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진 Apr 22. 2022

문 열려도 집안이 안보였으면

인테리어 마인드 (4) 현관-중문

열자마자 고스란히 들통나는 건 별로야


이사 계획이 없어도 남편과 나는 ‘살고 싶은 집’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둘 다 '집돌이-집순이'이라 그런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진짜 그런 집에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난 그 설렘이 너무 좋다. 이사 계획도, 집 지을 계획도 없지만 마치 곧 다가올 미래처럼 우린 진지하게 의견을 나눈다.


현관에 들어오면 바로 세면대가 있으면 좋겠어.
아예 화장실이 있는 것도 괜찮은 거 같아. 집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샤워하고 거실로 나오는 거지. 씻은 다음에 서로 인사하는 거야. "나 다녀왔어!"
난 현관 옆에 간이 드레스룸도 있었으면 좋겠어. 거기에 겉옷, 가방, 외출용 액세서리 등 다 벗어놓고 들어오게.
자전거도 세워놓고 싶고, 벤치도 크게 있었으면 좋겠고. 재활용 모아두는 공간이 있다면 쓰레기 버리기도 편하겠다. 그렇지?


하지만 현실은 구축 아파트 32평이다. 현관에 대한 로망이 10가지라면 그중에 1-2가지만 실현해도 대성공인 것. 우린 꿈꾸던 로망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 집은 1층이다. '1층 아파트 현관 인테리어'를 찾아보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인테리어 포인트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중문'이다. 다수의 블로그나 <오늘의 집>에서 레퍼런스를 찾다 보면 1층 구축 아파트 현관에는 반. 드. 시 중문을 설치해야 한다고 99% 말한다.


그 이유로는 1. 난방  2.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의 소음 차단  3. 사생활 보호  이렇게 3가지가 있다. 맞는 말이고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남들이 모두 다 해야 한다고 말하니 '흠.. 싫은데?' 쪽으로 조금 더 기운다. 소심하고 티 안 나게 반항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소음? 난방? 사생활 보호? 그걸 꼭 중문으로 해결해야 하는 건가? 그냥 좀 춥고 시끄럽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닐까? 어차피 사람들이 다녀봐야 낮시간이 대부분일 테고 우리 집에 신생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런데 딱 하나.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우리 집을 힐끗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건 상상만으로도 싫었다.


그리고 중문이 여닫히는 공간도 아까웠다. '美'를 위해서 공간을 비우는 건 아깝지 않은데 중문을 위한 공간이라니, 그건 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영... 내키지 않았다.


중문, 혹시 원해?
글쎄... 근데 왠지 만들어놔도 열어놓고 살 것 같지 않아?
그렇지? 내 생각도 그래. 그럼 과감하게... 중문 없이 살아보는 거 어때?
그러자. 중문은 살다가 필요하면 다시 설치할 수도 있으니깐. 일단 살아보고 필요성이 커지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자.
좋아. 근데 중문이 없으면 문 여닫을 때 지나가다 슬쩍 봐도 한눈에 우리 집 스캔이 가능할 거 같아. 우린 1층이라 사람들 계속 왔다 갔다 할 거고... 그래서 말인데, 내가 좀 찾아봤거든.


현관 방향을 꺾자!


들어오자마자 가벽으로 시야를 차단하고 들어오는 입구를 측면으로 향하게 하는 거야. 그럼 밖에서 봤을 때 안을 바로 볼 수 없으니 중문보다 훨씬 더 사생활 보호에 효과적일 것 같은데, 어때?


이렇게 해서 현재 우리 집은 밖에서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가벽을 마주하는 구조가 되었다. 혹시 들어오는 방향이 꺾여서 불편하려나? 많이 답답할까? 싶었지만 그런 건 전혀 못 느끼며 지내는 중이다.


반면, 우리가 의도한 대로 배달음식 주고받을 때나 현관에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사생활 보호 역할은 매번 감탄할 정도다! 남편이 현관에서 문을 여닫고 있는 중에도 나는 샤워 후 잠옷 차림의 자연인으로 화장실을 나서며 거실 자유(?)를 만끽한다. 꺾인 현관 덕분에 생긴 거실 자유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웠고 코로나로 서로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 그런지 심리적인 안정감도 느껴졌다.

 

또 꺾인 현관을 만들면서 부가적으로 얻게 된 2가지 인테리어 구조가 있다. 하나는 현관 벤치, 또 하나는 청소기 수납함이다. 벤치는 신혼 때부터 꿈꾸던 인테리어였는데, 이번 드디어 만들 수 있게 됐다! 외출할 때, 특히 부츠나 구두를 신을 때, 그리고 아이가 신발을 신을 때 벤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그리고 청소기 수납함. 사실 이 공간은 원래 신발장 공간이다. 벤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키 큰 신발장을 하나 더 만들 수도 있었던 공간이지만 벤치를 선택한 이상, 그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신발장으로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문을 집 안쪽에서 여닫게 만들어 청소기 수납함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공간을 어떻게 써야 최대한 잘 쓸 수 있을지,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결정했는데, 이사 후 만족감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많은 양의 청소 관련 용품을 한데 모아 수납할 수 있어서 사용도, 보관도 쉬워졌기 때문이다. 매번 어디 있냐고 물어보던 남편도 청소용품만큼은 알아서 찾아 쓴다.


물론 늘 그랬듯이 단점도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1층엔 중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그 이유들. 그것은 사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통화 소리나 어린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제법 들리고, 추운 겨울밤에 거실에 있으면 냉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밤 9시 이후엔 거실에서 거의 생활하지 않는 편이고, 아파트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용한 편이라 지금까지는 중문 없이 지내는 게 딱히 불편하다고 느낀적은 없다.


오히려 문이 없어서 누릴 수 있는 트인 공간감, 가벽이 주는 안정감, 일반적인 32평 아파트 현관보다 조금 더 넓게 현관을 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부가적으로 얻게 된 선물 같은 수납공간과 벤치가 주는 편리함이 나에겐 더 크게 와닿는다.


인생이 그렇듯, 결국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선택하면 되는 문제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빨래를 편하게 하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