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0
"마치 은아님이 자기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벼랑 끝에 서서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순간 '아-' 하는 소리가 마음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이 벼랑 끝이라는 것이 그제야 자각이 되었다.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 왜 아슬아슬한 벼랑을 선택한 것일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와 선생님 사이에 공백의 시간이 펼쳐졌다. 나는 공백의 시간 속, 스쳐가는 생각들 중 하나를 잡아 상담 선생님께 들려드렸다.
"사람들이 저에게 실망해서 떠날 때, 그때 좀 덜 아프려고요."
그렇다. 나는 사람이 어렵고 무섭다. 언제부터였을까. 당돌하고 맹랑하던 색이 옅어지고 두렵고 소극적인 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빚 좋은 개살구'라고 말하며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관계들을 정리했다. 그 이후로 차차 관계 맺음이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이루어 낸 일들이 사실이고, 실제 내 능력인데 왜 자신 없어하고 두려워하는지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말을 어떻게 꺼내놓아야 할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담 선생님은 과거에 누군가에게 화를 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면전에 대고 '너는 처녀가 아니라서 싫다'라고 말하던 미친 개새끼한테, 직위를 이용해 나에게 갑질을 해대던 비열한 상사에게...... 기타 등등 화를 내 나를 보호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 존재가치를 훼손하려던 사람들에게 내 소리를 내던 때의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그때의 내가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모르겠다고 그때의 나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그때의 은아는 지금 여기 앉아있다고 하셨다. 지금 여기 앉아서 다른 사람에게 내야 할 화를 자신 스스로에게 내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날은 나를 해치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은 나를 해하고 상담에 간 날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선생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많이 혼란스럽다고.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머리로는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모두 나라는 것을 알겠는데 마음에서는 진짜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 혼란스럽다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벼랑 끝에 서있는 나 스스로와 싸울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나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이 마음의 허기가 계속될 것을 아는데, 이 마음의 허기가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아득하다는 말도 함께........ 잠시 뒤 선생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선생님은 포기하지 말자고 하셨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새벽이 올 거고, 그렇게 해낼 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혼란스럽다는 이야기, 무기력하고 아득하다는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도 하셨다.
오늘도 나는 벼랑 끝이다. 벼랑 끝에 서 있다. 한 발자국만 앞으로 더 가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상담 선생님의 말씀을 믿고 한 발자국 뒤로 가 본다. 그리고 벼랑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득하고 아찔하다. 아래로 아래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이렇게 나 자신과 조금씩 싸워본다. 지금은 한 발자국 뒤 로지만, 이 한 발자국이 쌓여 열 발자국, 스무 발자국이 될 날을 꿈꿔본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