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02
벌써 선생님과의 7번째 만남이었다. 선생님은 7번을 만나면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좋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조금 더 성의를 담아서 길게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딘가 올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좋고,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고, 선생님이 내가 알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해 줘서 좋다고 성의 있게 대답을 했다.
이어서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선생님은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느냐고 질문을 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익숙한 감정이 '죄책감' '수치심' '외로움'인 것을 알았다고 했고, 그것들에게서 빠져나오고 싶은데 왜 빠져나오지 못할까를 생각해보면 그 감정들로부터 얻는 2차적인 이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이득이 무엇인지는 아직 못 찾았다고 했다. 얼핏 2차적 이득을 생각해보면 그 감정들을 느낌으로써 내가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칠 수 있고, 덜 상처받을 수 있고, 문제가 빨리 해결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래서 지금 편안한 상태냐는 반문을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선생님은 2차적 이득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익숙한 감정을 내게 행하던 사람들이 힘이 약해져 더 이상 그 감정들을 행사할 수 없게 되자, 나는 그 감정들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자기 파괴적인 방법으로 그 익숙한 감정들을 자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자행할 때 어른이 된 건강한 내 자아가 움직여야 하는데, 자아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자아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것이라고 하셨다. 죄책감이 올라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할 일을 해내는 것. 수치심이 올라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게 밥을 먹는 것. 외로움이 올라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이렇게 그 감정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떠들고, 먹고, 자고, 섹스하고.... 등. 그 감정들이 올라옴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들은 지나갈 것이기에 싸우는 것, 싸우며 평범한 내 일상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건강한 삶이라고, 그것이 나 자신과 싸우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내 자아는 내 안의 습관화된 감정들과 싸워야 할 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일 때만 움직인다고 하셨다. 예를 들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나, 강의를 해야 할 때,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할 때등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야 할 때만 안간힘을 다해 자아를 쓰고, 자아를 툭 꺼버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자아를 툭 꺼버리니 진짜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내 내면의 감정들과는 싸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맞아서 온 몸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선택하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행복을 위해 내면의 거짓 감정들과 싸울 것인지. 아니면 그 거짓 감정들에 젖어서 매일을 고통 속에 살 것인지. 나는 결정해야 한다. 감정들과 싸울 것인지 젖어서 살 것인지. 참 쉬워 보이는 결정인데 막상 선택하려니 쉽지 않다. 경험해보지 못한 행복이라는 세계가 두렵고, 익숙한 감정들이 자신들을 버리지 말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