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마저 자라라고 등 떠미네
선택하고 이별할 줄 아는 어른이 되라고
26살 된 지 3일이 지났다. 코로나로 점철된 2020년의 흐름만큼이나 내가 한 살 더 먹는다는 사실은 '얼렁뚱땅' 해프닝처럼 지나가는 사실인 것만 같다. 하지만 실감 나지 않는 것은 20대 중반을 넘어선다는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대학생일 수 없다는, 사회적 지위를 쟁취해야만 하는 위치에 선 취준생이라는 입장이다.
억지로 지켜내고 있던 대학생 신분마저 학교에서 은근히 종용하는 졸업시험에 어쩔 수 없이 응해 쫓겨나듯 축하받으며 졸업을 기다리고 있다. 한 달 넘게 남은 졸업식을 기다리며 이후의 계획을 세우려 해 봐도 여전히 나는 자라되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아 나 홀로 사회에 나서기에는 너무 연약하지 않은가 하는 걱정 먼저 든다. 그도 그럴게 나는 올해의 첫 영화로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을 선택했고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는걸.
투니버스의 망령으로 지낸 유치원생을 내 덕질의 떡잎으로 칭하자면 디지몬은 지금을 있게 한 모든 덕질의 시초나 다름없는 존재다. 미소의 세상도,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도, 쾌걸 근육맨 2세도 모두 좋아했지만 투니버스의 전성기를 이끈 수많은 만화 중 여전히 디지몬이 가장 크게 남아있는 건 사실 시즌이 오래가서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만화들이 어느 시점에서 다음 기약 없이 끝난 것과 비교했을 때 디지몬만은 내가 가진 기억을 토대로 이야기가 더 발전하고 아이들은 성장했다. 그때는 과몰입이 뭔지도 몰랐고 떡밥을 주워 해석을 할 생각조차 없었던 어린이. 당시의 덕질은 '좋아한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였으니 가장 오래 좋아할 수 있었던 디지몬이 내 유년기 기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디지몬도 끝나버렸다. 디지몬의 다음 시즌까지 텀이 길었던 때가 있었다. 다음 시즌이 돌아왔지만 그건 내 기억과 너무 다른 모양새였다. 뭔가 유치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다린 동안 디지몬 세계가 자란 것보다 내가 더 많이, 빨리 자라고 있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쉽기야 했지만 말 그대로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 슬프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투니버스만 보고 있기에는 세상이 더 재밌었으니까. 시험을 잘 봐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게, 연예 뉴스를 보며 좋아하는 연예인의 소식을 듣는 게, 용돈 모아 친구들과 맛집에 가서 동전까지 탈탈 털어 소박한 만찬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한 때였다.
자라지 않고 그대로인 디지몬과 시간이 지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자라기만 하는 나. 어쩌면 그 간극을 은근히 즐겼던 시간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토록 어른스러운 나 자신에 한창 취해있었다. 그러다 진짜 어른 딱지를 달고 어느 순간 나는 한 치도 자라지 않았구나 되지도 않는 깨달음을 얻어버렸다. 자소서를 뿌려대도 송구하다는 답변이 돌아오니 면접 준비는커녕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을까 자소서를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날이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대학 내내 한 것도 많고, 새로운 것도 도전했고, 많은 사람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이 모든 게 아주 수동적인 삶에서 우연히 걸린 행운 같은 결과물이었다는 느낌이 들자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커다란 좌절감으로 변해 일상을 덮쳐버렸다.
내 손으로 쟁취한 승리가 내 것이 아닌 기분, 내 노력의 결과가 내 것이 아닌 기분. 누군가의 용기와 누군가의 선택에 편승해 내가 무위도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있었고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불안이 있었다. 졸업을 이유 없이 미룬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자라되 어른되지 못한 인간인 내가 어떻게 어른인 척 행동하고 제 몫을 다 할 수 있을까. 그런 공포가 일상에 스며들었다.
한편 디지몬 어드벤처 세계는 어느새 20주년을 맞이했고 선택받은 아이들은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고,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다. 태일이와 매튜는(더빙판이 아니라 타이치와 야마토지만 나는 여의도초등학교의 신태일과 매튜가 더 익숙하다) 대학생 중에서도 사회진출을 코 앞에 둔 졸업반이다. 대놓고 20년 전 디지몬을 좋아했던 꼬맹이들에게 태일이와 매튜에 스스로를 투영하라고 한다. 이미 추억의 디지몬을 고화질로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말랑해진 일개 스물여섯 졸업예정자는 졸업논문 주제조차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신태일과 대학원 진학이 도피성이 아닐까 걱정하는 매튜가 안주를 나누며 맥주를 들이켜는 장면에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중간의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누가 무슨 진화를 해서 누구를 무찌르고 그런 것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디지몬 세계의 아이들이 혼자 자취를 하면서 파트너 디지몬에게 방음이 잘 안 되니 조용하라는 너무나 현실의 말을 하고, 엄마가 얼굴 좀 비추란다는 말을 듣는다는 게 평생 자라지 않을 것만 같았던 존재들도 시간에 떠밀려 자라 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그냥 시간이 흘러서 자라 버린 것뿐인데, 아직 어른 되려면 먼 것 같은데 벌써 어른스러운 선택을 하라니. 나도, 태일이도, 매튜도 그게 너무 어려운 거다. 시간이 지난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면 영원히 어린이인 채로도 괜찮을 것만 같은데.
그럼에도 디지몬 어드벤처는 선택과 성장을 노래하는 꿈과 희망의 만화영화이므로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20년이 지나 TV 앞의 어린이들은 열정이 찬 어른이 아닌 불안에 가까운 어른 아이가 되었지만 영원히 자라지 않은, 아직 2000년 그 자리에 머무른 아구몬은 태일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많이 컸다고. 그게 아구몬의 눈에 비친 외형적인 변화만을 말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짧은 말에서 나는 아무리 내가 한 치도 자라지 않았고, 여전히 미래가 불확실해서 갈피를 못 잡고 있어도 마냥 등 떠밀려 자란 것만은 아니라고, 이만하면 많이 자랐고 잘 컸다는 위로를 들었다.
어른이 되라는 세상의 요구는 너무 갑작스러운 호통 같아서 나 같은 쫄보는 쉽게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어깨 펴고 당당하게!라는 말도 내 기분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응원이었다.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 될 자격이 있는가조차 혼란스럽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아서 두렵기만 한데 말이다. 이제는 내 유년기의 추억마저 나보고 어른이 되라고 등 떠민다. 그런데 그 손이 참 다정했다. 많이 컸다는 말 한마디만으로 등 떠미는 손의 온기가 느껴졌고 할 수 있다는 응원을 받았다. 많이 컸다는 말을 조용히 되씹을수록 떠미는 손이 점점 준비가 다 되었으니 용기를 내라는 신호처럼 느껴져서, 웃기게도 정말 용기를 낼 수 있을 것만 같아 눈물이 났다.
'선택받은 아이들'이 결국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선택하는 아이들'로 성장한다는 것은 디지몬 세계관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시간에 등 떠밀려 자라 버린 현실의 아이들도 결국에는 어른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하는 아이들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모험을 거쳤던 것처럼 흘려보낸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아직 어린것처럼 느껴지지만 충분히 어른이 될 준비가 되었고, 어쩌면 이미 괜찮은 어른일지도 모른다. 아구몬이 올려다본 태일이의 훌쩍 자란 등처럼, 파피몬이 좋아한 하모니카를 부르며 어떻게 추억과 이별해야 하는지 아는 매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