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한국 소녀
며칠간 계속된 집안일, 육아에 조용히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이제 오전 11시를 넘은 오늘은 화요일. 아기가 여기저기 토한 침대보 빨래를 마지막으로 널고 잠시 짬이 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집안일을 엄청 잘하고 좋아하는 슈퍼맘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나는 집에 있는걸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집안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하는 일보다는 외부에 나가서 하는 일을 더 즐기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꼭 밖에 나가 미친 듯이 뛰어놀아야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난독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있는 걸 싫어하는 바람에 책 읽는 취미는 끝끝내 가질 수 없었다. 정말 거짓말 한 개도 안 하고 초등학교 때 책상에 앉아서 책을 빨리 읽어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위인전을 모조리 다 읽어치우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책장이 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며 페이지 숫자만 쳐다보고 있어서 책장이 넘어갈 일이 없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내가 이제 책을 쓰고 있다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무튼 포인트는 난 집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걸 싫어한다는 거다. 그래서일까, 전업 주부나 애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그런 상황에 놓인 여성이나 그걸 선택한 여성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 같아선 누워서 침 뱉기다. 하지만 가끔 요리를 좋아하고 아이들 낳고 평화롭게 키우는 게 좋아서 가정 주부가 되는 게 꿈인 친구들을 봤다. 여대를 나온 나는 학교를 다니다 보면 여러 종류의 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엔 꼭 취집이 꿈인 무리들이 있었다. 물론 그 내면에는 준재벌 2세 정도는 되는 남편을 만나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리고 그 무리들은 보통 다소곳한 여성상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옷을 입곤 했다. 명품을 입어도 꼭 선호하는 브랜드나 스타일이 정해져 있었다. 나는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는 그런 스타일의 여성상이었다.
그런 내가 마침 코로나까지 터져서 2차 자가 격리령이 내린 프랑스에서 아기와 갇혀서 하루를 거의 집에서 보내고 있다니. 요즘 나도 내 자신을 보며 신기하다. 내가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던 상황에 떡하니 닥쳐서 이도 저도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2개월째 키우다 보니, 집에서 몸에 좋은 요리를 해서 아기나 나를 위해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고 아이에게 평화롭고 안정적인 여건을 만들어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야 아기도 그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고 많이 웃고 무럭무럭 자란다. 그런 면에서 어쩔 수 없이라도 집에 박혀 있는 이 상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사실 내가 더더욱 피하고 싶었던 상황은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은 현상황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남편을 만나고 난 다음부터 계속적으로 해온 고민인 것 같다. 영어도 어려서부터 배워서 한국어만큼이나 편안하게 구사하고, 고등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나름 일류 대학을 나온 것을 보면 남편에 비해 학력이나 외국어 구사능력도 월등한 편이지만 사실 해외에서 비자 스폰서까지 받아가며 직업을 더 편하게 구한 것은 남편이었다. 프랑스 제과제빵 셰프인 남편의 직업은 해외에서도 유독 프랑스인을 찾는 그런 특수 직업이었다. 해외로 나오고 나서부터 그 사실을 깨달은 남편도 놀랄 정도로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프랑스 제과제빵 셰프 포지션은 찾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패션업계에서 바이어와 마케팅을 한 젊은 여성은 쌔고 쌨다. 게다가 나처럼 관련 없는 학과를 나와 패션업계로 빠진 사람에 비해 패션 관련 전공 학위까지 가지고 패션업계의 문을 두드리는 나보다 훨씬 젊고 센스 있는 사람은 더 쌔고 쌨다. 그래서 내가 나름 관련 업계 지인이 많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외국에서는 가끔 쪽도 쓸 수 없었다. 게다가 비자 문자까지 엎친데 겹친 격으로 더해져 내가 원하는 직업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래서 선택한 소셜미디어 마케팅이나 인플루언서도 나는 웬일인지 잘 풀리지만은 않았다.
그런 노력에서 1년 전 뉴욕에 있을 때 시작했던 게 유튜브 채널이었다. 뉴욕 쇼핑 정보를 위주로 한국어로 올리기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에는 이제 뷰티와 라이프스타일을 겸비한 영어 비디오로 조금 변해있다. 이제 1년 4개월이 된 유튜브 채널은 가끔 뷰수가 엄청 많이 나오는 비디오도 있긴 하지만 아직도 200명이 좀 넘는 구독자만을 보유하고 있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다 대박 나는 채널들도 많던데 나는 왜 이럴까 하며 최근에 찾은 어떤 채널이 있다. 20대 주부의 일상을 그린 브이로그 위주의 채널로 채널 주인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보통 집에서 음식을 하는 영상을 올리곤 한다. 예쁜 영상을 올리는 데는 그렇게 집중하지 않고 거의 요리하는 내용을 보여주는 게 다인데 대부분의 영상이 백만 뷰수를 넘곤 한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하길래 아무렇지 않게 저렇게 비디오들이 백만 뷰수를 넘을까 하고 그녀의 비디오를 몇 개 들여다봤다. 어떤 비디오에는 크래미를 사용해 크로켓을 만드는 내용이 있었다. 마침 집에 크래미를 잔뜩 사다 놨던 나는 나도 한 번 해봐야겠다 싶어서 그녀가 하는 대로 레시피를 보고 그날 열심히 크래미 크로켓 내용물을 만들어 놨다. 그리고 지난 주말, 남편이 있을 때 크로켓을 튀겨먹어야겠다 싶어서 칭얼대는 아기를 남편에게 보게 하고 주방에서 열심히 크로켓을 튀겼다. 베샤멜이 들어가는 크로켓 속을 만들던 영상 속의 그녀의 레시피는 흐물흐물해 만지기 힘든 그런 스타일이었다. 혼자 큰 수저 두 개를 가지고 열심히 모양을 만들어 가며 뜨거운 튀김용 기름에 조심스레 넣고 있는데 갑자기 거실에 있는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어후, 완전 집에 불난 것 같아. 냄새가 아주 그냥, 지독하네.”
튀김옷이 타면서 주방에서 난 연기가 거실을 꽉 채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난 열심히 크로켓을 튀기고 있었다. 그 연기를 마셔가며 내가 뭘 만드나 궁금해하고 있던 남편은 거실에 아기가 누워있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베란다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기에겐 이불을 두 개 덮어놨었다. 워낙 먹거리 재료 선택부터 재료 방법, 맛까지 선호하는 것과 몸에 좋다고 생각해서 먹는 게 뚜렷한 남편은 사실 내가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하는 요리 방법에 항상 불신이 가득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로 이사를 가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요리를 조금씩 시작하고나서부터 밥상머리에서 집이 떠나가라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은 먹는 거 가지고 장난친 것 같은 걸 죽어도 싫어했고, 나는 내 노력은 쳐주지도 않는 남편의 태도가 맘에 안 들었다. 7년이 지난 지금, 내가 많이 적응해주고 남편도 태도를 고치려고 노력은 했지만 내 요리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고 남편의 인내심도 크게 늘지 않았다.
모유 수유를 하며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일까, 집에서 혼자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일까. 이제는 남편의 비평 소리가 단순히 내 요리에 대한 불평이 아닌 내 삶에 대한 조롱처럼 들렸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열심히 해볼 기회는 박탈당하고, 내가 별로 원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것들만 열심히 해야 되는 이런 불공평한 상황에 남편의 불만까지 들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에서 말이다. 그래서 단순히 내가 요리하나 잘못해서 온 상황이 내 인생에 대한 후회감이 몰아닥치는 상황으로 전환되어 눈에서 억울한 눈물이 나왔다. 매일매일 듣고 사는 아기의 억울한 울음소리와 양쪽 입가가 삐죽이 내려가 억울한 표정을 짓는 아기의 얼굴을 계속 떠올리며 나도 똑같이 울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쳐했을까. 왜 나는 내 행복을 지키지 못하고 이 지경까지 왔을까. 내가 내 행복을 위해 이제 뭘 더 해야 할까. 더 이상 내 감정, 내 에너지, 내 삶의 의미를 희생시킬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다혈질끼가 있는 남편은 항상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먼저 기분이 풀려 똥 싼 강아지처럼 내 옆에 와서 열심히 애교를 피운다. 그럴 때면 나는 네가 니 죄를 알렸다 하고 남편의 어떤 부분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열심히 말해준다. 남편은 인정하지 않는 척 안 듣는 척하면서 사실 다 듣고 기억한다. 그래 놓곤 웬만해선 절대 고치진 않는다. 그래도 나는 할 말을 했고, 남편도 할 말을 했으니 우리는 다음으로 넘어간다. 아리아나 그란데의 노래처럼. Thank u, next.
하지만 남편이 알아듣지 못하는 한글로 쓴 이 글에 밝힌다. 내 행복을 위해 이제 뭘 더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는 것, 내 감정, 내 에너지, 내 삶의 의미를 희생시킬 순 없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남편에게 굳이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다고 남편한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론 남편이 내 아이디어나 내가 원하는 것들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내 길을 가야 할 때가 있다. 소셜 미디어를 열심히 하는 것, 패션 관련 사업을 구상하는 것. 남편은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니다. 남편이 나와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보통 남편이 구상한 스타일의 요식사업이다. 그렇기에 가끔은 나도 나를 위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내 정신 건강이 멀쩡하고, 세상의 이치가 바로 선다. 안 그래도 이루기 힘든 꿈, 가까이 있는 사람까지 시비 걸기 시작하면 얼마나 더 힘들어지라고. 엄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예전엔 엄마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이제는 남편이 그 대상이 됐다.
하지만 사실은 엄마도 남편도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될 수 없다. 그 모든 이유를 막론하고 내 행복과 내 꿈을 지켜내야만 하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상황에서 또다시 나를 위한 작은 이기심을 부려본다. 물론 아기의 작은 행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