디로 갈지 명확히 알지 못하니 심리학과 심리학자의 도움을 찾게 된다. 나 또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고 싶고, 내 맘 같지 않은 타인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해보기 위해 심리 관련 서적을 종종 뒤적거린다.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가 쓴 심리서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소설가 김형경은 의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비전문가 저자다. 김형경의 심리 에세이를 3년 전쯤 『사람 풍경』으로 처음 만났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심리와 여행하며 탐색한 자신의 심리를 에세이로 쓴 책이다. 그 책에서 미처 몰랐던 나의 방어기제와 행동 패턴을 깨달은 후, 그녀의 심리 에세이 시리즈를 중고서점에서 발견하는 대로 한 권씩 사모았다. 『천 개의 공감』은 내가 만난 그녀의 두 번째 심리 에세이다. ‘심리 치유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천 개의 공감』은 심리 여행 에세이 『사람 풍경』보다 좀더 전문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정신분석 상담으로 치유받은 경험과 깊이 있는 공부로 터득한 지식과 지혜가 전문가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어보인다.
『천 개의 공감』은 한 언론 매체 상담 코너에 올라온 독자들의 질문과 저자의 조언을 엮은 책이다. 질문자들의 사연 속에는 언뜻 사소해보이는 사건에도 오래 곰삭은 상처와 아픔들이 담겨있곤 했다. 각양각색의 사연들 속에서 내 모습과 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타인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고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직면하기’는 한결 쉬워진다. 저자는 질문자의 감정에 일단 공감해준 후, 왜 그런 마음과 행동패턴을 갖게 되었는지 냉정하게 분석한다. 내가 내 감정의 시그널을 해석하지 못해 서툴기만 했던 때에 그녀의 책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감정에 휘둘리고 허우적거리는 대신 좀더 성숙하게 대처하고 선택해나가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자기 알기’ ‘가족 관계’ ‘성과 사랑’ ‘관계 맺기’, 이렇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애 초기의 가족 관계에서 터득한 유아적 생존법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유아기에 배운 사랑의 방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반복되므로 유아기에 형성된 인식의 왜곡과 문제의 근원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치유의 핵심은 ‘직면하기’에 있습니다.”(p.42) 라고 말한다. 감정의 근원을 직면하고 자기 자신을 직면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랑, 건강한 관계,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
글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직면하기’를 저자가 대신해줄 수 없다. 질문자들의 고민을 읽다가, 저자의 송곳 같은 글을 읽다가, 문득 나의 어떤 지점들이 또렷해지는 순간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관계는 이렇게 삐걱거리는지, 무엇 때문에 내 감정은 이렇게 절름발이처럼 느껴지는지 환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찾아오면 책 읽기를 멈추고 가만히 ‘직면하기’ 단계로 들어간다. 마주 하는 자체가 괴롭고 인정하기까지 심리적 저항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더 깊이 더 깊이 바닥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상처 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내가 가해자였음을 깨닫기도 했다. 그런 날은 이미 스쳐간 그들에게 뒤늦은 사과의 문자라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되돌리려 하는 것은 또하나의 집착이다. 비겁했고 무책임했고 신경증적이었던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지나간 일들을 되돌리거나 지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앞으로의 나는 조금은 다른 인식 패턴과 행동 패턴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불안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p.247.)
우리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훌륭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받기 위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 뒤에는 그 반대 감정들이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말은 그러므로 ‘자기의 긍정적인 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면까지 모두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사실 긍정적인 속성들은 내가 사랑해 주지 않아도 남들이 이미 인정하고 사랑해줍니다. 문제는 내면의 부정적인 면들, 남들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 하는 ‘화를 내고 이기적이고 부끄러운’ 자기의 모습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 내면에서 투정 부리는 어린 자아를 ‘왜 투정을 부리지?’하고 궁금해하는 성숙한 자아가 돌보아 주라는 뜻입니다. 남이 가진 것을 시기하는 자기가 느껴질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아, 내가 시기하는구나. 그래도 괜찮아.“라고 지지해 주는 겁니다. 내면에서 시기하고 분노하는 마음은 바로 성장기에 상처 입은 어린 자기입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뜻은, 이제는 성인이 된 OO님이 아직도 내면에서 투정 부리며 돌봐 주기를 바라는 어린 자기를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p.267~p.268)
자신의 못나고 부정적인 면을 사랑하게 되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우선 정신 에너지가 두 배로 강해집니다. 그동안 내면의 부정적인 영역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던 정신 에너지가 창조적인 쪽으로 전환됩니다. (...) 또한 진심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동안은 당위적 덕목으로서 휴머니즘을 실천해왔다면 이제는 공감적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외부로 투사되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게 했던 그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p.269~p.270)
분석적이고 냉철한 그녀의 글이 언뜻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글들은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된다. 손잡아 주거나 등 두드려주지 않아도 이해한다는 눈빛 하나로 위로 받는 따뜻함이 있다. 인생이 잘 안 풀릴 때 점집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좋은 점괘가 나오지 않더라도 “당신이 힘든 이유는 이런 사주를 타고났기 때문입니다.”라는 역술가의 말에 위로받는다. 당신이 힘겨운 이유는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 때문이다. 그리고 그 뒤에 언제쯤 인생이 풀릴지 어떻게 하면 운이 들어올지 희망까지 얻게 되므로 위로의 시간인 셈이다. 이 책에서 느끼는 위안도 이와 비슷한 종류의 위안이다. 따뜻한 말로 위로하진 않지만 당신이 힘든 이유는 이런 감정 때문이고, 이런 관계의 패턴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당신에게 달렸다, 라는 메시지는 많은 위안과 용기를 준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위로의 말이 어디 있을까. 나를 직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타자를 인정하고 이해하기도 쉬워진다.
이 책은 삶에서 쌓여가는 크고 작은 생채기에 발라주는 연고 같은 책이다. 연고를 발랐으니 새살이 돋아날 것이다. 새살이 잘 자라고 있는지 상처를 돌보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