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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난나 Sep 20. 2022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올 때

사내변 이야기

지난 주에 팀장님께서 갑자기, 금요일 오전마다 하는 주간 회의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주간 회의는 대체로 팀장급 이상인 지도자급?이 모여서 하는 회의이고 나는 여태껏 한번도 그 회의에 들어가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회의에 들어와서 무려 1년 전에 했던 법률검토 내용을 발표하라니..(이번에 관련된 추가적인 질의가 오기는 했다).


지난 주에는 특히나 직접 수행하는 소송 사건들 변론도 다녀와야 했고 변론기일도 무더기로 잡히고 있어 로펌 요청에 따른 자료 정리와 서면 검토도 해줘야 하고, 계약서 검토와 법률자문 건도 계속 들어오는 상황인데 회의에까지 들어오라니..


하기 싫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게다가 우리 팀 팀장님은 막 강압적인 스타일은 아니어서 왠지 잘 말씀드리면 들어오지 말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요즘 바빠서 들어가기 싫다는 표현을) 완곡하게 해봤지만 팀장님은 발표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며 그냥 간단히 끝내면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발표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1년 전 의견서를 다시 상세히 읽어서 요약해야 하고, 법조문도 외우다시피 해야 하고, 무엇보다 긴장되는 마음을(아직도 약간의 발표 울렁증이 있는 나...이기에...)무수한 연습으로 완화시켜야 했다.


그러다가 지난번 라디오스타에서 가수 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동료가수 세븐과 함께 출연하게 된 천생연분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을 앞두고  자꾸 자기와 세븐?을 비교하며 자극?하는 박진영때문에

[예를 들면, “지훈(비 본명)아, 미안한데 넌 아무래도 동훈이(세븐 본명)한텐 안될 것 같애. 걔 너무 잘해”라는 식으로 ㅎㅎ]

단 10초만에 모두들 이겨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비..


그래서 밤을 새서 연습한 끝에 그 유명한 삼단꺾기?춤이 탄생했다고 한다.. (난 그 장면이 기억이 안나긴 했으나 방송에 인용된 자료화면을 보니 진짜 잘하기는 하는 듯!)


그때 방송을 보면서 비의 승부욕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발표 연습을 하면서 문득 비의 그 런 노력이 떠올랐더랬다.


변호사 10년차인데도 아직도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할 생각을 하면 긴장감이 올라오고 목소리가 떨리는 나…

ㅠㅠ

그렇기에 더더욱 그 발표 울렁증을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처럼 나도 모두를? 승복하게 만드는(사실 스스로를 극복하는 의미로서의) 멋진 발표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비록

내용을 조금 틀리거나 버벅여도 특별한 불이익이 없는, 내부 회의에서의 발표이기는 하나 나는 논점과 답변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발표를 매끄럽게 만드는여러 논점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입에 익을 정도로 여러 차례 연습을 했다.


그런데 발표날 아침 사건이 생겨버렸다.


이런 게 머피의 법칙인 건가..


집에서 평소 들던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을 가지고 나오다 보니 교통카드를 새로운 가방에 넣지 않은 모양이었다. 얇은 카드형 지갑을 들고 다니느라 정식? 지갑은 원래 잘 안들고 다닌지 오래라 현금도 한푼 없어 일회용 교통카드를 살 수도 없었고

나는 삼성페이도 되지 않는 아이폰유저라 핸드폰 앱이나 카카오페이 등으로 교통카드를 찍을 수도 없었다.


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행히 아직 출근 전인 남편에게 sos를 청해 지하철로 내 카드를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팀장님께 카톡으로 설명드리니, 팀장님은 너무 늦을 것 같으면 본인이 발표를 하시겠다고 각정말라고 하셨으나 나는 발표 준비한 게 너무 아까워서 문앞에 자리를 마련해주시면 조금 늦더라도 내가 들어가서 발표를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이 잽싸게 카드를 가져다 주어서 나는 회의 시간에 약 5분 정도밖에 늦지 않았고 우리 법무팀 발표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라 다른 팀 발표 시간 동안 가쁜 숨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순서가 되자 신기하게도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시작하는 멘트를 미리 여러 번 연습한 덕분인 것 같았다.


첫 시작이 잘 풀리자 그 다음부터는 막힘없이 술술 말이 잘 나왔다.


발표를 듣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표 내용을 경청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그만큼 긴장감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사히 발표를 마치자,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하기 싫을 때, 창피를 당할까 두려울 때,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직접 그 두려움과 거부감을 맞닥뜨리는 것, 그리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완벽에 가까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걸, 이번의 작은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발표를 부끄럽지 않게 했다는 사실 자체로 인해 자부심과 자신감도 더욱 생겼다.

물론 일이나 발표를 잘 하는 것만이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아닐테지만 일을 잘 완수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과 연습은 자신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같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보다 1% 성장한다는 목표, 발표울렁증을 극복하겠다는 다짐, 이를 향한 노력의 소중함을 느꼈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기회를 주신 팀장님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려본다.^^


p.s. 발표를 참 잘 하시는 상사분과 식사를 함께 하게 되어 발표준비를 어떻게 하시는지 여쭤봤더니


1. 상대방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 위주로 준비


2. 스크립트?의 문어체를 구어체로 적절히 바꿈


3. 발표단락?별로 연결하는 조사 등을 표시


4. 발표 순서에 따라 번호로 표시해둠


5. 몇번 연습해봄


이라고 하셨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준비방법이었다.


나도 최근 또 한번의 발표 준비 시에 말문이 막히는 부분을 조사나 서로 잇는 문장 등으로 매끄럽게 연결하는 연습을 하고 질문이 나올 만한 부분 두 군데 정도 답변 준비를 했다(다행히 질문은 나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맨 처음 서두를 자연스럽게 시작할 정도로 여러 번 연습하고 그 이후 주제별로 순서대로 말하는 연습을 15번 이상 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혹시나 발표울렁증이 있으신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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