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21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5시 정각에 오셨네요."
시간 강박이 있어 약속 시간을 '딱' 맞춰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나는, 소파에 작은 몸뚱이를 내던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뜬금없이 그림 하나를 내보였다. 두 사람이 무언가를 손에 들고 한 사람은 위에서 아래로, 또 다른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 상대방을 곧 가격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선생님은 예전에는 상담실 책상 위에 이 그림을 늘 올려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상담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잠시 뒤로 치워뒀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선생님이 내민 그림, 그것은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고야의 '막대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이었다. 선생님은 이 그림을 보면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물었다. 나는 1%라도 힘을 더 준 쪽이 이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무릎을 치며 맞다고,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내가 어디에 좀 더 힘을 주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양면성이 존재한다. 선과 악. 어느 쪽에 1%의 힘을 더 주느냐에 따라 내 안의 선함이 나를 다스리기도 하고, 내 안의 악함이 나를 다스리기도 한다. 물론 그 힘을 싣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고, 우리는 이렇게 평생을 자기 자신과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선생님이 이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나의 현재의 삶이 선이 이기고 있는지, 악이 이기고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악'이 이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함께 '선'에게 좀 더 힘을 실어줘 보자고, 그것은 오직 은아씨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선생님은 옆에서 도와주고 길을 안내할 뿐이라고 하셨다.
그림은 내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맴돌았다. 그리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 싸움. 즉 내가 싸워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죽음에 대한 충동적 사고,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인 평가, 그리고 존재에 대한 혐오까지 내가 안간힘을 다해 싸워서 쳐내야 할 '악'들이다.
이것들과 매일 같이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언젠가는 '악'보다 '선'이 내 안에 더 차올라 '아 오늘도 잘 살아냈다'라고 말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어떤 날일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선생님의 확언대로 그날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기대하기로 했다. 한 번 사는 짧은 인생 나도 한 번쯤은 '아 행복하다'라는 느낌에 흠뻑 젖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의 양면성. 오늘도 나는 선택한다. 어떤 날은 '선'을 선택하겠지만 또 어떤 날은 '악'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에 힘을 실어주는 날이 좀 더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내가 행복한 날이 많아질 것이다. 여하튼 철저하게 어디에 좀 더 힘을 실어야 할지는 내가 하는 선택이고, 나의 몫이고, 내가 살아내야 할 나의 삶이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좀 더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 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