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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아 Aug 17. 2022

인간의 양면성.

2022.07.21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5시 정각에 오셨네요."


시간 강박이 있어 약속 시간을 '딱' 맞춰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나는, 소파에 작은 몸뚱이를 내던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뜬금없이 그림 하나를 내보였다. 두 사람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한 사람은 위에서 아래로, 또 다른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 상대방을 곧 가격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선생님은 예전에는 상담실 책상 위에 이 그림을 늘 올려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담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잠시 뒤로 치워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선생님이 내민 그림, 그것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고야의 '막대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었다. 선생님은 이 그림을 보면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1%라도 힘을 더 준 쪽이 이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무릎을 치며 맞다고,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내가 어디에 좀 더 힘을 주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존재한다. 선과 악. 어느 쪽에 1%의 힘을 더 주느냐에 따라 내 안의 선함이 나를 다스리기도 하고, 내 안의 악함이 나를 다스리기도 한다. 물론 그 힘을 싣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고, 우리는 이렇게 평생을 자기 자신과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선생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나의 현재의 삶이 선이 이기고 있는지, 악이 이기고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악'이 이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함께 '선'에게 좀 더 힘을 실어줘 보자고, 그것은 오직 은아씨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선생님은 옆에서 도와주고 길을 안내할 뿐이라고 하셨다.  


그림은 내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맴돌았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 싸움. 즉 내가 싸워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죽음에 대한 충동적 사고,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인 평가, 그리고 존재에 대한 혐오까지 내가 안간힘을 다해 싸워서 쳐내야 할 '악'들이다. 

이것들과 매일 같이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언젠가는 '악'보다 '선'이 내 안에 더 차올라 '아 오늘도 잘 살아냈다'라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어떤 날일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확언대로 그날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기대하기로 했다.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나도 한 번쯤은 '아 행복하다'라는 느낌에 흠뻑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양면성. 오늘도 나는 선택한다. 어떤 날은 '선'을 선택하겠지만 또 어떤 날은 '악'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에 힘을 실어주는 날이 좀 더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내가 행복한 날이 많아질 것이다. 여하튼 철저하게 어디에 좀 더 힘을 실어야 할지는 내가 하는 선택이고, 나의 몫이고, 내가 살아내야 할 나의 삶이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좀 더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 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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