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아 Jun 13. 2022

벼랑 끝.

2022.06.10

"마치 은아님이 자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벼랑 끝에 서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순간 '아-' 하는 소리가 마음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이 벼랑 끝이라는 것이 그제야 자각이 되었다.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왜 아슬아슬한 벼랑을 선택한 것일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와 선생님 사이에 공백의 시간이 펼쳐졌다. 나는 공백의 시간 속, 스쳐가는 생각들 중 하나를 잡아 상담 선생님께 들려드렸다. 

"사람들이 저에게 실망해서 떠날 때, 그때 좀 덜 아프려고요."


그렇다. 나는 사람이 어렵고 무섭다. 언제부터였을까. 당돌하고 맹랑하던 색이 옅어지고 두렵고 소극적인 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빚 좋은 개살구'라고 말하며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관계들을 정리했다. 그 이후로 차차 관계 맺음이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이루어 낸 일들이 사실이고, 실제 내 능력인데 왜 자신 없어하고 두려워하는지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말을 어떻게 꺼내놓아야 할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담 선생님은 과거에 누군가에게 화를 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면전에 대고 '너는 처녀가 아니라서 싫다'라고 말하던 미친 개새끼한테, 직위를 이용해 나에게 갑질을 해대던 비열한 상사에게...... 기타 등등 화를 내 나를 보호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 존재가치를 훼손하려던 사람들에게 내 소리를 내던 때의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그때의 내가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모르겠다고 그때의 나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때의 은아는 지금 여기 앉아있다고 하셨다. 지금 여기 앉아서 다른 사람에게 내야 할 화를 자신 스스로에게 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날은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나를 해하고 상담에 간 날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선생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많이 혼란스럽다고.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머리로는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모두 나라는 것을 알겠는데 마음에서는 진짜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혼란스럽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벼랑 끝에 서있는 나 스스로와 싸울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나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이 마음의 허기가 계속될 것을 아는데, 이 마음의 허기가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아득하다는 말도 함께........ 잠시 뒤 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선생님은 포기하지 말자고 하셨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새벽이 올 거고, 그렇게 해낼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혼란스럽다는 이야기, 무기력하고 아득하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도 하셨다.


오늘도 나는 벼랑 끝이다.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더 가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한 발자국 뒤로 가 본다. 그리고 벼랑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득하고 아찔하다. 아래로 아래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이렇게 나 자신과 조금씩 싸워본다. 지금은 한 발자국 뒤 로지만, 이 한 발자국이 쌓여 열 발자국, 스무 발자국이 될 날을 꿈꿔본다. 부디.

매거진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