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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랑 Sep 12. 2021

7평짜리 잠수함

때를 기다리는 세상의 모든 심해어들에게

작년 여름에 이런 글을 쓰고 묵혀뒀었다.


-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태어났다. 유년은 내리 사방이 산인 내륙지방에서 보냈다. 스무살이 된 해에는 항구가 까운 도시에 살았고, 스물 한 살이 된 때 마침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혼자. 7평남짓 자취방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혼자 살기의 시작이었다.


 바다사람으로 태어나 7평짜리 방에 갇힌다는 것. 서울살이는 끝없는 헤엄치기에 가까웠다. 야밤에 배달앱을 켜고 먹고 싶었던 치킨을 시켜도, 넷플릭스에 빠져 동트는 새벽이 오는 줄 모르고 몰두해도, 며칠씩 청소 안 한 방을 방치하고 뒹굴어도 뭐라 할 사람 하나 없거늘. 문득 주말 아침 쏟아지는 졸음을 눈두덩이에 얹은 마음이 그랬다. 외롭다고.


 혼자 사는 법을 안다. 내가 조용하고 싶을 때 조용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알았고, 2인분같은 1인분짜리 파스타를 완주했을 때의 조용한 쾌감을 알았다. 사고 싶은 것을 사서 진열했다. 음악을 크게 틀고 춤출 수 있는 자유를 알았다. 허락없는 게으름을 필 수 있는 즐거움을 알았다. 나른함에 뒤따르지 않는 눈치를 좋아했다.


 그러나 혼자 사는 법에 뒤따르는 것들도 안다. 끝없이 내 속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긴 새벽을 알았고, 고요가 길어지면 침묵이 된다는 걸 알았다. 집을 어지르는 사람과 치워야하는 사람이 같다는 이치를 이해했다.고요와 고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올해로 자취 4년차, 모르는 것들이 생겨난다. 유투브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매체 없이 밥먹는 법을 몰랐다. 어색했다. 하다못해 팟캐스트라도 들어야 속이 시원했다.


"혼자 사니까 어때?"

"좋아. 진짜 좋아."

"밥은 잘 챙겨 먹어? 혼자 있음 잘 안 챙겨먹지?"

"잘 해 먹어. 나 집에서 요리해먹는 거 좋아하잖아."

"너무 오랜만에 오니까 이상해. 꼭 손님 같애."


 오랜만에 집부엌소리를 들었다. 밥먹을 때 나는 수저 부딪치는 소리, 접시 놓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사람소리도. 이런것들과 너무 오래 떨어진 뒤에야 당연한 걸 어색하게 여기는 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새삼스럽게 집에 왔다는 생각에 울컥, 하며 집밥 한 술을 크게 떠서 입으로 밀어넣었다. 자주 못보니까 꼭 손님같다. 엄마는 두 번이나 말했다. 그새 좀 야위었다며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주는 손길들이 여전했다.


 귓가를 가득 채우던 미디어가 떠나간 자리가 허전했다. 드라마 대사든, 그날의 뉴스든, 외국어 단어든,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뇌에 집어넣으려 애쓰던 시간을 떠올린다. 뒤쳐지지 않으려고 허덕이던 7평짜리 고뇌들을. 스스로도 미디어 중독자 같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생활소음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게 싫었다. 그 짧은 여유조차도 취향이 아니게 만들었다. 문을 나서면서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들을 오디오 클립을 골랐다. 시사는 너무 무겁고, 5분짜리 영어듣기가 좋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사실은 누구보다 좋아했는데.

 127번 버스를 타고 나가서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일. 바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고 멍때리는 하루, 이틀. 그렇게 흘려보내는 몇시간은 단 1분도 초조하지 않았는데. 글을 쓰고 싶은 날이면 글을 썼고 공상을 하고 싶은 날이면 공상을 했다. 여름이면 바다수영을 하고, 패들보드를 타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이던 시절도 있었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처럼 아예 여기에 뿌리를 내릴까 생각도 해본다. 아, 근데 그러긴 아까운데. 누구보다 집순이인 내가? 누구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내가? 일을 만들어서라도 바쁘게 일상을 굴리는 사람이? 정말? 자주가던 초밥집의 연어초밥이랑 1층에 있는 밀크티집 포기할 수 있어? 24시간 상시대기 서비스의 편리함도? 가능하겠어?


 그래, 모르겠다. 항복.

 여전히 누구보다 좋아한다.

 서울이 싫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었다. 바쁜 새벽을 깨우는 도시의 분주함. 당산-합정 사이의 지하철 풍경. 버스를 타고 입성하는 순간 보이는 한강. 주말 오후의 연남동. 내 루틴이 있고 일정이 있고 임무가 있어 지루하지 않은 일상들을. 화려한 불빛과 야경. 이 밤에도 어디로 가는지 매번 궁금한 차들의 끝없는 행렬을. 매순간 아끼고 좋아한다.


"잘 지내야지. 몸 잘 챙기고."


다시 돌아온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엄마가 건넨 마지막 말을 소리내 곱씹었다. 간만에 마주한 천장이 오늘따라 육중하다. 혼자 된 새벽시간은 끝없는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미래에 대한 고민들부터 과거에 대한 후회로 끝없는 여행을 반복한다. 그러니 너무 가라앉지는 말아야지. 이번 여행에서 배운 게 있다면 그거였다. 잊지 않기 위해 되새겨본다. 그러니 너무 홀로 외롭지 말아야지. 나는 내가 지켜야지.


더 이상 혼자 턱끝까지 차오른 버거움과 싸워 이겨내야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여기만은 내 공간이야. 내가 가장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곳이야.

수조가 아니라 잠수함이야. 어디로든 갈 수 있고, 가장 깊게도 높게도 날 수 있는 7평짜리 잠수함.


처음으로 방을 제대로 둘러봤다. 여행 채비를 하는 사람처럼 길게 숨을 골랐다. 여기를 스쳐간 새벽의 모든 시간과 밤을 알았다. 좌절하고 혼자 울던 기억과 설렘과 즐거움의 교차지점이 벽지부터 바닥재까지 빼곡했다. 이제 곧 항해가 시작된다. 물이 차오를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 지금처럼 후련한 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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