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yverse Apr 01. 2021

논 샬랑-히스테릭 그녀

3월의 마지막 날 전날.

오랜만에 아기가 아침잠을 곤히 잔다. 아주 갓난아기 일 때는 항상 오전에 곤히 잠을 자서 나만의 시간을 이용해 브런치 북에 글을 올리곤 했는데, 최근엔 아기가 아침잠이 많이 줄은 데다가 나도 이래저래 할 일이 많아서 거의 브런치 북을 열지 못했다.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를 말리며 거울을 보니,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고 또 다른 내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오랜만에 브런치 북에 이 이미지를 기록해 볼까 한다. 마침 아기도 자고 하니.



어떤 구체적인 사람이 된다는 거, 나는 그걸 길게는 내가 커서 되고 싶은 사람으로 꿈꾸기도 하고, 가깝게는 어떤 약속 장소나 새로운 곳에 입고 가는 옷이나 나의 꾸밈새로 상상해 보길 좋아한다. 희한하게도 나에겐 이런 소소하면서도 유치한 것들이 나의 삶에 이유를 부여한다.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 그렇게 꾸민 사람이 되어 보는 것. 내가 머릿속에 상상했던 나의 모습을 실제로 해 보는 것, 그런 사람이 되어 보는 것이 나에겐 엄청난 스릴이고 때론 성취이다. 그 최종 목적에 다달할을땐 그 어떤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요즘 소소하게 운영하는 쇼핑몰 촬영을 하면서 해보고 싶던 헤어스타일을 도전해보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존에서 단돈 19유로에 구매한 엄청 싼마이 헤어 컬러이지만, 마치 와플 기계로 누르듯 머리를 컬러 집게 사이에 넣고 치익 누르면 머리가 살짝 타는지 연기가 나면서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찍혀 나온다. 예전에 사용했던 돌돌이 헤어 컬러에 비해 많은 테크닉을 요하지 않는 데다가 시간도 훨씬 단축되어 머리만 말리고 나면  5 만에 새로운 헤어스타일이 완성된다. 새로운 헤어스타일과 함께 이마선을 타고 흘러내려온 하늘하늘한 머리 아래  얼굴을 보면 바로 내가 원했던  이미지가 보인다. 햇살이 뜨거운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로맨틱한 까만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스카프를 둘러 묶은 듯한 롱스커트를 입고 유모차를 밀며 길거리를 누비는  샬랑 하면서도 히스테릭해 보이는 30 중반 동양인 여인내의 모습. 왠지 생머리보다 파마머리는 나를 뭔가  묘해 보이면서도 히스테릭해 보이게 만드는  같다. 어쩌면 그것이 점점 변해 가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유투버들이 자주 사용하는 라이프 업데이트를  하자면 겉으로 보기엔 집에서 아기 돌보는 애엄마 같지만 집안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부쩍 많아졌다. 우선 첫째로, 우리 부부는 드디어 나름의 의견 일치에 도달해 프랑스에서 베이커리 카페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제과 제빵 셰프인 남편은 사실 연애 초반부터 나에게 자신의 꿈을 거의 씌우다시피 졸라왔다. 쉽게 말하면 본인은 빵을 만들고 나는 빵을 파는 형태로 빵집을 하자고. 패션업계에서 멀리 보면 블로거  연예계까지 꿈꾸던 나는 조그마한 빵집에서 빵이나 파는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쉽사리 남편의 조름에 응해줄  없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코로나가 터지며 뉴욕에서의 마지막 해외 생활을 접고 프랑스에 드디어 정착하다시피 자리를 잡아가는 우리는 사업을 하지 않고서는 프랑스의 쥐꼬리만  월급 수준에 만족할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사업 아이디어를 꺼내어 논의하기 시작했다. 7년의 대화의 결과, 남편도 이제는 해외 시장을 많이 겪어 보고 시아도 넓어진 덕인지 이제는 예전의 자그마한 빵집이 아닌 베이커리 카페 체인으로 아이디어를 업그레이드시켰고, 나도 흔쾌히 여러 가지 아이디어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발을 담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 살짝 번갯불에  볶아 먹듯 1억이 족히 넘는 스타트업 아이디어에 열심히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아이디어는 언제까지나 남편의 꿈과 연관된 사업 아이디어로 내가  인생에 있어서 이루고자 하는 어떤 만족감에 다르기에는  부족했다.  아직 이뤄지진 않았으니 미래의 느낌을 미리 예상할  없지만, 적어도  일을 이뤄가고 있는 과정에서 하루가 지날수록 더더욱  나이,  현실이 느껴지며 나는   꿈을 당당히 밀고 나가지 못할까 하는 깊은 회의감이 든다.


아마도 그래서 기회가 되면 히스테리도 부리고,  그래도 육아에 지친  멋있게 팜므파탈 이미지이라도 연출해보자 싶어 머리도 와플기계로 말아보곤 한다.


그리고 남편의 일과 동시에 나의 일도 똑같이 밀고 나가고 있다.  젊었을  내가 싸워내야 했던 엄마가 이제는  편이 되어주어  꿈과 관련된 모든 상담, 도움은 엄마를 통해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11시간을 비행해야 하는 거리에 살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깊이 속내를 드러내고 지낸다. 엄마가 멀리 있어서 예전만큼 내가 엄마를 챙겨주지 못하는 , 마찬가지로 또 내가 엄마의 챙김 받지 못하는   가끔은 너무 슬픈 현실이지만, 그만큼 우리는  자주 카톡을 찾고  자주 소통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모든  현실이라니.


아기가 깼다. 나의 글도  정도면 우리 사업만큼이나 번갯불에  볶아 먹듯 마칠만   같다. 글의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급하게나마 나의 속마음을 기록할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아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깊은 리스펙을 보낸다.


엄마와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의 브랜드 그리고 엄마-아기 코끼리 로고
작년에 출산후 엄마와 함께 했던 카씨스행


작가의 이전글 프렌치 엔딩 그 이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