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아 Oct 07. 2022

두 마리의 늑대.

2022.09.30

지난주 내 삶에 교통사고와 같았던 지리멸렬한 이야기들을 상담실에서 꺼내놓고 난 이후로 나는, 나를 해하고 싶은 마음과 나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 치열한 한 주를 보내고 상담실을 찾았다. 쭈구리 같은 마음으로 상담실에 앉아 고개 한번 제대로 들지 못하고 상담실 탁자 위에 올려진 다 타버린 인센스 스틱만을 바라보았다. 다 타고 재가 되어버린 그것들을 보며, 마치 내 마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은 치열함 속에 살다가 온 나에게 한 가지 예화를 들어가며 상담을 시작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의 늑대가 산대요. 그리고 그 늑대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지요. 한 마리는 부정의 늑대이고 한 마리는 긍정의 늑대예요. 이 싸움의 끝은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은아씨는 어떤 늑대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 같나요?"

"........ 모르겠어요."

"바로 은아씨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승리한대요. 내가 긍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긍정의 늑대가, 부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부정의 늑대가 승리하는 거죠. 한 주간 잘 버티고 이 자리에 와줘서 고마워요."

그렇구나. 내 마음에는 두 늑대가 사는구나. 선생님이 꺼낸 예화를 듣고 나는 너무 당연하게 매일의 삶 속에서 부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 예화를 든 이유. 이제는 부정의 늑대가 아닌 긍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자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것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한 주를 보내면서 어떤 감정이 제일 많이 올라왔는지를 물었다. 나는 '비통함'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비통함이 어떤 감정이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한 주 내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고 했다. 그 까닭은 나라는 존재가 더럽고 무가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슬프니까 좀 울지 그랬냐고 말했다.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울 수 없는 어른이다. 그렇게 한참을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너무 슬퍼서, 슬픔에 젖어서 정확한 대화 내용은 사실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그래서 글로 담아낼 수가 없다.)


상담을 마무리해 갈 때쯤,  선생님은 화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살면서 만난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첫 번째 화살이라고 칭한다면, 그것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았고, 피할 수 없었고, 단지 재수 없게(?) 화살을 맞은 것 뿐이다. 그러나 두 번째 화살은 다르다고 했다. 두 번째 화살은 첫 번째 화살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따라서 내 마음에서 싸우고 있는 늑대 중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긍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줌으로써 두 번째 화살은 얼마든지 피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마음의 주인만이 늑대에게 먹이를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40이 다 되어가도록 마음의 주인으로서 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심어 준 말들을 내 마음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무가치함과 수치심 속에서 살아왔다. 많은 것들을 이루어 왔지만 이룬 것들이 작은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다 무너질까 봐 두려움 속에서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외적인 성취들로 가치를 높인다고 해서 내적 가치감도 함께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다. 외적 무가치함과 내적 무가치함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고 사람들 관계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 않아 언제나 늘 혼자 있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이 역시 외적 수치심과 내적 수치심은 별개의 문제였다. 나의 문제는 내적으로 무가치함과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외적인 무가치함과 수치심은 내가 무언가를 일궈내거나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된다. 그러나 내적 무가치함과 수치심은 달랐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나 나에게만 보이는 결핍이었다.


외적 무가치함과 수치심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내적인 무가치함과 수치심과 싸워야 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사람이 심어준 첫 번째 화살. 그 더럽고 냄새나는 내 것이 아닌 말들을 내 마음에서 쫓아내고 내가 내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 긍정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려고 끊임없이 내 안의 나와 싸워야 한다. 그렇게 긍정의 늑대가 덩치가 더 커지도록, 그래서 결국에는 승리하도록 킵고잉을 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나 어렵다. 분명히 먹이 들린 손을 긍정의 늑대를 향해 뻗었는데, 부정의 늑대가 다가와 자연스레 먹이를 가로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이 들린 손을 긍정의 늑대를 향해 뻗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 긍정의 늑대가 먹이를 받아먹는 날이 올까. 정말 그날이 올까. 그럴까. 나는 오늘도 비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안의 분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