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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Dec 25. 2020

눈앞에 보이는 그것 너머에 있는 무엇

띠-링!

메시지가 도착했다. 휴대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남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따뜻한 글이다


‘무슨 말이지?’, ‘내가 최근에 글을 한 편 써서 보내준 적이 있었나?’하며 메시지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조금 지나서 남편에게서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글만 봐도 따뜻하다


정말 궁금했다. 무슨 글일까?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그렇게 감동을 받았나? 의문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기대가 되었다. 그 순간 다음 메시지로 사진 하나가 도착했다.

택배 박스 사진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패딩 점퍼를 하나 사기 위해 쇼핑을 나갔는데, 내 옷을 살 때 남편 생각이 나 똑같은 패딩으로 옷 한 벌을 더 샀었다. 그리고 그것을 미리 택배로 보냈었다. 그것이 이제야 남편에게 도착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택배 박스랑 글과는 무슨 상관인 거지? 남편에게 물었다.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택배 박스 위에 붙여진 내가 직접 쓴 송장 속의 글이라고 했다.


송장 속의 글?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내용물이 무엇인지 간략히 적은 것들 뿐일 텐데.

글이라기보단 글씨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몇 글자 되지 않는 것에서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한 장의 송장, 거기에 내 손글씨로 한 자 한자 적힌 내 글자, 그것을 보고 나를, 남편 자신을 생각한 내 따뜻한 마음을 느꼈던 것이었다.


백화점 안의 많은 매장을 몇 바퀴씩 돌며, 남편에게 어울리는 옷을 그리고 더 포근하고 따뜻한 옷을 고르는 내 모습부터 집에 돌아와 옷들을 정리해 박스에 넣고, 무거운 박스를 낑낑대며 들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까지. 무사히 잘 받아 산뜻한 새 옷을 입고 올 겨울을 잘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박또박 적어 내려 간 그 송장 속의 글씨를 보고 그 당시의 내 시간을, 과정을, 마음을 알아봐 줬던 것이었다.


웃음이 났다.

그리고 고마웠다.


누군가가 한 사람의 ‘과정’을 오롯이 알아준다는 것,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도, 눈앞에 보이는 그것 너머에 있는 그 사람의 시간을, 과정을, 그리고 마음을 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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