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났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 세상이 팽팽 돌았다.
앉을 때 설 때는 물론이고, 혹시나 조금 쉬면 나아지려나 하고 몸을 뉘이려고 침대에 누울 때도 감은 눈 깜깜한 곳에서도 정말 별이 보였다.
어지러움은 며칠,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저 밥을 먹는 일, 샤워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전혀 정상적이지 않았다. 일상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때마다 나는, “세상 다른 소원 없다. 어지럽지만 않으면 좋겠다. 어지럼증만 없으면 정말 작은 일상에도 감사하게 살겠다.’고 되뇌었다. 빌었다.
그러나 날이 가도 가시지 않은 어지러움 때문에 “이게 뭐지? 큰 병에 걸렸나?” 더욱더 겁이 났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이야기한 후 여러 검사를 받기로 했다. 검사를 위해 검사실 침대 한편에 누워 대기했다. 검사 시작을 기다리는 그 길지 않은 1~2분, 그동안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았다.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바쁘게만 살아온 내 모습, 그리고 소중한 일상을 당연하게 여겨만 왔던 날들이 스쳤다.
나 자신을 탓했다.
‘건강이 이렇게 안 좋아질 때까지 제때 챙기지 않고 뭐했냐고,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왔냐고”
그렇게 계속 나를 다그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청승맞게. “그저 열심히 어떻게든 살아내 보고자 애썼던 것인데......” 나 자신이 안쓰러워졌다. 눈물은 다른 이에게 들키기 전에 손으로 얼른 훔쳤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검사 결과 내 병명은 ‘이석증’이었다. 나는 처음 듣는 생소한 병명이었는데, 우리 몸의 균형과 평형을 잡아주는 귓속의 작은 돌멩이가 제 위치에 있지 않고 떨어져 나와 다른 곳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인은 정확하게는 모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다.
다행히도 낮이나 밤이나 심지어 잘 때의 뒤척임에도 나를 괴롭혔던 이 어지럼증은 떨어져 나온 이석의 위치를 찾아 제자리에 넣으니 바로 가셨다.
“요즘 과로하셨나요? 아니면 신경 쓰는 일이 많으셨나요?”
“네... 좀 ”
“잠은요? 잘 주무셨어요?”
“아니요, 요 근래 신경 쓰는 일이 많아 새벽 늦게 자곤 했어요. 그마저 푹잔 건 아니구요.”
의사 선생님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면서 그동안의 나의 생활을 의식적으로 되짚어보게 되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하나 , 둘씩 스멀스멀 떠오르는 ‘지금보다 더 나은 앞으로’에 대한 생각과 그 생각이 걱정을 낳는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불안으로 위태롭게 지새웠던 밤.
다음 날 오전, 흐리멍덩한 정신을 억지라도 깨우기 위해 밤에 잠을 더 잘 못 잘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를 주문해 마시며 일하는 내 모습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제야 잡히지 않는 먼 이후의 내 삶에 대한 고민으로 선명하지 못한 현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는 현재도 미래도 아닌 애매한 어딘가에 위치해 모호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이석은 제자리에 잘 들어갔으니 당분간은 심한 운동은 피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게 잘 관리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네”라고 대답하고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는데, 어지럽지 않았다.
분명 아까 집에서 병원으로 왔던 길, 그 길과 똑같은 길인데 어지럽지 않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따스한 햇빛도 느껴졌고 길가의 옷가게에 전시되어 있는 옷들에 눈이 가는 여유도 있어졌다.
모든 것이 평안했고, 그 평안함이 무척이나 감사했다.
그저 떨어진 작은 돌 하나가 제 위치를 찾았을 뿐인데, 모든 것이 평안해졌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과 일상이 혼란스러운 것은 자신의 자리를 이탈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제자리를 못 찾아 어지러움증을 유발했던 이석과 같이 우리도 현재 나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나와 맞지 않은
어딘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는 내 차례이다.
이석이 제자리를 찾아 평안함을 되찾은 듯 내가 평안한 곳, 그 자리를 찾아가야 할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