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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아 May 13. 2022

나쁜 사람.

2022.05.12

"은아씨는 나쁜 사람인가요?"

나는 살포시 두 눈을 감았다 뜨는 방법으로 선생님의 질문에 무언으로 긍정의 대답을 했다. 그렇다. 나는 나 스스로를 보잘것없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은 더럽고 추한 것밖에 없어서 내 안에서 나가는 모든 것에서 악취가 난다. 뭔가 나쁜 짓을 해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그냥 근원이 나쁜 사람이라 나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물론 내뱉어지는 숨까지도 모든 것이 나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는 걸까. 따지고 보면 살면서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대단한 중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때 선생님의 질문이 들어온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좋은 사람이라고,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냐는 질문이다. 비밀의 양탄자 안에서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럴 때가 있었던가........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본다. 틀어놓은 노래 한곡이 다 끝나고 새로운 곡이 시작될 때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 보니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러다 불현듯, 글을 쓸 때만큼은 '나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왜 글을 쓸 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 드는지를 떠올려보면, 글을 쓸 때 나는, 내면의 나와 맞닿는다. 깊숙이 좀 더 깊숙이 숨이 꼴딱하고 넘어갈 때까지 조금 더 깊숙한 마음 끝까지 내려간다. 내려가서 보고 온 마음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드러난 글을 쓰기 위해 자판과 치열하게 싸운다. 그리고 그 글들을 거울삼아 살아내려고 애쓴다. 그래서 글을 쓸 때의 내 모습이 조금은 괜찮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마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글이 어딘가에 쓰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그것을 알리고 싶어서 그렇게 글을 쓰고 또 써내려 가는 걸까. 아마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가 감정의 스위치를 너무나 잘 켜고 끄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에 나는 그 말씀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나는 우울이라는 세계로 들어가면 기나긴 시간 동안 나오지 않는데.. 내가 감정의 스위치를 잘 켜고 끄는 사람이라니... 오랜 시간 대화를 해본 결과 선생님이 말씀하신 스위치를 너무나 잘 켜고 끄는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는, 나 스스로 발랄하고 유쾌한 나의 모습의 스위치는 금방 꺼버리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스위치는 금방 켜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발랄하고 유쾌한 나의 모습과 불안하고 우울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 중 진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정답은 둘 다 나의 모습이다. 둘 다 진실된 나의 모습이다. 그 두 모습 모두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 삶의 톱니바퀴가 잘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렇다 선생님의 말씀이 다 옳다. 발랄한 것도 내 모습이고, 우울한 것도 내 모습이다. 둘 다 나의 모습이다. 어느 하나가 잘못된 것 없는 나 자체이다. 나의 발랄함을 애써 끌어올릴 필요도 없고, 나의 우울함을 애써 감추려고 할 필요도 없다. 내 기분이 발랄할 때는 발랄하게, 내가 우울할 때는 우울하게 그냥 그 감정을 오롯이 느껴보면 되는 것이다. 그게 나인 것이다.


나는 어째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사실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어쩌면 '나쁜 아이'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나는 나쁜 사람이야'를 내면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자꾸 '너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를 들려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새벽에 일어나 들꽃들을 위한 기도를 마치고 나면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을 세 번 읊어야겠다. 내 입에서 내 귀로 그리고 내 마음에 들리도록. 그래서 내 마음이 진짜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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